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송지영 작가님의 <널 보낼 용기>를 읽고

by 무명독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누구지?

돌돌이밀대를 세워놓고 거치대에 올려진 휴대폰을 집어 화면 그대로 밀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발신자의 소개를 듣고도 도통 감이 안 왔는데, ‘테일탱고’, ‘북토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송지영 작가님의 <널 보낼 용기> 북토크 취소표가 생겼구나.


전화를 끊자마자 책을 받은 12일 저녁의 저를 떠올렸습니다. 뒤표지와 띠지를 읽고 책장을 넘겼던 저는 ‘영원히 열일곱일 나의 딸에게’가 적힌 문장을 보고 다음 페이지로 넘기려던 손을 그대로 내려놔 책을 빠르게 덮었습니다. 아, 슬픈 책 괜히 샀네.

완독 후의 제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싫었습니다. 읽고 난 후의 슬픈 여운이 오래갈 것이고, 결국엔 이 여운에 서서히 잠식되어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을 제가 분명해서 싫었습니다.


[참가 확정 안내] 제목의 문자를 받자마자 독서대에 <널 보낼 용기>를 다시 올려놨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영원히 열일곱일 나의 딸에게’를 읽고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고를 반복했습니다. 60페이지까지 읽으니 따뜻한 차가 필요했습니다. 아니 다도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건조된 차도구들을 순서에 맞게 나열하고, 차호 뚜껑을 열고 말려진 국화 꽃송이를 다관에 소분하고, 찻물을 끓이고, 체 장치로 찌꺼기를 거르며 마음의 안정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독서대 옆으로 워머를 놔두고 그위로 진한 수색의 국화차가 담긴 다관을 올려놨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작가님의 문장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휴대폰 전원을 끄고 독서했습니다. 으스한 공기, 간헐적으로 들리는 달그락 소리와 함께 5시간의 독서를 마쳤습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뒤로하고 12일 저녁의 저를 제대로 마주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했었던 저의 표정이 먼저 보였습니다.


송지영 작가님.

23일에 용서를 구하러 가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주하고 싶었던 그날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