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치원생일 때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다. 높은 노동강도와 살림살이로, 형제 중 막내인 내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지금의 아들처럼 마지막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유치원 선생님이 부모님께 뭔가를 받아오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무엇 때문에, 왜?’라는 질문도 생각하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알아서 하시겠지. 어머니는 내게 검은 봉지를 건네주었다. 검은 봉지 안에는 치약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대로 유치원 선생님에게 건넸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산타분장을 한 유치원 선생님이 내가 있는 유치원 교실 안으로 등장했다. 우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산타는 계속 “허허”하며 웃으며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불렀다. 지명한 아이들이 나오면 선물을 주었다. 얼굴만 한 로봇 장난감, 큰 사탕, 은박지로 포장된 초콜릿 등 멋진 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얼마나 멋진 선물을 받을까? 기대감으로 들떠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잔뜩 기대를 하며 산타 앞으로 갔다. 산타는 “허허” 웃으며 재빨리 치약을 건넸다. 나도 빠른 속도로 받고는 치약을 상의 호주머니에 숨겼다. 선물 주는 산타나 받는 나나, 둘 다 부끄러웠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각 부모님께 부탁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내게 신경을 못 쓴 것인지 안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엄청 서운했다. 치약 대신 몇 백 원짜리 과자라도 넣어줬으면 덜 창피했을 텐데....... 지금 나도 공장에서 현장직으로 일하며 부모님의 입장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의 부모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부모세대는 노동강도가 높았으니깐. 먹고살기 바빴으니깐. 노후대비나 자식 뒷바라지가 더 중요했으니깐. 옹호하며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산타에게 치약 받은 날을 떠올릴 때면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2층짜리 단독주택의 2층에서 전세로 살았다. 그때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고양이를 내 동생이라 여기며 아끼며 보살폈다. 고양이의 이름도 지어주고 애정을 많이 주었다. 주말 아침에 고양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고양이 울음소리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일어났다. 맞벌이로 일하셨던 우리 부모님은 늦게 일어날 예정이었는데, 고양이 울음 때문에 늦잠 자는 것이 무산된 것이다. 아버지가 단단히 화가 났다.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더니, 그대로 창문을 열었다. 밑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집어던졌다. 고양이의 쭈뼛 선 털과 커진 눈동자, 날카로운 고양이의 울음에 그 공포가 그대로 내게 전달되었다.
말릴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며 1층으로 내려가 고양이를 찾았다. 고양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질 않았다. 친동생을 잃은 것 같았다. 그래서 슬픈 심정으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반이 배정되고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렸다. 우리 반 친구 중에 말을 더듬는 친구가 있었다. 말을 하기 전에 항상 “어버버”하며 뜸을 들이고 말을 했다. 말을 꺼낼 때는 발로 땅을 크게 구르거나 손바닥으로 가슴을 쳐야 말이 그나마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나도 따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나도 말을 더듬게 되었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을 하면 되는데,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모님은 인상을 찌푸렸다. 부모님은 빨리 정상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랐다. 주말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계셨다. 내 어릴 적 기억에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당연히 대답을 했는데, 또다시 말을 더듬었다. 아버지는 계속 내게 말을 걸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말 더듬는 습관이 고쳐질 것이라 믿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해도 나는 계속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아버지의 눈빛이 변했다. 아버지가 나의 어깻죽지에 한 손을 넣고 다른 한 손은 다리 사이에 집어넣어 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고양이를 던졌던 창가로 향했다. 그때의 공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의 몸 반 이상이 창문 밖으로 나와있다. 손으로 싹싹 빌며 아버지에게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창가에 부는 바람이 내 귓등을 스치고 지나갔고, 내 몸이 아버지의 손에 의해 붕 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래로 시멘트 바닥이 보였다. 아버지가 나를 던지면 나는 확실히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 의해 2층에서 내동댕이쳐진 고양이처럼 나도 털이 쭈뼛서고 등에서 식은땀이 나왔다. 그리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버지는 다시 질문을 했다.
- 학교에서 무슨 숙제를 내주었냐?
- 좋아하는 과목은 뭐야?
- 친구들과의 사이는 좋냐?
질문을 함으로써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살기 위해, 다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말을 더듬는 것이 차츰 나아졌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나를 다시 창가 안, 방바닥에 나를 살포시 내려주었다.
- 앞으로 말 더듬지 마라.
아버지의 무식한 방법으로 말 더듬는 것이 나아졌지만, 내게 상처가 되었다. 어쩌면 그 상처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상쇄된 것 일수도 있다.
내게 창피를 주고 허탈하게 만든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내 몸이 안 좋은 관계로, 내가 아들을 씻겼다. 아들은 힘든 일을 이겨낸 뒤라 계속 즐거워했다. 아들의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맞다. 아들은 아직 초등학생도 아니다. 때려서 다시는 허튼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각오가 사라졌다. 아들 몸에 바디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혔다. 아들이 보고 싶어 하는 TV를 보게 해 주고, 저녁에는 같이 놀았다. 그리고 아들을 업어주었다.
- 오늘 힘들었지? 잘 참았어. 우리 아들 최고.
아들 양치질을 시키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추운 곳에서 오래 있었고 비명을 많이 질러 피곤했나 보다. 아들은 금방 잠이 들었다. 새근새근 자는 아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요즘 나는 아들의 행복한 표정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예전에 꿈속에서 어린 나를 만난 적이 있다. 불쌍하게도 어느 누군가가 방안 구석에서 쭈그려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흐느끼고 있다. 가서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싶다. 그런데 손이 닿지 않고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울고 있는 아이가 고개를 들었는데, 바로 어린 나였다. 그때 꿈에서 잠이 깬 나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럴 때면 항상 속으로 혼잣말을 내뱉곤 한다.
- 어릴 때. 같이 좀 놀아주고 관심 가져주지. 우리 부모님도 참.......
지금 현장에서 일하니, 우리 부모님의 상황을 그나마 이해할 수도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우리 부모님. 그렇다 하더라도 ‘주말이라도 같이 놀아줬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들에게 관심 가져주고 주말에 같이 재미나게 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같이 놀면 재미있다. 아들의 환한 미소로 인해, 아버지의 무관심에 슬퍼하던 어릴 적 내가 치유되는 느낌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들과 놀며 관심가지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