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책 출간이 버킷리스트인 이들을 위한 조언

‘책을 낸다는 말’의 무게를 생각하다

by 광화문덕

AI 시대,

책을 내는 일은 확실히 쉬워졌다.


예전에는 출판사에 기고하고 선택받은 소수만이 책을 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찍어내는 POD 출판이나 인쇄소와 직접 계약해 책을 만드는 방식까지, 출간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됐다.


그 결과, “책 한 권 내기”는 더 이상 막연한 바람이 아니다.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고,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 한 칸을 차지하게 됐다. 마라톤 완주처럼, 유럽 여행처럼, 삶의 어느 시점에 한 번쯤은 체크해야 할 항목 하나가 된 느낌이다.


“책 출간하고 싶어요.”

“책 냈어요.”


실제로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그 책을 구매해 읽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이 내용을 굳이 책으로 내야만 했을까'


이 질문은 남을 향한 비판이 아니다. 책 한 권에 적게는 1만 원대, 많게는 2만 원대의 시간을 내고 돈을 지불한 독자로서의 나 자신을 향한 물음이다.


그런 상념을 안고 광화문을 걷다 보면, 자주 이런 생각에 닿는다. 이 길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지나갔지만,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남긴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


책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 사람을 지나갔느냐다.


책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책을 목표로 삼는 순간, 글은 종종 서둘러진다. 분량을 채우기 위해 검색을 하고, 구조를 맞추기 위해 이미 있는 이야기를 모은다. AI는 그 과정을 더 빠르고, 더 정교하게 도와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남는다.


'이 이야기는 왜 굳이 ‘책’이어야 했을까'


책은 성취의 증표가 아니다. 사유가 충분히 쌓인 뒤에 남는 결과물에 가깝다. 과정 없이 얻은 결과는 오래 남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이미 대부분의 이야기가 있다. 정리도 잘 돼 있고, 설명도 친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AI가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서 내가 필요한 내용만을 보여준다.


이제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대화를 몇 번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필요한 정보 대부분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사실을 찾는 일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여전히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이어보고, 어디까지 생각해볼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검색은 답을 빠르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답이 어디서 왔고, 무엇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지점을 대신해주는 것이 사유다. 사유는 흩어진 정보들 사이에 맥락을 만들고, 우선순위를 세우고, 한 사람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방향을 정한다.


그래서 나는

책이란, 많은 정보를 담은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선택한 방향을 따라 끝까지 걸어가 보는 글이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책은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글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기로 했는지까지 포함해 하나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글이라는 것이다. 그 방향이 분명할 때, 비로소 책은 검색 결과와 다른 무게를 갖게 되지 않을까.


교보문고에 자주 간다. 책을 보는 게 좋아서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선가 이미 들어본 이야기들이 차분히 정리돼 있는 경우가 있다. 검색을 조금만 해도 닿을 수 있는 정보들이 정돈된 문장으로 이어져 있는 책들도 만난다.


그 자체로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 이야기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걸까'


AI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AI의 도움을 받는다. 정리할 때도, 확인할 때도, 생각의 출발점으로도. 이제 중요한 건 AI를 썼느냐, 안 썼느냐가 아니라 AI가 제시한 문장을 내가 어떻게 통과시켰느냐라고 생각한다.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겼는지, 잠시 멈춰 의심해봤는지, 아니면 내 경험과 생각을 덧붙여 전혀 다른 문장으로 다시 썼는지. 책의 방향은 그 선택의 순간들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항상 되물어야 한다.


나는 책을 왜 쓰고자 하는가?

나는 어떤 내용을 독자들에게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가?


AI를 활용할 때에도 항상 점검해야 한다.


AI가 써준 글을 내 의도에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했는가?

AI가 써준 글이 내 의도와 다른 지 확인하고 반박하며 다시 썼는가?


사유는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된다.


질문이 없는 글은 대개 설명에 머문다. 설명은 분명 유용하다. 무언가를 빠르게 이해하게 해주고,

필요한 정보를 정리해준다. 하지만 설명만으로는 책이 되기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각각의 문장은 이해되지만, 이 글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끝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여러 조각들이 모여 있는데도 하나의 질문이나 방향은 느껴지지 않는 글들이다.


그럴 때 나는 이런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아마 이 글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건네기 위해 쓰였다기보다,
쓰는 사람이 스스로 정리하고 안도하기 위해 묶인 기록에 더 가까웠던 건 아닐까 하고.


그 자체로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독자를 위한 책이라면, 읽는 사람이 함께 따라가 볼 수 있는 하나의 질문이나 생각의 흐름은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은 정보를 쌓아 올린 결과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떤 질문을 붙잡고 어디까지 생각해보았는지를 보여주는 형식이라고 나는 점점 믿게 된다.


책을 낸다는 건, 글 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일이다. 이 문장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을지, 다시 읽어도 “그래, 이건 내 생각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 그 시간이 책을 얇게도, 두껍게도 만든다.


만약 ‘책 한 권 내기’가 버킷리스트라면 이렇게 바꿔 적어도 좋겠다.

끝까지 생각해본 질문 하나 남기기

쉽게 결론 내리지 않은 주제 하나 기록하기

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 하나 만들기


이 중 하나라도 이뤘다면, 책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책은 그렇게 태어난다.
성취의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사유를 견뎌낸 흔적으로.


책을 쓰고 싶다면, 먼저 책을 목표에서 내려놓기를 권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길 바란다.


“지금 이 글에는, 나만이 통과시킨 시간이 있는가.”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때, 당신은, 당신이 기록했던 글은 이미 책이 될 준비를 마친 상태일 것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