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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은있다 Aug 21. 2024

엄마같은 엄마가 될까봐 두려워요

식이장애 이야기






리아씨가 상담에 올 때마다 그녀의 남편은 항상 함께 왔다. 그녀가 짜증내고 화를 내고 때로는 상담사인 내가 보기에도 무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녀는 감정적으로 남편을 대할 때가 많았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기다렸다며 안아달라고 아기처럼 조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평소처럼 식사를 하다가 쩝쩝 대는 소리가 짜증난다며 식당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버리기도 했다.


살쪄보이냐고 물었다가 남편이 충분히 예쁘다고 하면 '맨날 같은 말만 한다'고 짜증을 내고, 산책이라도 하자고 제안하면 '지금 움직여야할만큼 내가 살쪘다고 인정하는 것이냐' 고 화를 내기도 했다. 리아씨가 먹든 말든, 토하든 말든 내버려두라고 해서 눈치를 보며 죽은 듯 있으면 '폭식하는 것을 왜 말려주지 않냐'며 서운해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당신이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다'며 세상 감동스런 표정으로 눈물을 짓기도 했다. 



리아씨의 남편은 그녀의 변덕에도 인상 한번 쓰지 않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녀도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녀의 변덕스러움에 남편이 진짜 원인이 되었던 적이 없음을 그녀도 인정한다. 이런 그녀 이야기에 더 황당해하는 것은 리아씨의 남편이었다. 



"저는 아내가 아파서, 우울해서, 호르몬 변화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요?" 



나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의 많은 감정과 행동들은 항상 생각(이성적인 판단)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충분히 교육했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리아씨의 긴장했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지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리아씨에게 부드럽고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리아씨~ 남편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시면서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죠? 저는 리아씨가 상대의 감정을 무시하는 분은 아니라고 느껴왔어요. 혹시 우리가 왜 특히 남편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는지 짐작가는 부분이 있으세요?" 



리아씨는 적잖이 당황하면서 선뜻 말하기 힘들어했다. 나는 잠시 리아씨의 남편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질문을 했다. 



"리아씨, 좀전에 리아씨 마음에 스친 생각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한가지 제가 먼저 드리고 싶은 애기는 우리가 드는 생각이나 감정이 내 전부, 나 자체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 진심이 아닐 때도 있어요"








리아씨는 큰 다짐을 하듯 말했다. 

"사실은 너무 무서워요, 선생님. 남편은 아이를 원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임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남편이 지금 제게 잘해주는 것이 아이때문인 것만 같아요. 물론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 안에서 마치 천사와 악마가 싸우듯이 계속 상반된 생각들이 떠올라서 하루종일 미칠 것만 같아요." 


그녀는 아이가 태어나면 지금 자신에게 주는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이에게 갈 것 같고, 자신은 결국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자신의 못생기게 살찌고, 울퉁불퉁한 몸매에 기미가 잔뜩 낀 푹퍼진 아줌마가 되어서 남편이 자신을 창피할 것 같았다. 


그러다 자신이 아이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계모같은 엄마가 될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다면서 사실 자신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면 남편이 이혼하자고 할까봐, 남편에게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번도 솔직하게 말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리아씨의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탐색해 보았다. 그녀의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오래된 것이었다. 그녀가 5살 때 그녀는 엄마 손을 붙잡고 놀이동산에 간 적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때 갓 22살이었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사기로 가출한 상태였다. 그랬다. 여느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그런 사건이 리아씨의 삶에서도 있었다. 리아싸의 엄마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녀는 엄마를 따라 나설 때부터 마음 한켠에서 이미 예상했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무서웠고 슬펐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아득했다고 했다. 리아씨의 엄마가 떠났던 시간은 1시간 남짓. 다행히 리아씨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어린 리아씨를 금방 찾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리아씨가 너무 어려서 이때의 기억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리아씨는 그날 이후로 한번도 깊이 잠을 자본적이 없고 항상 엄마의 손이나 옷자락이라도 잡아야 잠들 수 있었으며 그래서 단칸방에 사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생활고로 우울하고 지칠 때마다 엄마는 불안해서 집착하는 리아씨를 계속 밀쳐냈다. 그럴수록 엄마 손을 놓쳤던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 그녀의 불안은 공포를 넘어서 발작이 되기도 하고 분노 폭발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와 리아씨의 갈등이 생겨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버려질 존재라는 증거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 같아서 더더 못되고 악랄하게 엄마에게 욕을 하고 괴롭혔다고 했다. 


"제가 엄마같은 엄마가 되면 어쩌죠? 저도 아이를 질투하고, 불안해하며 아이에게 상처주고 버리고 싶어지면 어쩌요?"



그녀는 용기를 내어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이야기했고, 리아씨의 어머니는 그날 상담실에서 한동안 오열하셨고, 진심으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리아씨의 남편도 리아씨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낳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남편이 아이를 그토록 바랬던 이유는 리아씨가 너무 외롭고 불안해보여서 아이가 있다면 가족 안에서 더 안정감을 느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고 하며 리아씨를 안심시켜 주었다.









많은 식이장애 내담자가 임신과 출산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긍정적일 때는 아이나 가족을 위해서라는 아주 명백하고 공식적인 허락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체중증가에 대해 안심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자나 가족들, 그리고 아기가 주는 기쁨과 행복에 몰두하게 되면서 회복이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경험하게 될 체중과 몸에 대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엄청나게 증가합니다. 통제력 상실을 포함해서, 자신의 증상으로 인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에 대한 죄책감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함, 외로움,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경우에는 임신 출산으로 인한 체중이나 외모 변화로 인해 배우자가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해서 관계의 어려움이 생기거나, 때로는 아이에게 사랑이 온전히 다 가서 자신은 더이상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식이장애 내담자가 판단 능력이 없거나, 모성애가 없다거나, 이기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깊은 내면에 그 주제와 관련 깊고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 상처로 인한 반응 혹은 대처양식일 뿐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하는 부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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