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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트랜드 Aug 01. 2024

스위스에서 바라본 한국 저출산

스위스 취리히에서의 일기 7.

한국 출산율이 0.6까지 떨어지면서

또다시 위기론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온다.


이어 각종 언론들은 유럽 복지나 출산율 등에 대한

비교 분석 기사를 통해

'아동수당, 육아휴직'이 유럽 출산율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나는 스위스에 겨우 6개월 남짓 살았지만

한국 언론들이 말하는 유럽 복지가

이곳의 출산율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스위스에 와보니

내 주변에는 아이 3, 4을 낳은 가족들이

정말 수두룩하다.


아이 5, 6도 종종 있다.


그들이 정말

나라에서 주는 아동수당과 육아휴직만을 믿고

아이들을 낳고 또 낳은 걸까?


아니다. 절대.


그럼 반년 간 내가 바라본

유럽의 출산율 비결은 무엇일까?




1.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이곳은 사교육이 절대적이지 않다.

난 이것이 유럽의 출산율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모두 무상교육을 통해

대학까지 교육받을 수 있다.


모든 학교에는 커다란 체육관과

양질의 영어 선생님을 갖추고 있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구해준

현지 에이전시 직원은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그는 유치원생 때 스위스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한 번은 함께 살 집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를 어떻게 배웠냐는 나의  질문에

자신은 사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공교육만으로도 대부분의 스위스인이

영어로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4개국어를 쓰는 스위스 특성상

영어라는 공용어에 대한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점수를 위한 영어가 아닌

진짜 '실생활'과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교육이 이뤄진다는 점이

우리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일 것이다.


물론 이곳에도 수영이나 테니스, 체스와 같은

사설 교육기관을 다니는 어린이들이 다.


혹은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배우기 위해

개인교습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선택'이다.


가정 수준에 따라, 개인 역량이나 취미에 따라

순수하게 각자 선택할 뿐,

그 누구도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최소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악보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악기 하나 정도는 배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학이나 영어, 과학과 같은 교과목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가는 아이는 어디에도 없다.


세컨더리 스쿨에 가는 Grade 6가 되면

그 어떤 부모도

아이의 숙제, 학업 상태 등을

하나하나 묻고 챙기지 않는다.


모든 건 아이가 스스로 할 뿐.


스위스나 독일은 5학년이 되면 진로를 정해야 하는데,

공부를 계속할지, 아니면 직업학교를 갈지 선택해야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것 같아

장단이 분명 있다고 생각되지만

분명 장점이 크다.


공부를 선택하는 아이들은 전체 20% 정도.

이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업학교로 향하는데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안타까워하거나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직이 돈을 잘 벌기도 하고,

직업을 두고 귀천을 따지지 않는

유럽의 문화적 베이스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유럽은 형광색 전신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도시 곳곳에서 마주친다.


흙먼지가 묻은 옷을 입고 트램을 타고,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학교로 아이들을 마중 나간다.


한국이었다면?

평상복으로 갈아입어야만 했을 상황들이다.




2. 어린이에 대한 '관대함'


한국과 아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어린이에 대한 '관대함'이다.


이건 진심으로 스위스에 와서

정말 가슴 깊이 한국사회가 크게 곪아있다는 걸

깨달은 부분이다.


이곳에도 오래된 집들이 아주 많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가까이 된 골조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만큼 '층간소음'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해진 시간 안에서

(보통 밤 10시 이전)

소음을 내는 데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대하다.


아이는 아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버스에서 아이가 운다고

누구 하나 눈치 주는 법이 없다.


아이는 우는 게 당연하다는 듯

모두 신경 지 않는다.


당연히 엄마아빠들도

소리 지르며 아이를 다그칠 필요가 없다.


영상을 틀어줘 가며

애가 우는 것을 막을 필요도 없다.


그저 아이를 안고

조근조근 달래주다 보면

잠시 후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버스는 일상을 찾는다.


한국이었다면......

엄마가 애 우는데 뭐 하냐는 눈빛들 속에

버스에서 내리는 게 오히려 속 편할 상황.


유모차를 가지고 트램을 타면

모두가 나서서 유모차를 들어준다.


유모차 자리는 늘 비워놓는다.



아이들이 길을 건너면

모든 차는 저 멀리에서부터

알아서 멈춰 선다.


도시 전체가 24시간

제한속도 20~3km인 곳도 많다.


우리는 학교 주변 제한속도 30km도

과하다며 난리인데 말이다.


아이들이 기차에서 어느 정도 시끌시끌 떠들어도

다들 아이들이니 그런가 보다, 한다.


식당에 가면

고급 레스토랑이든 푸드코트든

아이들 색칠공부가 준비되어 있고

아이스크림이나 아이들 음료수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키즈메뉴는

어디를 가나 준비되어 있으며

(심지어 어른들만 갈 것 같은 펍에도 어린이 전용 메뉴판이 있었다)

어린이 전용 놀이터가 갖춰진 곳도 많다.


아이들이 옆에서 밥을 먹으며 떠든다고

눈치 주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영상을 틀어주면서

조용히 시키며 밥을 먹일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 늘 곤두서있던 나는

스위스에 와서 정말 많은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과 외출하면

오히려 늘 더 배려받기에

가끔은 혼자 외출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는 게 좋다 싶기도 하다.


아이를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돌보는 듯한 느낌.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아이를 낳고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다.




3.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


마지막은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이다.


이건 한국도 많이 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스위스와 비교하면

한국은 아직도 한참 멀었다.


저녁식사 시간,

동네 산책을 나섰다.


집집마다 주방 불이 켜지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그리고 10집 중 9집은

아빠들이 주방에 서 다.


낯선 풍경.


아빠들이 오후 5시면 퇴근하니

가능한 풍경이라고 생각된다.


(스위스는 다들 얼리버드라

8시에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한다.)


학교 행사가 있으면

대부분 아빠들이 모두 함께 참여한다.


아빠만 오는 경우도 매우 많다.


엄마 10명에 아빠 1, 2명인 한국과는

아주 다른 풍경이다.


놀이터에는 10명 중 8명이

아빠와 놀고 있다.


주말이든 평일이든

식당에는 아빠랑만 나와 식사 중인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특히 스위스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건

플레이데이트 풍경이다.


아이들 친구집에 초대받아 놀러 가면

신기하게 아빠들이 다들 집에 계신다.


처음에는 정말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아빠들이

집을 비워주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문화다.


알고 보니....

아빠들이 애들이랑 놀아주고

엄마들은 티타임을 갖는다.


다들 그런다.

그게 당연한 거란다.


애들과 놀아주다 틈틈이

식탁으로 와 엄마들과 어울려 함께 간식을 먹고

엄마들의 수다에도 자연스럽게 동참한다.


이게 유럽 아빠들이다.


적다 보니

한국의 초저출산 문제는

해결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제도를 바꿔서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돈 얼마 더 준다고, 휴직 기간 좀 더 늘려 준다고

아이를 더 낳을까?


난 내가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셋째 낳으면 1억을 준다고 해도

결단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살다 보니

내가 스위스인이었다면

나도 셋이나 넷은 낳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결국 사회 근저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스위스에 와서 친해진

스웨덴 가족이 있다.


그 집은 아이가 6명인데

그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은 아이들을 키우며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힘들 때도 분명 있지만,

그건 행복을 가리는 작은 그늘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18살 첫째부터 4살 막내까지

모두 함께 1달간 스페인 여행을 떠난다는 가족.


가족은 늘 함께여야 한다는 신조 아래

여행은 늘 모두 함께 다닌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가족은

모두 다 같이 여행을 간다.


아이의 학업 때문에, 따라가기 싫다는 아이 때문에

아이들이 중학생만 되어도 가족 다 같이 긴 여행 한 번 다니지 못하는

한국 가정들과는 정말 다르다.


이제는 출산율 해법으로

'돈'과 '휴직'에 포커싱하는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


늦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늦었고,

많은 부분이 곪아 터지고 있지만.


우리와 삶의 방식도 문화도 많이 다른 유럽을

그대로 따라 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아이라는 소중한 '생명체'에 포커싱하는

시각과 관점을 갖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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