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 앞에서 득도하고
주차장에서 환속한 썰

야매쉐프가 말아주는 종교,철학 스파게티 : 외전

by 야매쉐프

"그랜드캐년 앞에서 득도 하고 주차장에서 환속한 썰 풉니다."




새해 기념, 작심삼일 프로젝트.

매일 멘탈이 흔들리는 이유와 해결책에 대한 고찰(?)




※ 경고부터.

오늘 글은 평소 야매쉐프 맛(국제정세 + 비틀기) 기대하면, 약간 “엥?” 할 수 있다.


그리고 미리 말씀 드리자면

특정 종교를 믿으라고 할 생각도 없고, 설득할 생각도 없다.


그냥 요즘 내 머릿속을 괴롭히는 문제들이 있는데

그걸 머릿속으로 해결하려다보니 ‘옛날 사람들의 메뉴판’이 자꾸 튀어나왔다.


그래서 꾸며본 오늘의 식탁.





그랜드캐년 앞에 서니 이런생각이 든다.

“아... 내가 요즘 붙잡고 있는 고민들, 진짜 별거 아니네.”

(캐년을 다녀온 후기들 보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는 말’ 저는 공감합니다.)


근데 그 감정은 주차장도 못 간다.

차에 타자마자 폰을 켰고, 알림을 봤고, 내일 일정이 떠올랐고,

나는 다시 원래 하던 걱정으로 돌아갔다.


인간은 재능이 있다.

걱정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기어이 재발시켜서 키우는 재능.


여기서부터가 오늘 글의 핵심이다.

(정답이라는 뜻 아님. 그냥 관찰이다.)


걱정을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막상 뜯어보면 많은 경우 이런 상태다.


내가 틀리면 안 된다

내가 손해 보면 안 된다

내가 무시당하면 안 된다


즉, 걱정이라 쓰고 승부 모드라고 읽는 상태.


이 승부 모드가 켜지면

걱정은 걱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분노가 되고, 억울함이 되고, 관계를 망치고,

마지막엔 내가 나를 망친다.


고요 하게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튀어올라온다.


이럴때 생각을 정리하는데 아주 좋은 도구들이 있다.

그게 지금부터 얘기할 종교와 철학이다.




1) 기독교: 이건 사랑 찬가가 아니라, 사람 폭주 방지 매뉴얼처럼 들린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바울, 「고린도전서」 13장 4–7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 예수, 「마태복음」 22장 39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예수, 「요한복음」 13장 34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예수, 「요한복음」 8장 32절


결혼식 축사로 읽힐 때는 “감동”인데,

요즘 내 귀에는 “규칙”처럼 들린다.

이걸 읽고 있으면, “사랑이 대단하다”기보다

“인간이 얼마나 자주 이걸 다 어기는지”가 먼저 떠오른다.


내 기준으로는 거의 사람 폭주 방지 매뉴얼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자유”는 거창한 해탈이라기보다,

내가 늘 켜두는 이기려는 마음(승부모드)에서 잠깐 풀려나는 쪽에 더 가깝게 들린다.


그리고 사랑하라는 말은

'이제 그만 싸워라'는 말로 번역되어 들린다.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그 누구든지 간에.


이기려는 마음이 요동칠때

이 말들을 떠올리면 아주 잠깐이라도 사람을 멈칫하게 만든다.


나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라도

내뱉는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2) 불교: 독화살 비유 — 원인 찾기 놀이 하다 독이 먼저 퍼진다

불교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독화살 비유다.

독 묻은 화살을 맞아놓고, 치료받기 전에

“누가 쐈냐, 왜 쐈냐”부터 끝까지 캐묻는 사람 이야기.


“그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 「쭐라마룽캬 경」, 독화살 비유


요지는 단순하다.

“누가 쐈는지”로 승부 보려다 독이 먼저 퍼진다는 얘기다.


내 삶에서는 이게 이렇게 재현된다.

싸움이 나면 나는 순식간에 수사관이 된다.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수사관을 파견받은 다음

과학수사대가 출동한다.


“누가 먼저 그랬지?” “증거가 뭐지?” “더 나쁜 말은 누구였지?”

근데 그 수사관 놀이를 오래 할수록

내 마음의 독이 더 퍼진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내게 이렇게 들린다.


수사 전에 해독.

판결 전에 응급처치.


그러니까 일단 그 상태에서 벗어나라고, 먼저.




3) 스토아: 사건이 나를 찢는 게 아니라, 내 판단이 나를 찢는다

스토아는 말이 건조해서 좋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부의 어떤 일로 괴롭다면,

그것은 그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네 판단 때문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권 47절


누가 내 말을 무시하거나, 상대가 무례하다.

분위기가 꼬인다.

여기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솔직히 거의 없다.

근데 나는 자꾸 통제하려 든다.


상대를 고치려 들고, 상황을 바꾸려 들고,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려 든다.


그러다 내 멘탈이 먼저 찢어진다.


이 문장을 내 말로 바꾸면 이런 느낌이다.

사건은 1차 타격인데, 내 해석이 2차 타격을 넣는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2차 타격을 더 세게 넣는 쪽에 재능이 있다.


1차에 타격 받았을 때, 판단을 멈추면 2차타격은 받지않는다.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두 번째 화살을 맞을 일이 사라진다.




4) 실존주의: 결국 선택은 피할 수 없다 (승부 모드에서 빠져나오는 선택)

실존주의는 위로를 잘 안 한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도록 내던져졌다.”

— 장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나는 이걸 이렇게 알아듣는다.


선택이 싫어도, 선택은 발생한다.

“아무것도 안 함”도 결국 내가 고른 거다.

승부 모드에 들어간 순간에도 선택지는 남아 있다.


계속 따지고 이기려 할지

아니면 오늘만 멈출지

10초를 늦출지

화를 터뜨릴지


별거 아닌 선택인데,

이 별거 아닌 선택이 관계를 살리기도 하고 망치기도 한다.



5) 내가 맡은 유사한 향기 (외전이라고 별거있겠어요? 야매레시피지)

종교와 철학이 말하는 이 문장들이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승부 모드에서 좀 빠져나와라.”




6) 그래서 내가 하는 실험

나는 요즘 이런 실험을 한다.

성공률? 높지 않다. 나도 인간이라서.


화가 치밀 때: 10초 늦추기

억울함이 폭주할 때: “누가 쐈냐” 찾기 전에 일단 물러서서 상황파악

남이 나를 흔들 때: 내가 조절 가능한 것 1개만 고르기

우울이 길어질 때: 오늘 할 선택 1개만 정하기


신기한 건,

성공하는 날은 확실히 하루가 덜 망쳐지는 것 같다는 거다.


개똥철학이다.

야매레시피의 근본이다.

정답도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내일도 또 걱정할 거고,

또 성낼 거고, 또 “내가 맞다”를 들이밀 거다.

(나 포함)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폭주가 누구한테 튀느냐다.


대부분은 사회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한테 튄다. 가족, 동료, 친구, 옆자리 인간.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이 얄팍한 헛소리는

세상 구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내 주변에 불을 덜 지르려는 시도다.

그리고 가능하면, 오늘은 덜 망하자.



새해도 됐고, 나이도 한 살 더 먹었으니까

좀 더 분별하고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통찰하고 싶은 야매쉐프의 소망이다.


작심삼일 프로젝트, 오늘이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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