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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앙다 Jul 31. 2024

육아휴직의 일상

새벽 다섯시. 나 말고 울애기 기상시간이다. 엄마 아빠는 졸려 죽겠는데 우리집 겸둥이는 잠 자기 싫다고 놀고 싶다고 엄마 아빠를 목청껏 부른다. 맘마를 먹고 조금 진정되면 한두시간을 더 잔다. 그리고 일곱시쯤 하루 일과를 다시 시작한다.


콘푸로스트를 말아 먹고 애기랑 놀다보면 울애기 또 밥 먹을 시간. 맘마를 먹고 졸음과 싸우는 애기를 달래 재우고 나는 잠시 휴식한다.


그리고 일어난 우리 애기는 또 맘마를 먹고 열심히 논다. 나도 점심을 챙겨 먹고 울애기랑 최선을 다해 놀아본다. 그러면 두시쯤 다시 낮잠 시간이 온다. 애기가 잠들면 나는 본격 집안일 시간. 젖병도 닦고, 청소랑 빨래도 하고, 시간이 더 있으면 반찬도 한다. 물론 반찬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해 먹는 것보다 사먹는게 훨씬 경제적인 것 같다.


두번째 낮잠을 마치면 맘마를 먹고 산책을 나간다. 전에는 유모차 타면 바로 잠들었는데, 요즘엔 여기저기 구경을 한다. 이제 시력이 점점 좋아져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할 때쯤이면 울애기는 쿨쿨 자고 있다. 이렇게 세번째 낮잠은 주로 유모차에서 잔다. 최근에는 비가 많이 와서 산책을 못 한 날이 많았는데, 이제 장마 끝났으니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집에 와서 남편과 저녁을 먹고 애기 목욕을 한 다음 마지막 맘마를 먹고 자러 간다. 엄마 아빠 저녁 먹는 시간에는 육아템들이 큰 도움이 된다. 모빌, 바운서, 바퀴 달린 범보의자 등등 덕분에 엄마 아빠는 저녁 먹을 여유가 생긴다.


여덟시쯤 육퇴(육아퇴근) 후, 잠깐 어른의 시간을 갖는다. 별 건 없고, 과자 먹으면서 유튜브 보는 게 대부분이다. 홈캠으로 울애기 잘 자는지 틈틈이 확인하면서..


이렇게 비슷한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그러다보면 가끔은 내가 이렇게 지내도 되나 싶은 기분이 든다. 너무나도 한량처럼 애기랑 놀고 먹고 자고. 이제 들어오는 월급도 없는데 돈만 쓰면서 지내고..


아무래도 너무 바쁘게 살아와서 그런가보다. 10대는 공부로, 20대는 취업과 연애로, 30대는 사회생활로.. 그렇게 쉬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안 하려니 뭔가 찝찝한 기분이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한 생명을 키우고 있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그 어떤 일보다도 고차원적인 일인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걸까. 돈을 버는 것만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나도 모르게 세뇌된 게 아닐까.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린..


육아휴직 중에 애기만 건강하게 키울 게 아니라, 내 사고방식도 건강하게 회복해야겠다. 우리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고 가치있는 게 뭔지, 다시 공부하고 배워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이런 시간을 내게 선물해 준 울애기야, 넌 정말 보물이다.


옷도 양말도 다 귀여워. 그 중에 네가 제일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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