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졸업 전 어느 공모전에 응모하였던 글입니다. 아쉽게도 공모전에서는 입상을 하지 못하여 깜빡 잊고 있었던 글인데 브런치 서랍에서 우연히 발견했네요. 알량한 고백을 졸업 전에 하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글을 올립니다.
“거기 나오면 취업은 할 수 있어?”
지방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내가 군대에서 만난 한 명문대생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치욕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은 아니었다. 카투사로 군생활을 한 나는 군부대 내의 명문대생들로부터 그러한 뉘앙스의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사회에 나가보면 세상살이가 쉽지 않을 거라 훈수를 두는 사람도 있었다. 나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은 사람의 말이었다. 건방진 말이었지만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절치부심이라고 했던가. 전역을 한 후 나는 이 악물고 수능 시험을 준비하여 흔히들 이야기하는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다. 이제는 무시당하고 살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깔보는 사람들은 있었다. 이전에 지방의 한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었다 말을 하니 태도가 바뀌는 것이다. 괜스레 얕잡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나의 성적이 좋지 않을 거라 단정하고 선심 쓰듯 말하며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입학 후 거의 모든 과목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받고 있었던 터라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 후로 나는 내 배경을 숨겨버렸다.
“우리 학교에서 다른 전공을 공부하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군대를 갔다 온 후에 그냥 수능을 다시 쳐서 전공을 바꾼 거야.”
그렇게 내 학력 위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첫 번째 대학교를 졸업한 후 운이 좋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편입학하게 되었다. 이곳에 다다르니 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근거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내 말을 곧잘 믿었다. 학력이 바뀌니 사람도 바뀌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괘씸했지만 내심 편하기도 했다. 물론 의과대학에서도 나의 학력 위조는 계속되었다. 구구절절 말하기도 귀찮거니와,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잠깐 몸 담았다는 이유로 선입견을 가지는 일에 진절머리가 낫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학력 위조의 역사는 이제 어언 8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의과대학 졸업을 목전에 앞둔 지금, 나는 그 길었던 부질없는 거짓말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학력으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달려드는 우리 사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러한 사회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나의 자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곳의 학교를 다니며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학력은 공부를 잘하는 것과 그나마 조금 관련이 있다는 것, 하지만 공부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학력은 행복, 현명함, 올바름, 그리고 존경받을 만함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
참 오랜 시간이었다. 무슨 대단한 사실이라고 이 한 마디를 꺼내는 데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인지. 그래도 졸업 전에 알량한 고백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여러분, 저 사실은 ‘지방대’ 다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