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일요일 막내 시동생을 만나러 아산으로 향했다. 나는 4남 1녀 중 유독 막내 시동생에게 애틋한 마음이 있다.
신혼 초 남편의 직장 문제로 따로 살 때 넓은 집이 허전했다. 혼자 살 때보다 더 외로운 순간, 시동생이 대전에 취직해서 집을 구하고 있었다. 나이 어린 시동생은 막냇동생처럼 어색함이 없어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시동생은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아는지 간혹 간식을 사 와 무심히 건넨다 그럴 때면 외롭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비 오는 날이면 , 퇴근길에 들고 들어오는 막걸리 한 병, 나는 손맛 좋은 시어머니 표 묵은지를 꺼내 부지런히 김치전을 부쳤다.
서로의 하루를 나누며 위로하는 시간, 그 시간이 쌓여서일까? 오랜만에 시동생을 보러 가는 길이 설렜다
아직 미혼인 시동생은, 한 달 전 무릎 수술을 했다. 불편해진 다리로는 한동안 일상생활이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듣고, 남편은 마음이 바빴다. 에어컨 ㆍ식탁ㆍ옷걸이 필요한 살림살이를 챙기며, 혼자 가기 싫은지 은근슬쩍 데이트 신청을 했다.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며, 10년 연애의 추억을 떠올렸다.
대전에서 아산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밖을 보니, 계절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유난히 예쁜 하늘
때맞춰 불어 주는 봄바람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까운 계절의 선물이다.
분위기 탓일까. 음악에 맞춰 목청껏 흥을 끌어올리며 남편에게 다음 곡을 신청했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남편은 아르바이트로 음악다방 DJ를 했었다.
장발에 통바지가 유행하던 시절, 뮤직박스 안에서 턴테이블을 돌리며 음악을 틀어주던 남편은 멋있었다.
"오빠야"라며 신청곡 쪽지를 넣어 주던 소녀팬의 성원에 힘입어 신나게 일을 했단다.
그렇게 노래 부르며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새 시동생 집 앞이다.
집 안에 들어서자 넓은 방 가득 쌓여 있는 재활용품과, 미처 손 쓰지 못한 빨래 더미가 보였다. 얼굴이 빨개져 안절부절못하는 시동생을 안심시킨 후,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를 시작했다. 쓸고 닦고 쓰레기를 버리는 동안, 남편은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불편한 곳이 없는지 구석구석 매의 눈으로 집안을 살피는 남편의 얼굴 위로, 마음만큼이나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배가 고파 왔다.
’ 오늘은 큰형수 찬스 쓰는 날!!‘우리 맛있는 것 먹으러 가요.
다리가 불편한 시동생을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다.
외곽에 있는 아파트인데도, 곳곳에 눈에 익은 프랜차이즈 간판이 즐비했다. 남편은 묻지도 않고 중국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런데 시동생 눈빛을 보니, 중국집이 아니라 건너편 삼겹살집으로 향해 있었다.
'중국집 음식은 배달해서 먹을 수 있지만 고기는 혼자 먹기 어려우니 차라리 고기를 먹는 건 어떨까요?' 남편은 흔쾌히 그러자며 고깃집으로 차를 돌렸다.
이열치열을 체험이라도 하듯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을 마주하고 고기를 올렸다.
오늘따라 고기가 왜 이리 늦게 익는지 ᆢ갑자기 시장기가 확 돌았다. 노릇하게 구워진 한 점을 파무침 수북한 시동생 접시 위에 먼저 올려 주었다.
수줍어하며, 한 쌈 크게 입에 넣는 그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ᆢ..
"사실 한 달 전부터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가 쉽지 않은 터라 참고 있었어요."
시동생의 그 말에, 무심했던 지난 시간이 미안했다.
볼이 미어져라 한 쌈 입에 넣는 모습을 보며, 기쁨과 함께 울컥하니 올라오는 마음이 있었다.
치매 걸린 어머님 생각이 났다. 건강하셨더라면, 이런 아들을 보며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렸으리라. 어머님과 겹쳐진 삼겹살이 목에 걸렸다.
삼촌을 쳐다봤다.
행복한 한 쌈이 여전히 손에서 바쁘다.
'오길 잘했구나! 삼겹살로 큰형수 찬스를 쓴 건 신의 한 수였어!'
불판 위의 고기를 정성스레 바라보는 시동생의 얼굴이,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맏형의 무거운 어깨가, 쏟아 내지 못한 침묵이 노을에 걸렸다.
뿌듯함과 겹쳐진 남편의 깊은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고 싶은
주말 저녁이다.
-이행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