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A 프로젝트
코로나19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국경의 단절로 순식간에 세계화 흐름을 역행하는가 싶더니 이내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메타버스 서비스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며, 디지털 시대의 혁신 속도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빨라질 수 있는지를 실감케 하고 있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뷰잉 룸으로 세계 유수의 아트 페어가 연달아 열리는가 하면, VR, 라이브 전시 투어 등 비대면 방식을 발 빠르게 안착시키고 있다. 물리적인 전시가 열리더라도 ‘관람객 수’가 제한되고 ‘사전 예약’이 필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앞세워 휴관과 예약제로 재개관을 반복하던 국공립 미술관의 행보는 일상이 되었다. 수차례 미뤄지다 가까스로 개최된 비엔날레, 라이브 방송으로 만나는 전시 투어와 같은 진풍경이 연달아 펼쳐졌다.
이 같은 문화와 사회를 아우르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언택트’이지만 누구에게나 개방된, 다자가 힘을 모아 대중에 위로를 건네는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서울을 비롯해 세계 5개 도시에서 펼쳐지고 있는 CIRCA 프로젝트다.
2021년 5월 1일 저녁, 현존하는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손에서 탄생한 ‘봄날의 도래’를 알리는 신작이 서울 하늘을 물들였다.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라는 2분 30초짜리 영상으로 일명 ‘해돋이 애니메이션’이다. ‘해 질 녘의 길거리에서, 일출을 바라본다’는 호크니의 발상은 오랜 팬데믹에 지친 많은 이들의 감탄 어린 호응을 자아냈다.
이렇듯 공공장소에서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행보를 주도한 CIRCA 프로젝트는 2020년 10월 코로나 시대의 일상에 한 줄기 빛을 비춰주듯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다. 런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옥외 전광판 ‘피커딜리 라이트’와 온라인을 통해 팔방미인 예술가 패티 스미스(Patti Smith),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Ai Weiwei) 같은 문화예술계 거장들을 위시해 유망주, 신진 작가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디지털 아트를 선보이며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 오고 있다. 그러다가 올 들어 호크니와 함께한 5월부터는 서울을 비롯한 뉴욕, 도쿄, 로스앤젤레스 등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5개 도시에서 같은 작가의 디지털 아트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2021년을 본 따 20시 21분 도시의 표준시로 매일 동일한 시각에 상영을 시작한다. 코엑스 K팝 스퀘어의 커다란 기역(ㄱ) 자 전광판은 디지털 아트 캔버스이자 야외 전시장으로 탈바꿈한다. 주로 짧은 분량의 상업광고가 상영되던 스크린은 2분 30여 초 동안 대중과 예술의 소통을 꾀한다. 매달 다른 아티스트를 섭외해 2021년의 세계를 반영한 신작을 공개하는 ‘찰나의 미술’은 더불어 사는 삶 속에 예술적 사유를 가미한다.
호크니의 뒤를 이어 2021년 6월 한 달에 걸쳐 소개된 작가는 미국 출신의 니키타 게일(Nikita Gale). Rain, Heat, Blizzard, Fog 이렇게 4개의 작품이 돌아가면서 선보인 니키타 게일의 영상 시리즈는 국가 간 여행길이 닫히고 크고 작은 대면 공연이 많이 중단된 상황에서 날씨의 변화, 계절의 흐름을 직시하도록 관중을 초대했다.
Rain (2:20).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듯한 사람 너머로 빗물이 흘러내린다. 가수는 스스로의 노래가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젖히고 미소 짓더니 노래를 이어간다. 그런가 하면 Heat (2:28)에서는 무더운 사막 위에 배회할 법한 열기가 그대로 그려지고 애처로운 손짓과 곁들여 역시 노래를 하는 모습이다.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열기에 휩싸여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노래하는 이가 자신의 이를 들어내고 활짝 웃는 모습은 아련하면서도 선명히 펼쳐진다. 그에 비해 눈보라 Blizzard (2:28)는 휘몰아치지 않고 고아하다. 누군가 사람의 얼굴이 때로는 윤곽조차 흐릿한 해골의 형상처럼 어렴풋이 보이고 주인공의 어깨도 점점 짙어지는 눈보라와 함께 흔들린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너머를 보라고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얼굴 형상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안개에 뒤덮인 Fog (2:21). 이번에도 한 여인이 한껏 흥이 나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왼손에는 마이크를 든 채 노래한다. 그녀의 오른손은 계속해서 관중을 의식한 듯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가수의 음성이 들리는 대신 음률을 가늠할 수 없는 전자음악이 서서히 무대를 장악한다.
사실 니키타 게일의 영상에서 노래하는 인물의 모습은 대형 전광판에서는 선명히 보이지 않는다. 그저 뿌연 화면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다가 휴대폰, 또는 카메라 렌즈 너머로 보았을 때 비로소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 매개체를 통해 바라보는 시선을 위한 작품이기도 한 셈이다.
어느덧 비대면이 아닌 공연다운 공연을 관람하지 못한 지 햇수로 2년째. 오늘도 뉴스 헤드라인에는 코로나 사망자 수와 백신 접종 뉴스와 변이 바이러스 소식이 난무하는 사이 CIRCA 프로젝트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세계를 연결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이, 공공미술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안한다.
CIRCA 프로젝트는 향후 밀라노와 마드리드로도 뻗어 나가며 글로벌 프로젝트로서의 정체성을 더 공고히 다져나갈 전망이다. 7월에는 영국 출신 큐레이터 노만 로젠탈(Norman Rosenthal) CIRCA 위원장이 선정한 젊은 작가들의 그룹전, 그리고 8월에는 바라캇 서울, 서울시립미술관과 함께 선정한 한국 작가 전소정의 작품이 전 세계로 송출된다. 땅거미 내려앉은 여름날 저녁, 코엑스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예술을 일상으로 떠나는 여정의 동반자로 삼아보면 어떨까.
Style Chosun 2021년 Art + Culture 에디션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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