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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트랜드 Mar 14. 2024

정확히 2주 만에 몸살이 났다.

스위스 취리히에서의 일기 4.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 지 2주째.

난 평소 잘 걸리지 않는 몸살에 걸렸다.


아침마다 셔틀버스를 태워 보내기 위해 긴장하고 잠들고,

깨어나 해보지 않았던 스낵박스를 싸고,

이후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정보를 얻고.

    

난 기자였기에 어쩌면 아예 낯설지 않은 삶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확히 2주 만에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이토록 힘든 일인가 보다.


낯선 타국에서 정착해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조건 안에서도 쉽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어른인 나도 이런데,

조그마한 두 꼬맹이는 더 하겠지.  



   


실제 첫째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이 환경 변화에 가장 처절하게 반응하고 있다.

     

첫째가 갑자기 자기 눈에 미세먼지가 계속 보인다며,

몸이 이상해진 것 같다며 한참을 울었다.


1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이곳 전등의 불빛 잔상이 눈에 남는 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그 잔상이 무서워 혼자 거실에 있는 것조차 싫다고 했다.


눈을 감아도 미세먼지가 보인다며, 무섭다고 했다.

예전에 살던 우리 아파트로 다시 가고 싶다고도 했다.  

    

하루는 츄파춥스 사탕을 맛있게 먹더니,

목에 종이가 걸린 것 같다며 걱정을 했다.


그럴 리 없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목에 무언가 걸린 느낌에 계속 집착하고 힘들어하는 첫째를 보고 있자니,

이 변화한 환경이 저 작은 아이에게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짐작조차 나는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같은 단지 안에서 집을 넓혀 이사했을 때가 생각났다.


첫째가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

계속 병원에서 약을 타 먹였는데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대학병원을 예약해 데려갔더니,

심리적인 요인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을 다녀오고 약을 끊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첫째의 복통은 사라졌다.


환경이 변한 데 따른 심리적 요인으로

장기간 복통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예민한 아이가,

심지어 나라도, 학교도, 친구도, 모두 바뀐 이 환경이 얼마나 힘들지,

나는 완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도 매우 한정적이다.


다시 서울에 갈 수도, 그렇다고 학교를 다니지 않을 수도 없다.


이 환경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


그것만이 우리 가족이

이곳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다행히 둘째는 조금 수월하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아무래도 음식도 많이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데다

아직 나이도 어리다 보니

새로운 친구들과 언어로 의사소통이 좀 덜 되어도

함께 놀고 어우러지는 게 쉬운 것으로 보인다.


둘 중 한 녀석이라도 조금 쉽게 적응해 줘서

엄마로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몸살 기운이 좀 나아졌다.


그리고 내일은 3주 차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월요일이다.


내 몸을 잘 챙겨야

우리 가족이 이 낯선 땅에서 생활하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나는 대체불가한 가족의 또 다른 기둥이다.

그러니 아프지 말자. 더 건강해지자.      


첫째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내일부터는 학교 급식을 취소하고,

한국식의 메뉴로 도시락을 싸주기로 했다.


아침에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 삶에 익숙해져 보자.


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힘을 내

학교생활을 할 내 딸을 생각하자.   


엄마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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