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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n 17. 2022

그거 쬐끔 먹인다고

 딸은 커피우유를 좋아한다. 세 살 때부터... 

세 살 때부터 편의점이나 슈퍼에 가면 늘 커피우유를 사달라고 졸랐고 아기에게 카페인을 먹일 수 없었던 나는 커피우유 때문에 딸이랑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잦았다. 딸이 시원하고 달달한 맛을 게 된 원인이 시댁에 있다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시댁 냉장고에  커피우유가 있었고  때문에 나는 시댁에 가면 으레 냉장고부터 열어보고 그것들을 죄다 야채칸에 숨겨놓기 바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무색하게 시어머니는 내 눈치를 봐가며 몰래몰래 딸에게 커피우유를 먹이고 있었다. 

 "아니. 어머니. 애한테 그걸 먹이시면 어떻게 해요?"      내가 기겁을 하면 시어머니는 늘

 "그거 끔 먹인다고 어찌 안된다."라는 말씀으로 상황을 종료시켰고 그 뒤에 걱정거리는  내 몫으로 남겨졌다.


 시댁에서 고추장찌개를 끓이고 있던 어느 날. 곁에서 놀고 있던 딸이 고추장의 맛이 궁금했는지 그걸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안돼!" 나는 단호하게 하고 왜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딸에게 조근조근 아이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건 엄청 매워해요. 그래서 아기앙! 하고 먹으면 입에서 불이 막 난대요."

 그런데 옆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고추장을 푹 찍어 순식간에 아이의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머니. 그걸 먹이시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이번엔 용기 내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어머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야! 얘도 먹어봐야 이게 어떤 맛인지 알고 다시는 안 달라고 하지. 그리고 이거 끔 먹었다고 어찌 안된다." 

 어머님의 말씀이 이번엔 왠지 설득력이 있게 느껴졌다. 딸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입에 있는 고추장을 침과 함께 연신 뱉어내고 있었고 어머님의 말처럼 다시는 고추장을 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어린애의 입에 매운 고추장이 들어갔던걸 눈으로 봤던 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고 그날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아기가 고추장을 먹었을 때''아이가 고추장을 먹었어요' 조금씩 말만 바꿔가면서 검색창에 입력을 하고 '괜찮아요'라든가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는 식의 답변만 집중적으로 찾아 읽으며 안심을 하려 애를 썼다.


 나는 어머니님의 그런 점이 늘 불만이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굳이 몸에 좋지도 않은걸 애한테 왜 먹이시려는지, 그 저의는 뭔지, 속 시원하게 따져 물을 수도 없던 나는 애꿎은 남편만 들볶게 되고 극기야는 시댁에 가는 것까지 꺼리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시어머님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이던 어느 날. 남편과 부부동반 모임 약속이 있던 나는 시어머님께 딸을 맡기고 외출을 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절대 아무거나 먹이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드렸고 어머님은 내가 너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시댁에 갔던 그날 저녁에 내가 본 풍경은 나를 폭발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머님과 세 살짜리 딸이 마주 앉아 겸상을 하고 있었고 딸의 작은 손에는 간장게장 다리가 들려있었다. 딸은  게다리를  움켜쥐고서 쪽쪽 빨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님은 간장에 푹 삭은 게의 살을 발라 연신  아이의 밥 위에 올려주고 있었다. 듬뿍듬뿍...

  "아니, 어머니, 그 짠걸 아이한테 그렇게 먹이시면 어떻게 해요?" 

 나는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고 어머님은 늘 그랬듯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야! 아무리 애지만 얘도 간이 좀 있어야 밥을 먹지. 너는 맨날 심심하게만 주니까 얘가 밥을 잘 안 먹는 거야. 너 같으면 간도 없이 심심한 게 먹고 싶겠냐? 봐라 얼마나 잘 먹나. 그리고 쬐끔 먹었어. 그거 쬐끔 먹는다고 어찌 안된다. 호들갑은..."


 정말 그걸 먹고 딸이 당장 어찌 되는 일은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후로 18살이 된 지금까지 딸의 최애 음식이 간장게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님은 어려운 형편에 삼 남매를 키웠던 분이다.  남매의 배를 곯지 않게 하기 위해 음식을 가리고, 따지고 할 여유 따윈 없었. 그저 새끼들이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먹여서 배부르게 해 주는 것이 목표였으며, 아이들의 배부른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런 어머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것이 뭐든 먹여야 했고 그 습성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그런 어머니의 눈에 아이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게 하고 가리는 것도 많았던 내 행동이 가시였을 거라는 건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 아닐까? 몸에 좋든 안 좋든 따지지 않고 아무거나 먹이는 어머님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다 지난 일 있어서인지, 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머님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생겨서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잔병 없이 잘 자라준 딸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그 생각으로 이어진다. 정말 어머님의 말씀대로 그거 쬐끔 먹인다고 어찌 되는 건 아닐 수도 있는 거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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