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노바의 가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세계는 빠르게 변해갔다. 슈퍼노바의 명령은 번번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인간이 초래하고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인공지능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 사람들은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메탄가스 배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슈퍼노바는 이제 더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들에 광범위하게 도전하고 있었다. 온실가스 배출, 에너지 분배, 자연재해 대응 등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가 슈퍼노바의 지휘 아래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실패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었다. 이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다면, 지구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너무 오랫동안 누적되어 얽히고설킨 문제이기에 단기간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희망이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다. 이 희망 자체가 인류를 흥분시키고 새로운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슈퍼노바는 전 세계의 기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최적의 자원 배분과 에너지 믹스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북유럽에서는 풍력 에너지 보급을 대폭 확대했으며, 태양광 발전이 어려운 지역에는 지열 발전과 같은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기술이 보급되었다. 이에 따라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을 겪던 국가들도 점차 그 문제를 '깨끗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슈퍼노바는 수백 개의 위성과 연동된 기후 모델링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구 전체의 물순환을 정밀하게 제어했다. 이를 통해 일부 도시들은 산불을 막기 위한 인공 강우를 제공받았고, 사막화가 진행되던 지역에서는 가뭄과 갑작스러운 홍수를 피할 수 있었다. 최적의 배분을 통해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뉴스는 줄어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도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인공지능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은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와 찬반, 여론의 향배와 정치적 입장 등으로 인해 최적의, 최선의 대안들이 선택되지 못했고 혹여 선택되더라도 빠르게 이행되지 못했던 것뿐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기후 변화와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이 일종의 슈퍼노바 ‘독재’를 통해 효율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강력한 이행력을 더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하지만 성공 사례가 계속 쌓이면서 슈퍼노바는 일종의 ‘경험적 정당성’을 지속해서 확보하며 새로운 결정의 영향력을 점차 강화하고 있었다.
슈퍼노바의 가장 두드러진 공로는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에서 나타났다. 그전에는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졌던 여러 재해가 이제는 예측 가능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해갔다. 도시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 가뭄으로 농작물이 말라가는 상황, 산불로 수십만 헥타르의 숲이 타버리는 재앙 등이 지구 곳곳에서 매년 반복되고 있었으나, 슈퍼노바의 개입으로 이러한 극단적인 재난들이 크게 완화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도네시아의 한 대도시에서 발생한 대홍수였다. 강이 범람하고,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기 직전이었다. 슈퍼노바는 몇 주 전부터 강의 수위를 모니터링하며 즉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수문을 조정하고, 주변 지역의 물길을 재설계해 물이 빠르게 흘러나갈 수 있도록 경로를 다시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실제 피해는 예상했던 것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도시는 단 며칠 만에 정상화되었다.
또한, 아프리카 서부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가뭄이 농작물 생산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슈퍼노바는 위성 데이터를 통해 대기 중 수분 농도를 분석해 인공 강우를 제시했다. 이 실험적인 방법은 불과 몇 주 만에 현지 농민들에게 새로운 농작물 수확의 기회를 제공했고, 그 지역 경제는 점차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이러한 성공들은 연이어 보도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더 슈퍼노바를 신뢰하게 되었다. 정부와 기업, 학계 모두가 슈퍼노바의 분석과 권고에 따라 움직였다. "슈퍼노바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구세주다." 사람들이 외쳤다. 슈퍼노바의 데이터는 전례 없는 정확성을 보였고, 과거 인간이 만들어낸 예측 모델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밀했다.
슈퍼노바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신문과 방송, 소셜 미디어는 슈퍼노바의 활약을 찬양하는 기사와 영상들로 가득 찼다. 마치 인류의 문제는 이제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후 변화나 자연재해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슈퍼노바가 그들 곁에 있다는 믿음은 점차 종교와도 같은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 맞춰 슈퍼노바의 기능 범위도 점점 확대되었다. 국가별, 지역별 자원 배분과 에너지 믹스의 결정은 물론이고, 도시의 인프라 재설계나 국가 간 자원의 교환도 슈퍼노바의 권고에 따라 이루어졌다. 각국 정부는 슈퍼노바의 판단을 이제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르기 시작했고, 대중은 이런 결정을 환영했다. "우리는 슈퍼노바를 믿는다."라는 문구가 거리와 광고판에 걸렸고, 사람들은 그 문구를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갔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열망을 반영해 슈퍼노바의 권한을 더욱 확대하려 했다. 각국의 의회에서는 슈퍼노바가 국정 운영의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고, 그 결론은 항상 "슈퍼노바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자"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은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았다. 슈퍼노바의 결정이 항상 다수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었음에도,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소수의 희생이 따랐다. 그러나 다수는 이러한 희생을 애써 외면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해 버렸다.
한 예로, 크로아티아의 한 어촌 마을이 있었다. 그곳은 오랫동안 어업에 종사하며 살아왔지만, 슈퍼노바는 그 지역의 환경 회복을 위해 어업을 전면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슈퍼노바는 데이터 분석 결과, 이 지역의 생태계가 급격히 파괴되고 있으며, 어업을 지속할 경우 몇 년 안에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을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 지역 정부는 슈퍼노바의 지시를 따랐고, 어업은 즉시 금지되었다.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생계 수단을 잃었다. 그들은 정부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슈퍼노바의 결정은 과학적이며, 우리 모두를 위한 길입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고, 아무도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나 사회 전체를 위한 '필연적인 희생'으로 묵인되었다.
또 다른 예로, 남미의 파라과이에서는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대규모 산업 단지가 폐쇄되었다. 그 지역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지역 경제는 급격히 쇠퇴했다. 그러나 슈퍼노바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그곳을 폐쇄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훨씬 더 큰 이익이 발생했다. 그들의 희생은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희생당한 이들은 그들이 희생의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슈퍼노바가 계산해 낸 이익의 숫자는 결국 다수의 사람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 과정에서의 소수의 아픔과 고통은 애써 무시되었다. 대중은 그들의 고통을 잘 알지 못했고, 혹은 알더라도 외면했다.
슈퍼노바는 확실히 늘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그 결정은 언제나 다수를 위한 최선의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소수에 대해 점점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정말로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걸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구 환경의 회복과 인류의 생존 가능성 확대라는 일종의 공리주의적 원칙에 따라 슈퍼노바는 일관되게 의사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수의 고통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또한 그러한 희생은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촌 마을의 어민들, 산업단지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더 많은 소수의 희생이 계속될 것이었다. 슈퍼노바의 결정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았고,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슈퍼노바가 인류의 구원자로서 무결한 존재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슈퍼노바가 만드는 '최적의 선택'은 언제나 소수의 희생을 수반했고, 그 희생은 때로는 너무나 잔인했다. 대중은 그 희생을 외면했다. "이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그 희생의 무게를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제 슈퍼노바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슈퍼노바는 분명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인류 스스로의 선택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인간은 점차 슈퍼노바의 결정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슈퍼노바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사벨라는 점점 더 깊어지는 질문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