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전이 검사

by 혜진

병원 2층 원무과 대기 의자, 하나, 둘 전등이 꺼지고, 의사도 직원도 모습을 감춘 복도, 아직 난 검사할 게 조금 더 남았다. 주사를 4방이나 찔리고도, 아직 주입해야 할 약품이 더 있으므로 2번은 더 찔릴 것이다. 주사 4방 가운데, 2방은 혈관 찾기에 실패한 결과이고, 앞으로 맞을 2방 중 1방 역시 이미 찔린 자국이 있으므로, 굳이 혈관자리를 찾지 않아도 되는 개꿀 기회를 간호사가 놓칠 리 없다.


저녁 6시, 병원 직원들이 다 퇴근한 시간이라, 남아있는 영상의학과 의사와 채혈 간호사, 프런트에 있는 간호사는 낮보다 더 차분해진 모습이다. 각자 휴대폰 스크롤을 열심히 굴리거나, 카톡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


오늘은 공식적 마지막 전이 검사를 하는 날이다. 산정특례기간이 곧 끝나기 때문에, 그전에 전이된 곳은 없는지, 뼈 검사 및 흉부, 복부 CT, 기본 채혈 등, 굵직한 검사를 국가의 지원으로 받는 마지막 날인 것이다. 물론, 내가 전이가 됐을 경우, 산정 특례 기간은 5년 더 늘어나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오전에 기본 채혈과 유방 디지털 촬영, X-ray 촬영을 끝내고, 이제 뼈검사와 CT검사를 앞두고 있다.


2년 전 같은 검사를 받았다고, 검사 전 상담 간호사가 말해주었는데, 분명 힘든 검사였을 텐데 벌써 잊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6번째 주사 바늘은 이제 더는 찌를 곳이 없어서 엄지 손가락 아래 손목과 손등 사이의 혈관을 찾아 들어갔다. 방사성의약품을 주사하고는 3시간 뒤, 전신 뼈 검사를 하고, 3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조영제를 주입하여, 흉부와 복부 CT를 찍었다. 전이된 곳이 없는지 정밀하게 검사하는 과정이라 이해해야 하지만, 의약품 두 가지를 몇 시간 안에 혈관에 주입한다는 것은 영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년 전 불 꺼진 원무과 대기 의자에서 멍 때리고 있던 내 모습, PET검사를 위해 통 안에 들어가던 순간의 내 감정, 검사가 끝나고 내려왔을 때, 영상의학과 의사가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해서 울컥했던 것 등은 기억이 난다. 검사실 소지품 바구니에 휴대폰을 두고 나와 다시 찾으러 갔던 것까지도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검사가 힘들었는지 잊어버린 것을 보면, 힘든 순간을 인간은 참 잘 잊는 것 같다.


검사가 다 끝난 후, 6개의 바늘 자국과 멍, 조영제가 되었든 방사성 의약품이 되었든 내 몸에 오래 있어서는 안 되는 그것, 그리고 그것을 배출하기 위한 물 2병이 남았다. 1병을 겨우 비워내는 데도 배가 너무 불러, 1병은 그냥 가방에 넣어 가져가기로 한다.


오늘은 기분이 이상할 거라 생각했다. 오늘은 좀 특별한 감정이 생길 줄 알고 노트북을 챙겨 왔으나,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검사를 나는 또, 멍하니 받고 있을 뿐이었다. 검사를 받고 다소 지친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하루가 지났다. 왼쪽 손목 바로 아래에 자잘하고 빼곡한 두드러기가 났다. 아무래도 조영제가 완전히 배출되지 않았나 보다. 검사가 끝난 후, 남아있던 물까지 해서 700미리 정도 먹었는데, 먹어야 할 물의 양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내 몸의 대사가 원래 느리거나, 왼쪽 겨드랑이 임파선을 몇 개 자른 이유로 왼쪽에 노폐물이 잘 쌓인다 거나, 아님, 몸에 안 좋은 것들을 너무 많이 집어넣은 결과이겠다.


오늘은 진료가 있는 날이다. 의대 증원과 관련한 이슈로 인해, 의사들이 사직하고, 진료나 수술이 미뤄지고, 그로 인한 대형병원 적자가 시작된 가운데, 나는 신장내과와 유방외과, 각종 검사와 진료까지 예약한 일정대로 운 좋게 마칠 수가 있었지만, 다음 예약을 잡을 때, 진료 횟수가 확연히 줄어, 날짜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물론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느낀 것도 기분 탓일지는 모르겠다. 뭐 늘 환자가 넘치는 유방외과이지만, 오늘따라 주치의도 대기의자 세 자리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 우뚝 자리하고 있는 간호사들도 유난히 피곤해 보인다. 그들을 피곤하게 하는 건 물론, 상담 중인 간호사에게 매너 없이 접수증을 쑥 내밀어 보이는 나이 많은 환자이거나, 의사와 상담을 자세히 못한 탓에 이것저것 간호사에게 물어보는 환자, 아니면, 의사와 충분히 상담을 하고도, 확인 차 이것저것 묻는 환자, 다른 병원에서 검사 및 진료를 받으라고 해도 싫다고 예약 잡아달라는 환자들 때문이겠다. 그런 환자에게 지금 상담 중인 게 안 보이냐고 정색을 하거나, 그걸 의사에게 물어야지 왜 나에게 묻느냐 거나, 평소 말하는 톤에서 50프로는 힘을 빼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일부러 어눌하게 말하거나, ‘감사합니다’라는 환자의 인사에 대꾸도 안 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냥 기분 탓이려니 믿고 싶다. 아침도 안 먹고 병원까지 2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탓에, 바로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사 먹을 계획이었으나, 빠른 진료가 가능하다는 카톡 메시지에 속아 공복으로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원래 예약한 시간에 진료를 받게 된 것이 못마땅해하는 말은 아니다.


검사 결과는 다 정상이었다. 전이된 곳이 없이 깨끗하며, 약을 복용한 지 5년이 되는 6개월 후에 공식적으로 약물치료를 종료하고, 그다음부터는 1년에 한 번씩 병원 진료를 받는다. 허무하지도 않을 만큼 예상된 결과였다. 이 모든 검사와 진료를 받는 과정이 부담스럽고, 거창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 세상엔 나보다 심각한 환자들이 많다. 내가 중증질환을 두 개 갖고 있을 만큼, 이 세상엔 중증환자들이 많고, 그들의 중증도는 매우 세분화되고, 그것이 심각한 상태가 되기 전에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고, 그 검사를 통해 더욱 정확한 진단 및 치료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의료 기술은 수많은 검사와 수술을 통해 더욱더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검사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직도 녹갈색으로 멍들어 있는 내 손등과 팔, 그리고 두드러기가 올라와 오돌토돌한 손목을 보니, 검사결과가 더욱 무색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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