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는 34kg 저체중 상태로 나를 찾아왔다.
저체중인 아이들 특유의 모습대로 기운없이 몸이 한껏 구겨져 있고, 대답을 길게 하는 것도 어려워보인다. 10분 남짓 얘기하다보면 이내 그만하고 싶어하는 느낌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중학교 1학년 사랑이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 관계도 좋고, 밝은 아이였다고 아이도 엄마도 입을 모아 말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시간이 남아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 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는데 자꾸만 빠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먹고 싶지만 소화가 되지 않아서 먹을 수가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엄마는 소아청소년과에 가서 다양한 검사를 했고, 소화촉진을 위한 다양한 영양제도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의 지인이 '요즘 아이들 식이장애 많다'는 말에 상담을 신청했다.
사랑이는 힘들었지만 내가 제안하는 프로그램을 잘 따라왔다.
기계적으로 하루에 3식, 2~3번의 간식. 3-4시간마다 음식을 섭취하여 공복시간이 4시간을 넘기지 않게 하기, 가급적 시간을 정해놓고 무조건 먹어야한다.
계획한 시간에 배고프지 않아도, 이전 식사와 간식 때 좀 많이 먹게 되더라도 정해진 시간이 되었을 때는 무조건 먹어야 한다. 힘들면 적게라도 꼭 먹어서 굶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기능을 하지 않던 위장이 다시 제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잘 하던 운동을 한참 쉬었다가 다시 할 때 처음에 어려운 것처럼, 영어회화가 능통했던 사람이 영어와 담쌓고 지내다가 다시 하려면 처음에 버벅이다가 다시 실력이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조금만 먹어도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고 싶고, 1/4인분도 먹지 않아서 명백히 적게 먹었음을 인지하지만 배가 찢어질 듯한 느낌이 들어도 그 시간을 잘 견뎌냈다. 한동안은 부종에 시달려야 했다. 거식증, 저체중 상태에 있다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개인차가 있지만 일정시간 동안 부종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부종을 경험한 사람들을 알 것이다. 부종이 얼마나 힘든지. 나역시 출산 후 극심한 부종으로 옷 사이즈도 2개 이상 올려야했고, 신발 사이즈업을 해도 발이 들어가지 않아서 뒷축을 구겨서 겨우 발 반만 걸칠 수밖에 없던 기간이 있었다. 이때 부종으로 물먹은 스폰지처럼 온몸이 무겁고, 아팠다. 물을 많이 마셔야한다는 것은 알지만 물을 마시면 더 붓는 느낌때문에 무서웠고 그때의 경험이 나도 너무 끔찍하다. 그래서 식이장애 내담자에게 부종이 얼마나 아프고 두려운지 조금더 이해할 수 있다.
회복하는 과정인 이 시기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하고 지지하면서 그 시간들 잘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이는 저녁을 먹으면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속이 불편해서 새벽까지 깨어있기도 했다. 학교 가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던 사랑이는 급식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서 조퇴해야할까봐 급식을 못 먹고 하교 후 집에서 과식과 폭식을 오가기도 했다. 이런 힘든 시간을 지나 차츰 학교 급식도 먹으니 하교 후 폭식은 사라지고 적당한 간식으로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는 처음과는 다르게 많이 밝아졌고, 식사도 안정적이고 배고프고 배부른 느낌도 잘 느껴졌다. 기분, 수면 상태도 안정이 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학원도 자발적으로 원해서 다니면서 공부도 다시 시작했고 죽다 살아난 기분이라 너무 행복하다며 연신 웃는다.
잘 견뎌준 사랑이와 엄마에 진심가득 박수를 보내고, 사랑이에게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주저없이 “엄마와 같이 밥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또래 아이들처럼 사과폰이 갖고 싶다거나, 여행가고 싶다거나,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거나 뻔한 욕구들은 사랑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의 대답에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사랑이 엄마는 당황했고 긍정이 대답을 원하는 초롱초롱하고 간절한 아이의 눈빛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랑이는 엄마와 함께 식사한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야근을 자주 하는 아빠는 기대도 안했고, 사랑이와 동생은 학원 시간 때문에 같이 먹을 수 없었고, 수년을 사랑이 혼자 식사를 했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일반적인 가족 풍경이다) 엄마한테 같이 먹자고 하거나 식사하는 10분만이라도 함께 앉아있어달라고 수차례 부탁했지만 아이는 매번 거절당했다.
엄마는 주로 집안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통화하거나 티비를 본다면서
“엄마는 내가 귀찮은 것 같아요. 내가 같이 밥먹자고 하면 엄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도 좀 쉬자, 밥차리다보니 밥맛이 없어졌다고 해요. 내가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고 있나봐요. 그래서 엄마는 나와 있는 10분도 싫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말을 들은 사랑이 엄마는 웃으면서 “넌 상담와서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의 별것 아닌 바램도 거절하는 엄마라거나, 우리집도 그런데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엄마가 그런 결정을 하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이 엄마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성실한 보통의 엄마이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전업 주부인 자신이 집안 일과 육아를 모두 책임지며 잘 해내려고 항상 노력했다. 사랑이 엄마는 어린시절 바쁜 부모님을 대신에 동생들을 돌보고, 엄마 대신 집안 일을 도맡아 하는 착한 딸이었다. 지금처럼 집안 일을 하는 것은 너무 당연했고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은 숙제처럼 쌓여 있어서 쉴 수가 없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사랑이 엄마는 가족들과 특히 엄마와 같이 식사한 경험이 거의 없다. 해야할 일들을 다 마쳐야 쉴 수 있었고, 사랑이 엄마에게 휴식시간은 신경쓰고 보살필 대상이 없는 상태, 온전히 혼자만 생각해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종일 집안 일과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저녁까지 차려주고 나면 그제서야 자신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는 것이었고 밥도 자기 혼자, 자기가 원하는 반찬만 딱 차려서 먹는 고요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유일한 보상이었기 때문에 아이와 식사를 같이 하는 것, 특히 저녁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의 문화, 식사의 문화, 엄마 아빠가 어린시절부터 경험해온 것은 그대로 체화되어 세대 전수가 된다. 부모가 어린시절 원가족의 문화에서 변화를 원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 있지만, 사랑이 부모님의 경우는 원가족의 문화를 큰 불만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식탁 위 문화 속에서 사랑이가 느꼈을 감정과 자신에 대한 생각(‘나는 귀찮은 존재=소중하지 않은 존재, 불필요한 존재’)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랑이네 가족은 가족회의를 통해 가족의 식탁문화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제 함께 식사하지 않아도 부모가 ‘존재로서 거절’하는 것이 아님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사랑이에게 ‘사랑이를 좋아지게 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이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심하더니 너무나 멋진 대답을 해주었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거요. 솔직한 제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거요. 전에는 맨날 안된다고 하니까 표현할 생각도 안하고 기대도 안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되든 말든 그냥 말할 수 있어요!”
사랑이 가족은 사랑이의 식이장애로 인해 가족 안에서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존재로서 받아들여지는 수용의 경험을 처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