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연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냥 안정감을 찾고 싶던 시기에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
약간의 충동감을 곁들인 만남이었지만,
안정감을 찾고 싶다는 나의 목표는 어느정도 달성한듯 보였다.
그 애와 있을때는 성가시기만 했던 날들이
수현이와 있을때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만나면서
재회한 연인들이 겪는 상황들을 내가 온전히 다시 겪게 될줄은 몰랐다.
1년이 다시 지나고 만난 옛 연인은 별 다를게 없었다.
매일 같은 루틴과 옛날의 생각 그대로,
우리의 대화는 1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나도 모르게,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라이프 사이클과, 새로운 동료들을 겪게 되었고,
나의 인간관계의 정의를 뒤흔드는 어떤 사람을 만나는 동안,
수현이는 변한게 없었다.
새롭지 않은 관계로 돌아갔지만, 묘하게 달라진 나를 나보다도 수현이가 먼저 알아챘다.
“우리 예전에 자주 갔던 이자카야 갈까?”
하지만 그 가게는 없어졌고,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 겪는 유형의 어려움을 털어놓아도
“오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지금 예민한걸거야. 적응되면 예전의 오빠로 돌아가겠지”
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그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묘하게 뒤틀린 관계와 대화에 찜찜해진 날들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나와 매번 반대의 생각을 말하며, 그동안의 내 생각과 신념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고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그 애가 생각이 났다.
그 애는 그랬다. 나의 생각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도,
서로 감정상하지 않게 하지만 서로 얘기해가면서 오히려 나에 대해 깨닫고, 나의 세계가 어떤지 들여다보게 하는 애였다.
계속해서 부딪혀 오는 감정때문에 내 정신을 흔들며 혼을 쏙 빼놓다가도
차분히 대화를 나누면서 정립되어가는 스스로를 보며 놀라기도 하고,
내 신념이 어느샌가 누그러져있고, 계속해서 그 애와의 대화를 곱씹어보게하는.
그 당시에는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그 애와의 시간과 대화가 계속해서 잔상에 남는,
그런 시간을 거쳐온걸, 둔한 나만 몰랐고,
익숙하다고 하지만 그 사이에 오히려 새로운 사람이 되어버린 수현이와 만나면서 서서히 깨달아갔다.
그리고 그 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나는 더 이상 수현이와의 시간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신경쓰지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모난 눈으로 나에게 시비만 걸던 그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휴일에 열려있는 약국을 찾아 감기약을 사러갔을때까지도
나는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 애의 방에 들어가 약을 놓고 나오려던 순간,
어떤 악몽을 꾸는지 웅얼대는 그 애를 그냥 내버려두고 올 수 없었다.
아파하는 그 애를 내려다 보며 그저 멍하게 앉아있던 몇십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 애가 정의하는 사랑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안정된 관계 속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이었던 그 애와, 그 아이와의 대화가 생각났고
서로 많이 다르지만, 흥미롭고 새로운 자극이었던 그 애는 나의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뒤흔들며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신사납게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말 없이, 쏘아보는 눈빛도 없이
아무 미동 없이 누워있는 그 애를 보며 앉아있던 30분 동안,
조용히 서서히 아무 미동없이 흘러가던 나의 생각과 세계가
갑자기 일순간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인정했다.
그 애에게 하릴없이 휘둘리고 있었음을,
그리고 내 안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이 감정을 인정하자
벼락맞은듯이 그 자리를 황급히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