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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라뜨 Sep 12. 2024

친구관계 1

친구의 첫인상



 친한 친구와 손절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인데, 나만 친하다고 착각한 것 같다.

 “성규”란 친구인데,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손절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연락 안 한 지 몇 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각자 용기 내어 연락해, 만나 이야기로 서먹한 관계를 풀어볼 만도 한데, 서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앙금만 남아 있는 듯하다. 이제 단절에 대한 미련도 없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헤어지니 허망하다. 한편으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주변의 아는 형의 경우, 정신적 경제적으로 많은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사람만 잃었다. 성규와 손절하는 과정에 경제적 손실은 없다. 하지만 같이 놀며 쌓아왔던 아름다운 추억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고 그 아름다웠던 추억이 쓰레기로 전락하게 된 사실이 섭섭할 뿐이다.



 어릴 적부터 “친구”라는 개념은 좋은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쯤이었다.(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다.) 교실에서 같이 수업받던 반친구 3명이 나에게 다가와, 나의 생일날짜를 물어보았다. 그리 친하게 지내온 사이가 아니라 의아했다. 하지만 의구심보다는 새로운, 친한 친구가 생길 수 있다는 흥분이 나를 사로잡았다. 

- 내 생일? 내 생일 3월인데, 한 달도 안 남았어. 근데 왜?

- 네 생일 축하해주고 싶어서. 네 생일날 우리 초대해. 다 같이 너네 집에서 놀자.

- 그래. 알았어.

 그 후 3명의 친구들은 내게 관심을 보였고 우리들은 예전보다 친해졌다. 

 내 생일이 주말과 겹쳤다. 어린 나는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주말에 친구들이 내 생일을 축해해 주러 집으로 올 것이라고. 어머니는 당시 대기업 생산직으로 일하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경 쓰이고 귀찮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싫은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해 주셨다. 

- 반 바뀐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친구가 생겼어? 기특하네. 그래. 우리 집에 친구들 데려 와.

 친구들이 12시쯤에 왔다. 어머니는 짜장면을 사람 수대로 시켜주시고, 나와 친구들이 편히 놀 수 있도록 거실을 내어주고 본인은 방에 들어가셨다. 그 나이에 걸맞은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놀았다. 3명의 친구들이 생일선물이라며 각자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과자나 장난감, 헌 만화책 등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렴하고 형편없는 선물이다. 그 당시에는 물건의 가치를 가늠하지 못했고, 선물보다 나를 위해 모인 친구들이 고맙고 소중했다.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가 준비한 과일을 먹고 음료수도 나눠마셨다. 떠들고 놀며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이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친구들은 어머니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집을 나섰다. 

- 그래. 착하기도 하지. 다음에 또 놀러 와.

 어머니는 현관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고 나는 친구들을 배웅해 주기 위해 친구들을 따라갔다.

 3명의 친구들과 더 어울리고 싶어 한참을 배웅해 줄 생각이었다. 친구들과 나란히 거닐었다. 우리 집이 보이지 않을 때쯤, 세명의 친구들이 서로 눈치를 주며 내가 모르는 사인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별안간 세명의 친구들이 동시에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와 배를 주먹으로 치고 발로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리고는 3명의 친구들이 전속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한 놈은 혀를 보이며 “메롱”하며 놀렸고 나머지 2명도 낄낄대며 웃었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뒤쫓아가며 따져 물었다.

- 갑자기 왜 때리고 장난치는데?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여전히 웃으며 도망갔다.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았다. 화가 나는데 때릴 수 없으니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야이 씨발놈들아. 개새끼들아.

- 니가 더 씨발놈이다. 병신 새끼야.

 내 욕이 그들에게 더 재미난 오락거리가 되었다. 세 놈은 더 크게 웃으며 나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혼자 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울하다. 내가 이용당한 것이다. 저희들끼리 놀던 중 오락거리를  찾다가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조용히 있으니, 나를 목표물로 삼은 것이다. 순해 보이는 나를 이용, 우리 집을 놀이터 삼아 놀고 맛있는 거 잔뜩 먹을 것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내게 성지나 다름없는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려서 음식도 대접했다. 그 당시 얼마나 우울하고 화가 났으면 성인이 된 후에도 또렷이 기억난다. 

 집으로 돌아가니, 어머니가 친구들이 먹은 것을 치우고 있었다. 

- 친구들 잘 배웅해 주었지?

- 네.

 난 방금 전에 친구들이 나를 때리고 놀리며 도망간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상처는 나만 받으면 됐지.’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 세 친구는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이다. 괜히 화난다고 덤벼들었다가 세 놈이 동시에 공격할 수도 있기에 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했다. 하지만 너무 괘씸해 내 머릿속에 그 상처가 각인되었다. 

 1년이 지나, 한 학년 올라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3명의 친구들과 헤어졌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었고, 나의 생일이 3월이므로 또다시 내 생일도 다가왔다. 

 2월 말, 우리 집이 이사를 갔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족들이 이삿짐을 나르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내가 저학년이고 이사 갈 곳이 멀지 않았기에, 어머니가 내게 미리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부모님을 도와, 이것저것 짐을 나르다 복수할 방법이 생각났다. 다시 주말이 되었다. 세명의 친구들 집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나를 때리고 도망가기 전까지 소중한 친구라 생각했었다. 친한 친구라면 연락처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집전화번호를 물어서 메모한 것이다. 

 3명의 친구 중 대장 역할을 하는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의 부모님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같은 학교친구라며 친구 좀 바꿔달라고 했다. 

- 잘 지내지? 나야. 학년 올라가니깐 다들 다른 반이 되어버렸네. 아쉽다. 다음 주 주말이 내 생일이야. 여러 가지 먹을 거 많이 준비했는데, 올 사람이 없어. 반이 바뀌니깐 친한 친구가 없어. 너희들 올래?

- 그럼 당연히 가야지.

- 너 우리 집 어딘지 알지?

- 당연하지.

- 그래. 너희들 3명 다 같이 와. 다음 주 주말 점심시간즈음에 오면 될 것 같아.

- 응. 그래.

 친구는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음 주 주말 점심이 되었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3명의 녀석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맛난 음식  실컷 먹을 것을 기대하며 왔을 텐데 엉뚱한 사람이 나오니 말이다. “당했다.”며 허탈해하며, 화를 내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짜릿하면서도 시원했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 쉬는 시간, 3명의 친구들 중 한 명이 내게 따지러 왔다.

- 이사 갔으면 말을 해줘야지. 헛걸음했잖아. 선물도 준비했는데. 저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복수한 거야?

- 그래. 복수다. 이제 알았냐?

 그 친구는 몇 초간 노려보더니 가버렸다. 

 친한 친구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 녀석들 때문에 “친구”라는 것에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다. “친구”라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필요한 존재 같지도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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