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병장의 무너진 시작

#1. 그날, 나는 군인이 되었다 ▶ 그때부터였다, 눈치부터 보던 군생활

by 익명

“넌 진짜 호구야.”


처음엔 웃기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그 말은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가,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호구’ 혹은 '노예'


웃기잖아?

근데, 하나도 안 웃겼다.


내가 그렇게 불리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너무 착해서,

너무 열심히해서,

너무 참아서.


그 시작은 아주 소박한 하루였다.

군대를 가기 전, 아버지와 함께 먹은 순대국밥 한 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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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집에서 일찍 나섰다.

훈련소 근처 허름한 국밥집에서,

나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따뜻한 국물을 떠먹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기분 좋게 가보자.”


그게 내 마음가짐이었다.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웃으며 걸어 들어가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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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훈련소에는

이미 많은 부모들과 예비 훈련병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연병장에 집결했다.


그 넓은 공간 한가운데,

사복 차림의 수십 명이 멍한 얼굴로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수많은 부모님들이 애써 웃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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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는 그곳에서

사진을 딱 한 장 찍었다.

마지막 장난기 어린 웃음을 남긴 채,

나는 중앙으로 불려 갔다.


이름이 호명되고,

줄이 세워졌다.

그때부터였다.

진짜로, 헤어지게 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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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끝까지 웃고 있었다.

내가 돌아보았을 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표정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한 번 더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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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민간인으로서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정면을 향해 걸었고,

그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조용히 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