뿌리 없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당신은 지금 삶을 즐기고 싶은가, 아니면 삶을 바꾸고 싶은가.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원한다. 퇴근 후의 여유, 주말의 자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버는 삶.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뿌리도 내리지 않은 채 열매부터 따려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다.
세이노는 인생을 두 가지로 나눈다. 경제적 대가를 얻기 위해 시간을 쓰는 '리빙(Living)'과, 돈벌이와 무관하게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라이프(Life)'이다. 우리가 흔히 '워라밸'이라 부르는 것의 본질이 바로 이 두 영역 사이의 균형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뿌리도 충분히 내리지 못한 시점에서 열매에 눈독을 들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라이프는 리빙이 만들어낸 돈으로 유지된다. 이것은 냉정한 현실이지, 비관적인 세계관이 아니다. 여행을 가고 싶다면 여행 경비가 필요하고,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고 싶다면 그것을 감당할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라이프가 아무리 풍요로워 보여도, 그것을 받쳐주는 리빙이 흔들리는 순간 라이프도 함께 무너진다. 뿌리 없는 나무가 폭풍 앞에서 버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리빙에만 매몰되어 라이프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삶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 경제적 기반을 충분히 다지지 못한 상태라면,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완벽하게 잡으려는 욕심이 오히려 두 마리 모두를 놓치게 만든다. 지금 이 시기에 리빙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라이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훗날 진정으로 자유로운 라이프를 누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이다.
뿌리가 깊고 굵게 박힌 나무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나무만이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지금 당장의 열매가 탐나더라도, 먼저 뿌리를 내려라. 리빙에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자하라. 그 뿌리가 단단해지는 날, 당신은 비로소 리빙에 얽매이지 않는 진짜 라이프를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매슬로우(Abraham Maslow)의 욕구 위계 이론은 이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한다.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중의 욕구, 그리고 최상위에 자아실현의 욕구로 이루어진다. 결정적인 것은,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먹고 자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기반, 즉 경제적 토대가 흔들리는 상태에서 자아실현을 논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돈은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구조적 전제 조건이다.
마르크스 역시 이 진실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는 물질적 토대가 인간의 의식과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경제적 하부구조가 문화, 철학, 예술이라는 상부구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를 굳이 긍정하지 않더라도, 그의 통찰은 유효하다. 물질적 기반 없이는 정신적 상부구조도 존재할 수 없다. 자아실현이라는 고귀한 목표도, 그것을 떠받치는 경제적 현실을 외면해서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결론은 하나이다. 돈을 버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은 속물의 행위가 아니라, 철학이 수천 년에 걸쳐 증명해온 자유와 자아실현의 전제 조건이다. 뿌리를 내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깊고 굵은 뿌리를 가진 나무만이 결국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