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들, 아내. 온 가족이 함께 대형병원으로 갔다. 이 병원은 코로나 검사결과가 빨리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다. 아내는 코로나 판정 이후 격리기간이라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린 아들을 달래고 진정시킬 겸 같이 온 것이다. 대신 차 안에 있기로 했다.
병원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아들과 함께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지상으로 올라왔다.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르고 손에 입김을 불며 줄을 서서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기다리는 줄이 병원 건물을 감싸는 형태다. 아들과 장난도 치며 1시간 가까이를 기다린 끝에, 우리의 차례가 다가왔다. 검사받기 전,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있는데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 비명소리가 크게 들렸다. 순간 걱정이 되었다. 우리 아들은 잘 받을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안심이 된다. 어제 아내가 자가키트로 검사를 할 때 별 탈 없이 무난히 검사를 받던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들과 함께 코드가 적힌 코로나 검사 통을 가지고 의료진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방호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신속하고 빠른 속도로, 코로나 검사통의 긴 면봉을 꺼내 사람들의 코를 찔러댔다. 아들과 나는 나란히 검사를 받았다. 면봉으로 코안, 깊숙이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기분이 불쾌하다. 짧은 찰나의 순간만 참으면 되기에 어른들은 참을 수 있었다.
코로나 검사를 끝내고 옆에 있던 아들을 지켜봤다. 아들은 코안에 면봉이 깊숙이 들어오자 화들짝 놀랐다. 참지를 못하고 팔로 면봉을 쳐냈다. 그러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들을 달래고 빨리 코로나 검사를 끝내야 한다. 코로나에 걸려 목이 아픈 아내가 차 안에서 벌써 1시간 넘게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 조금만 참으면 돼. 다른 아이들도 다 하잖아. 빨리하고 집에 가자. 너 보고 싶은 TV도 보고 재미나게 놀자.
아들을 달래서 진정시켰다. 다시 한번 더 검사를 받게 했다. 면봉을 쥔 의료진에게 부탁했다.
- 선생님, 우리 아들이 많이 놀래니깐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의료진은 나의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과 같이 빠른 속도로 면봉을 아들 코안에 집어넣었다. 면봉이 코 안으로 들어오자, 아들은 또 비명을 지르며 발악했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아들을 어르고 달랬다.
- 저기 봐. 너보다 어린 얘들도 잘하고 나오잖아. 너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깐 조금만 참자.
- 난 아무것도 못해. 이럴 바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 게 낫겠어. 난 아무것도 아니야. 난 아무것도 못해.
그 많은 인파가 있는 곳에서 아들이 울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에서 오는 창피보다 아들의 비관에 더 큰 분노가 일렁거렸다. 우리 부부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서 우리 부부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네가 태어나던 날, 너무 기뻐서 생일축하곡을 얼마나 크게 불렀는데. 네가 내 자식이라서 얼마나 기뻤는데. 건강하고 무사히 잘 자라나길 속으로 빌었는데. 나중에 아들이 성인이 된다면 얼마나 멋져질까를 자주 상상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늙어가는 나의 모습에서 오는 충격도 아들의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충격이 상쇄되었는데. 네가 태어난 후 새로운 책임감이 생겼는데. 보석보다 소중한 아들인데, 입에 담지도 못할 이상한 말들로 자책을 했다. 아들의 그런 말과 행동을 보니, 이성이 풀릴 것 같다. 아들은 계속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비하했다. 이런 멍청한 말을 하는 아들의 뺨을 힘껏 때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충동을 억누르며,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아들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아들은 더 발악을 했고 내 손을 치며 또 희한한 소리를 질러댔다.
쌍욕이 저절로 입에서 나와버렸다. 내 소중한 아들이 이런 바보 같은 말을 하다니. 너무 화가 나니깐 오히려 침착해졌다. 의료진 옆, 간이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며 어떻게 할지를 생각했다. 아들의 허튼소리는 끝났다. 아들은 정색을 하며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리를 지켜본 소수의 사람들이 지나가며 한 마디씩 했다. 어떤 아주머니는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달랬다.
- 조금만 참으면 돼. 할 수 있어. 어쩔 수 없어.
아들은 싫은 내색을 표하며 몸을 크게 비틀어 방향을 전환했다. 아주머니를 외면하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가던 길을 갔다. 아들과 키가 비슷한 여자아이도 지나가며 아들에게 말했다.
- 해야 돼. 추운데 빨리하고 가. 늦게 하면 너만 손해야. 조금만 참아. 나도 했어.
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니 한숨만 계속 나온다. 추운데 1시간 넘게 대기하는 우리도 힘들지만, 차 안에 있는 아내도 걱정이다. 코로나에 걸려 몸에 열도 많이 나고 목도 많이 붓은 상태다. 빨리 집에 가서 편안하게 쉬어야 했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이 코로나 검사를 크게 거부한다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 아들 바꿔봐.
나는 핸드폰을 아들 귀에다 갖다 대려고 했다. 그러자 아들이 손으로 내 핸드폰을 처버렸다. 폰이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시멘트 바닥이라 떨어졌으면 최소한 금이 갔을 것이다. 또 화가 급상승했다. 아들을 살짝 밀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화내거나 때릴 수도 없고 미칠 지경이다. 폰은 스피커폰으로 변경했다. 폰이 떨어질까, 꽉 잡아 아들 귀 근처에다 갖다 대었다. 아내가 아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 아들, 힘들지? 엄마도 이해해. 갑자기 코 안으로 면봉이 들어오니깐 놀랬을 거야? 그치? 찌르는 의사 선생님들도 빨리빨리해야 일이 처리되니깐 그러는 거야. 우리가 이해해야 돼. 아들 그리 못하면 나중에 또 줄 서야 돼. 그리고 유치원 못 가. 나중에 벌금 물을 수도 있어. 빨리하고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아들! 엄마는 아들 믿어. 할 수 있지?
아들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또 재수 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침착하게 아들을 달랬다. 아들이 드디어 용기를 내었다.
- 할 수 있겠어?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을 데리고 다시 검사하는 곳으로 갔다. 의료진에게 다시 부탁을 했다.
- 선생님, 우리 아들이 많이 민감해요. 방금 전까지 너무 놀랬어요. 달래서 겨우 왔으니깐, 조금 천천히, 살살해주세요.
남자 의료진이 면봉을 잡더니, 빠른 속도로 아들 코안으로 면봉을 집어넣고 휘저었다. 아들이 또 고개를 비틀어 거부하려 했지만 남자 의료진의 손이 더 빨랐다. 드디어 아들의 코로나 검사가 끝난 것이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들이 또 아프다며 비명을 질렀다. 눈물을 보이며 또 쓸데없는 말을 했다.
- 나 이제 못하겠어. 이거 할 바에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 게 낫겠어.
기가 차고 또 화가 난다. 아들의 코를 찌른 남자 의료진은 빨리 가라고 손짓을 했다.
- 가라. 빨리.
아들의 실없는 발언에 의료진들도 짜증이 난 모양이다. 그 짜증이 내게도 느껴져, 순간적으로 나도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분명히 살살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도 우악스럽게 코를 찔렀다. 어린 아들을 배려하지 않는 의사의 모습에 화가 났다. 한마디 하고 싶지만 참기로 했다.
내가 아들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아들이 내 손을 뿌리치며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뭐 하는 거야?
큰소리쳤지만 아들은 달아나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안했지만 침착하기로 했다. 검사하는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아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도 불안했는지 나를 찾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기다렸다. 망설이던 아들이 내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화가 다시 났다.
- 너 때문에 몇 시간을 기다리는 거야? 지금 엄마 몸도 안 좋은데, 뭐 하는 거야?
아들을 데리고 지하주차장으로 가, 차에 태웠다. 아내가 아들을 반겼다.
- 우리 아들 수고했어. 잘 견뎌냈어. 대견해.
나는 쌓였던 분노를 아내에게 말로써 표현했다. 아들 때문에 이 추운 날씨에 몇 시간을 지체했다고. 사람 많은 곳에서 태어난 것을 부정하는,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아 창피했다고. 또 우리의 소중한 아들이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자책하는 모습에 화가 몹시 난다고.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 아직 어린애잖아.
- 그래도 내년이면 초등학교 들어가잖아.
- 아직은 유치원생이야. 사리분별이 되겠어. 이 나이에 본인 감정에만 충실할 나이잖아.
어린 아들은 이제 딴 사람이 된 것 같다. 이제는 활짝 웃으며 재잘거렸다. 나에게 농담도 하고 장난도 쳤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난다. 집에 가서 회초리로 다스려야겠다. 다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죽는 게 낫겠어’란 말 따위를 입 밖에 꺼낼 수 없도록 매로 단속시켜야겠다. 차를 출발시켰다.
어릴 때 나는 어땠을까? 나도 이런 기억이 있었나? 우리 부모님은 내게 무관심했는데.......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유치원생일 때 아버지를 화나게 한 적이 있었나? 그때 아버지는 어떤 행동을 했지? 잠시 옛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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