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 이래 몇몇 개의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하며 살았다. 경기도 안산 각지와 서울 신림 대학동을 거쳤고, 지금은 다시 경기도로 돌아왔다. 고시원과 원룸, 각 주거 양식에 따른 월세, 보증금, 관리비, 공과금의 무게와 삶의 양식에 대한 기록을 나누고 싶다.
고시원
여성 층과 남성 층을 분리해 놓은 일반적인 형태의 고시원이었다. 창문의 유무와 내부 화장실의 유무에 따라 가격이 이 달라진다. 작은 공용 주방에 세탁기와 조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라면, 쌀, 김치 등이 무료로 제공되며, 밥통을 비운 사람은 밥을 지어 놓는 게 매너인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보통 내부 화장실과 침대 매트리스를 갖춘 고시원의 방 크기는 보통 사람 보폭으로 채 다섯 걸음이 안 된다. 사람 두 명이 마주 앉으면 방이 꽉 차며, 물티슈 1~2 장으로 방 전체를 닦을 수 있을 지경.
이렇게 협소한 공간에서는 아무리 잠만 자며 생활한다 해도 사람이 깝깝하고 피폐해진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갈 곳이 그 감옥 같은 개미굴이라니. 없던 근심도 생길 지경. 방음은 거의 안 되는 수준이며, 누군가 공용 주방에서 어떤 음식을 해 먹으면 내 방 안에서 다이렉트로 알 수 있다. 이런 공간을 과연 ‘내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좁아터진 혼성 고시원은 그냥 ‘유료 교도소’라고 생각한다. 월세는 경기 외곽 20만 원에서, 서울 40만 원대 정도로 형성되어 있다. 고시원의 월세에는 보통 관리비와 공과금, 인터넷 사용료가 모두 포함된다. 보증금(예치금)은 작게는 10만 원에서 시작한다. 고시원마다 다르겠지만 거의 무보증이라고 보는 게 맞다.
여성 전용 고시원
경기도 안산의 대학가에 위치한 ‘여성 전용’ 고시원이었다. 이곳은 흔히 고시원 하면 떠오르는 닭장 같은 방이 아니라 꽤 넓었으며(5~7평 정도), 내부 화장실과 작은 냉장고도 있었고, 여러 가지로 꽤 쾌적했다. 다들 근처 대학에 재학하는 학생들인지라 기본적인 매너도 있고 공용 시설도 깔끔하게 사용했다. 특히 혼성 고시원은 공용 세탁기가 정말 골치였는데, (얼른 내 빨래 돌려야 되는데 이름 모를 남자 팬티가 몇 시간째 공용 세탁기에 담겨 있을 때의 심정이란..) 여성 전용 고시원에서는 세탁기로 인해 곤란한 일이 전혀 없었다. 외부로 통하는 큰 창문도 있었다. 예치금 10만 원, 모든 관리비와 공과금을 포함한 월세가 35만 원이었다. 그러니까 당장 거취가 급하고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여성분들은 대학가 근처 ‘여성 전용’ 고시원을 추천하고 싶다.
여기서 추가로 풀 썰이 있다. 나의 고시원 방은 출입문 바로 옆 1층이었다. 으슥한 밤, 과제를 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나의 살짝 열려있는 창문을 쿵쿵 두드리는 것이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다행히 방범 창살이 설치된 창문이었기에, ‘뭐야..’ 하고 밖을 내다보니, 아마도 우리 학교 학생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있었다. 날 보고 하는 말이 ‘안녕하세요.’였다. 안녕하길 뭘 안녕해. 즉시 창문을 쾅 닫아버리고 잠근 후 침대에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일화로 말하고 싶은 것은, 1층이라는 주거 공간은 여성이 살기에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뭔 피해를 입었기에 안전하지 않다고 하냐고 되 물을 수도 있는데, 그 X 같은 조우를 당한 순간의 기분은 여성으로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앞으로 창문을 잠그고 살아야 하나? 나는 일부러 외부 창문이 있는 방으로 돈을 더 내고 들어왔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그냥 검은색 하드 보드지를 사서 보안 창살에 기대어 나름의 가림막을 두는 방법으로 조치를 취했었다. 창문을 꽁꽁 닫고 살긴 너무 억울했으니까. 이래저래 할말하않이다.
서울 신림 대학동 원룸
이곳은 다른 원룸촌에 비해 꽤.. 특수하다. 골목골목과 언덕배기를 빼곡하게 원룸 빌라 건물이 채우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건물마다 옥탑방과 반지하가 착실하게 들어서 있다. 선택지가 많으니 가격이 저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격을 떠나서 이곳의 원룸 퀄리티는 정말 심각하다는 것이다.
여성 전용 고시원을 떠나 나의 개인 주방과 세탁기가 있는 나의 공간에 머물고 싶었다. 없는 형편에 선택한 곳이 바로 서울 신림 대학동. 대학동에는 보증금 10~100에 30~40을 웃도는 원룸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무작정 이곳으로 와 건물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부동산 중개 어플은 허위 매물이 판쳐서 애초에 선택지로 두지 않았다.) 그리고 꽤 여러 건의 원룸 월세 집을 직접 봤다.
한 낡은 빌라, 집주인분을 만나 인사하고 가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100에 30만 원. 인터넷은 포함이지만 관리비, 공과금은 따로. 나는 수긍하고 집주인분이 인도하는 반지하로 따라 내려갔다. 굉장히 어두컴컴했다. 이윽고 방 앞에 도착한 집주인분은 꽤 과감하게 문을 두드리셨다. 쾅쾅쾅! 나는 여기서부터 꽤 놀랐다. 보통 세입자가 있어도 서로 간의 합의 하에 정중한 분위기로 방을 보여주지 않나? 놀란 나의 기색을 살피며 주인분은 덧붙이셨다. 이 학생이 잠이 많아서. 껄껄껄.
곧 문이 느지막이 열렸고, 음. 그곳은 ‘방’,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엔 정말이지 너무나 협소했다. 문 밖에 서서 방 안에 뭐가 있는지 전부 파악될 정도였으니까. 그때의 소감은 도무지 뭐라 표현할 수 없다. 현관문 두 발짝 앞에 떡하니 매트리스가 놓인 광경. 그 개미굴 같은 공간에 세탁기, 싱크대, 미니 냉장고가 꽉 꽉 들어 찬 기묘한 공간. 이렇듯 그냥 원룸도 미친 듯이 작은데 ‘미니원룸’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인간으로서 살기 부적합한 방을 마구잡이로 세를 내준다.
나는 비스름한 처참한(?) 공간들을 여럿 감상한 후 월세를 타협하기로 했다. 30만 원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곧 40만 원에 대학동 저 언덕 끄트머리 2층에 입주하기로 했다. 외창이 있지만 남의 단독주택 뒷 담벼락이 채광을 꽉 막고 있는 뷰. 하지만 큰 옷장과 책상, 침대가 들어차고도 사람이 숨 쉬고 살 만한 최소한의 공간임에 만족했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채광이 전무해서 빨래가 마르지 않았다. 작은 집 바퀴벌레를 냉장고 안에서 마주쳤다. 2층이지만 반지하와 비슷한 뷰. 이런 것들 때문에 서서히 마음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제일 큰 문제는 방음이었다. 나는 대학동 거주 경험 이후, 무조건 귀마개를 끼고 잔다. ‘귀가 트인다’는 말이 있다. 한 번 벽간, 층간 소음을 진득하게 겪고 나면 청각과 정신 상태가 굉장히 예민해진다는 뜻이다. 심지어 옆방이 심한 소음을 내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일상적인 말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통화하는 소리, 혼자 웃는 소리. 이런 소리들이 내가 원치 않을 때 랜덤으로 들려오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을 굉장히 괴롭게 했다.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벽을 치면 더 세게 맞받아 쳐온다. 집주인한테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건물 자체가 문제니까.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결국 나는 심신의 상처만 안고 대학동을 떠나기로 했다. (여기서 부끄럽지만 어머니의 손을 빌렸다.) 떠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굳이 복비를 내기 싫어서 집주인과의 협의 하에 직접 원룸 양도자를 구했었다. 그런데 내 보증금 50만 원을 가지고 있는 집주인이 별안간 돌변한 것이다. 내가 세탁기를 고장 내고 도망 나간다느니, 세탁기 수리비를 떼야한다느니, 제대로 된 사람한테 양도한 게 맞냐느니 하며 어이없는 꼬투리를 잡고 책임을 물었다.
나는 그동안의 울분을 실어 거세게 대응했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타인과 제일 크게 대치한 경험일 것이다. 결론은 보증금 50만 원을 무사히 돌려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떳떳한 이상, 임차인 보호법을 내세우며 항의하면 집주인은 줄 돈을 돌려주게 되어 있다. 전국의 세입자 여러분들, 집주인에게 단돈 10만 원이라도 떼이는 일이 없길 바란다. 애초에 양아치 집주인과 엮이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신림 대학동 원룸 월세는 선택지에서 빼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일반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소형 오피스텔
그렇게 나는 엄마께 손을 벌려 보증금 1000만 원으로 새 주거 공간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신림에서 대차게 데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깔끔한 부동산을 끼고, 전입 신고도 제대로 하고, 활기차게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뷰’에 한이 서려 있었기 때문에 한쪽 벽이 통창으로 되어 있는 서울의 한 오피스텔을 선택했다. 방 크기는 역시 5평 정도로 좁았지만 분위기는 고시원, 일반 원룸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친절한 경비 분이 상주했으며, 관리 사무실도 따로 있는 정말 ‘주거공간’ 다운 건물. 물론 관리비는 꽤 비쌌다. 월세 35만 원에 기본 관리비가 7만 원, 거기에 공과금은 사용한 만큼 따로 붙어 나왔다.
그래, 몇 달간은 숨이 트였다. 그런데 웬걸. 공사 현장의 아침 조회 방송, 체조 소리가 날 건드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바로 아래서 무언가 공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름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주민센터 이전 공사라고 했다. 아, 그럼 5층 이상까지는 안 올라오겠네. 섣부른 안심이었다.
요즘의 건설 공사 속도는 정말 빠르다. 하루가 다르게 층이 켜켜이 올라오더니만 결국에는 12층, 나의 창문 바로 앞에서 공사를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몇 달 내내 공사 소음을 서라운드로 들은 것은 덤이다. 이 방을 양도할 의지도 없었다. 누가 저 창밖을 보고 이 방에 입주하겠는가. 헛웃음이 나왔다. 내 방 앞에서 벌어졌던 공사는 그냥 주민 센터 이전 공사가 아니라 ‘행복주택’ 건설이었던 것.
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누구를 위한 ‘행복주택’ 일까? 나의 방을 떡하니 들여다보며 마주 뚫린 창문을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저 공간에 입주할 사람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새로 지어진 행복주택과 나의 오피스텔의 실질적인 거리는 체감 3미터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참 지켜지지 않는 주거 공간과 주거 공간 사이의 간극. 숨이 막혔다. 그 와중에 좋은 새 집주인분이 이 오피스텔을 매매했다. 내가 돈이 있다면 절대 이 오피스텔은 구매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여하튼 새 집주인분에게 보증금을 건네받고 나는 3년 만에 서울을 떠났다.
지금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65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복층, 투룸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지금까지 거쳐 왔던 자취 공간에 비할 수 없이 굉장히 ‘로얄’ 급이다. 그런 만큼 지난달 관리비는 19만 원이 나왔다. 무시무시한 고정비를 감당하는 자만이 해방된 뷰와 살만한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주거 공간의 컨디션은 특히 집순이인 내게 너무나도 중요하다. 나는 나의 정신적 안정 비용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월세와 관리비를 지불할 생각이다.
젊고 가난한 사람들이 주거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람’이 살만한 공간을 세를 받고 팔 생각을 하는 게 도리 아닌가. 무작정 건물 지어놓고 칸막이로 분리해 놓았다고 다 방인가? 서울엔 그런 방 아닌 방, 집 아닌 집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엉망인 방 조차도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다고 생각하면 참 침울하다.
의료 강국, 건강 보험 수준 최고인 우리나라. 정신적 건강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강’ 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부적합한 주거 시설은 반드시 사람의 정신 건강을 해친다. 사생활도 없고 햇빛도 없는 쥐굴 속에서 몇 개월 살다 보면 누구나 무기력해지고 비관적이게 되기 마련이다.
모두가 역세권 번듯한 아파트에서 살 수는 없지만, 월세/전세를 떠나서 마음 놓고 ‘자기 공간’이라고 여길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시설을 보장받는 사회가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