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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Dec 31. 2017

너의 행복이 역겨워

[ 영화식사 012 ] 슬립 타이트Sleep Tight, 2011

한 3년 전부터 나돌았던 ‘카페인 우울증’이란 신조어는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남의 행복을 들여다보며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증세라는데. 물론 SNS에서 보여주는 타인의 삶은 극히 단편적인 부분이며, 그 중에서도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순간만 극대화했을 뿐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백해야겠다. 나 역시 누가 더 행복해 ‘보이는지’ 경쟁하는 이 끔찍한 레이스에 동참했음을. 그 순간 SNS의 실상 같은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가 더 행복한지, 내가 더 부지런한지, 누구보다 인생을 알차고 보람 있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티를 낼 수 없는 날엔 타인의 행복한 순간을 견딜 수가 없다.

영화 <슬립 타이트> 스틸컷, 세자르

새해를 위해 충전의 시간을 갖는 연말, SNS를 들여다보며 이런 질척한 기분에 젖은 사람이 있다면 <슬립 타이트>의 세자르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 거동할 수 없는 노모를 혼자 돌보며 빌라 관리인으로 일하는 세자르는 입주자인 클라라의 행복한 얼굴이 싫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딘가 마음이 병들어있고, 아닌 척 해도 조금씩 불행을 떠안고 있는데 클라라는 그렇지 않다. 늘 웃는 얼굴로 세자르에게 친절한 인사를 건넨다. 언제부턴가 세자르의 목표는 클라라의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빼앗기 위해 매일 밤 잠든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온다.

세자르가 클라라의 행복을 싫어하는 수준은 거의 혐오에 가깝다. 그녀의 집에 수많은 바퀴벌레를 풀어놓거나 세안제에 약물을 주입해 피부가 뒤집어지게 만들어도, 클라라는 불행한 기색이 없다. 클라라의 애인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뒤 세자르는 클라라에게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 예전처럼 웃지 않는 클라라를 보며 세자르는 비로소 삶의 의욕을 느낀다.

영화 <슬립 타이트> 스틸컷, 클라라.

세자르가 혐오한 건 단지 클라라의 해맑은 표정이 아니라, 불운이 겹쳐도 남에게 친절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클라라의 성격이 아니었을지. 직업적 필요 때문에 온갖 열등감을 감추고 친절한 ‘척’ 해야 하는 세자르에게, 클라라의 여유 같은 건 원래부터 없는 것이었다. SNS를 보며 박탈감을 갖는 감정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에게 없는 경험, 나에게 없는 물건, 나에게 없는 가족과 친구들. 하지만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하는 행동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내 기분을 위로할 수 있는지는, 세자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결말은 과연 세자르의 승리일까. 클라라가 불행해졌다고 해서 세자르의 결핍이 채워진 거 같지 않다. 남의 불행으로 채워진 삶의 의욕이 과연 앞으로 세자르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 영화의 결말은 결국 세자르가 철저하게 클라라의 삶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래서 보고 나면 찝찝한 기분을 버릴 수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세자르처럼 남의 행복에 박탈감을 느끼는 내 모습이 얼마나 메스꺼운 짓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너의 행복이 역겨워. 하지만, 사실은 그런 내 모습이 더 역겨울지도 모르지.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어쩌면 내 안의 세자르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평생 행복이라곤 느껴보지 못할 세자르에게.

애정도 온기도 없는 차가운 수프를 대접하고 싶다.

영화식사 열두번째 레시피, 가스파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