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자유의 무게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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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한 영국 철학자가 인류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사회는 개인에게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이 제기한 이 근본적 물음은 166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삶의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방역 조치, 개인정보보호와 공공안전 사이의 줄타기, 혐오표현 규제 논란까지 현대 사회의 수많은 갈등 속에서 밀의 목소리는 여전히 선명하다.

밀이 살았던 19세기 중엽의 영국은 산업혁명의 격동 속에서 전통적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던 시대였다. 개인주의가 대두하는 가운데 민주주의가 확산되었지만, 동시에 '다수의 전제'라는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밀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원칙을 찾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자유론』이다.


밀의 자유 철학의 핵심은 '해악 원리(Harm Principle)'에 있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정의했다: "인류가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에 정당하게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자기 보호이다. 문명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해 그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원리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교한 철학적 구조를 담고 있다. 밀은 인간의 행위를 크게 두 영역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자기 관련 행위(self-regarding actions)'로, 오직 본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다.

두 번째는 '타인 관련 행위(other-regarding actions)'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다.

밀에 따르면, 사회는 후자에 대해서만 개입할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악(harm)'의 개념이다. 밀이 말하는 해악은 단순한 불쾌감이나 도덕적 반감과는 구별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확하고 직접적인 손해를 입히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종교적 신념이나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적 간섭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간접흡연, 음주운전, 마약 사용 등의 문제에서 '자기 관련'과 '타인 관련'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밀의 해악 원리는 이러한 복잡한 현실 앞에서 완벽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고려해야 할 기준점을 명확히 제시한다.


『자유론』의 두 번째 장에서 밀이 다루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그의 철학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밀은 표현의 자유를 단순히 개인의 권리 차원에서만 논의하지 않는다. 그는 이를 인류 전체의 진보와 진리 탐구의 필수 조건으로 본다.

밀의 논증은 네 가지 핵심 논리로 구성된다.

첫째, 우리가 억압하려는 의견이 사실은 참일 수도 있다. 인간의 지식은 항상 불완전하므로, 어떤 의견도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거부할 수 없다. 역사는 한때 이단으로 여겨졌던 생각들이 후에 진리로 받아들여진 수많은 사례들로 가득하다. 갈릴레이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둘째, 억압되는 의견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그것과의 논쟁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반대 의견과의 충돌 없이는 우리의 믿음은 죽은 교조가 될 뿐이다. 밀은 이를 "죽은 교의(dead dogma)"라고 표현했다. 진리는 끊임없는 도전과 검증을 통해서만 살아있는 신념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대부분의 경우 진리와 오류는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완전히 참이거나 완전히 거짓인 의견은 드물며, 대개 부분적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들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서만 우리는 더 완전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넷째, 자유로운 토론 없이는 개인의 인격적 발달이 불가능하다.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한다. 외부의 권위에 의해 미리 정해진 의견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능력을 퇴화시킨다.

현대의 디지털 시대에서 이러한 밀의 통찰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소셜미디어의 '에코 챔버' 효과나 '필터 버블' 현상은 밀이 우려했던 획일화의 새로운 형태이다. 알고리즘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만을 전달함으로써,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편협한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된다.


밀의 자유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핵심 개념은 개성(individuality)이다. 그에게 개성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자, 사회 발전의 근본 동력이다.

밀은 인간을 능동적 존재로 본다. 인간은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킬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이러한 능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만의 개성을 발달시키고 표현할 자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밀이 살았던 19세기 중엽의 영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획일화의 압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중산계급의 도덕적 엄숙주의와 사회적 동조 압력은 개인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억압했다. 밀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전제(social tyranny)"라고 불렀다.

그는 개성의 가치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 개성은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에 필수적이다. 각자의 고유한 특성과 재능을 발휘할 때만이 진정한 만족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둘째, 개성의 다양성은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은 주류에서 벗어난 독창적 개인들로부터 나온다. 셋째, 개성의 존중은 관용과 상호 이해의 기반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밀의 통찰은 더욱 중요해졌다. 글로벌화와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전례 없는 다양성과 마주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 가치관,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회 안에서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밀의 개성 존중 원리는 중요한 지침이 된다.


밀이 『자유론』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법적 강제보다도 더 미묘하지만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었다. 그는 "여론의 전제(tyranny of opinion)"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는 '사회적 동조 압력'이나 '집단 사고'와 유사한 개념이다.

19세기 중엽의 영국은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엄격한 도덕적 관습과 사회적 기대가 개인을 옭아매고 있었다. 법으로는 금지되지 않더라도, 사회적 시선과 평판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 검열과 순응을 하게 만들었다. 밀은 이러한 현상이 법적 강제보다도 더 교묘하고 광범위한 억압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여론의 전제는 특히 소수자나 비주류 집단에게 치명적이다.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아무리 정당하고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편견이나 무지에 의해 침묵을 강요받는다. 밀은 이러한 상황을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이라고 표현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여론의 형성과 전파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지만, 동시에 '온라인 린치'나 '캔슬 컬처'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압력도 등장했다. 개인의 작은 실수나 부적절한 발언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밀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현상은 표현의 자유와 개성 발달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솔한 생각을 표현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안전한 의견만을 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지적 활력이 떨어진다.


밀의 자유론은 16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통찰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현대적 맥락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한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 '해악'의 개념이 갖는 모호성이다. 밀이 제시한 해악 원리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해를 상정했지만, 현대 사회의 해악은 훨씬 복잡하고 간접적인 형태를 띤다. 예를 들어, 혐오 표현이나 가짜뉴스는 즉각적인 물리적 해를 가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통합을 해치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또한 환경 파괴나 기후 변화 같은 문제에서는 개인의 행위와 집단적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둘째, 밀의 자유론은 경제적 불평등이나 구조적 권력 관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형식적으로는 모든 개인이 동등한 자유를 갖는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지위나 사회적 권력에 따라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에 차이가 난다.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가 과연 동등한가? 거대 미디어 기업과 개인 블로거의 목소리가 같은 무게를 갖는가?

셋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도전들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조작과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알고리즘에 의한 정보 필터링,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광고,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등은 밀이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의 위협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밀의 핵심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 다양성의 가치, 권위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원리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리들을 현대적 맥락에서 어떻게 재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이다.


밀의 자유론은 찬사와 함께 수많은 비판도 받아왔다. 이러한 비판들을 살펴보는 것은 밀의 이론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한계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 번째 주요 비판은 '자기 관련 행위'와 '타인 관련 행위'의 구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제임스 피츠제임스 스티븐(James Fitzjames Stephen)은 밀의 동시대인으로서 이러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므로 순수하게 '자기만의'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나 자기 파괴적 행동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통을 주고, 사회 전체의 도덕적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비판은 밀의 이론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이다. 공동체주의자들은 밀이 개인과 사회를 대립적 관계로만 본다고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은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따라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가치는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나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같은 철학자들이 이러한 입장을 대표한다.

세 번째 비판은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제기된다. 밀의 자유론은 서구적, 특히 영미권의 개인주의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는 집단의 조화와 전통을 더 중시하는 문화들도 많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조화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화에서 밀의 자유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네 번째 비판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나온다. 밀 자신이 여성의 권리를 적극 옹호했지만, 그의 자유론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 시각의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억압이나 성별 권력 구조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캐럴 페이트만(Carole Pateman) 같은 페미니스트 철학자는 밀의 공사 영역 구분이 여성의 경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밀의 자유론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적 맥락을 넘어 동양 철학과의 대화를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교, 불교, 도교의 전통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유교에서는 개인을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파악한다. 개인의 자아실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달성된다. 이는 밀의 개인주의와는 다른 접근이지만, 반드시 대립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교의 '수양'이나 '교육' 개념은 개인의 내적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밀의 개성 발달 이론과 접점을 갖는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자유는 욕망과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는 외적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는 밀의 자유론과는 다른 차원의 자유 개념이다. 하지만 둘 다 개인의 진정한 해방과 성장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은 인위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밀의 자유방임적 경향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도교의 자연은 개인의 의지를 초월한 우주적 질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동서양 철학의 대화는 자유의 개념이 단일하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맥락적임을 보여준다. 밀의 자유론이 갖는 서구적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이 제기하는 근본적 물음들은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완성된 교리가 아니라 끝나지 않은 대화의 시작이다. 그가 제기한 개인과 사회의 관계, 자유와 책임의 균형, 다양성과 관용의 가치라는 주제들은 16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치열한 성찰을 요구한다.

현대의 디지털 혁명은 밀이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의 가능성과 동시에 새로운 억압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개인의 선택을 예측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상현실과 메타버스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상황에서, 개성과 정체성의 의미도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기후 변화나 전염병 같은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생존이 충돌하는 새로운 딜레마가 제기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개인의 이동과 집회의 자유는 공중보건이라는 집단적 가치와 긴장 관계에 놓인다. 이때 밀의 해악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또한 세계화와 다문화 사회의 진전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적 전통이 한 사회 안에서 공존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관용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자유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부정하는 행위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밀의 자유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소중한 유산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는 태도이다. 그는 진리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과 실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유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쟁취하고 재정의해야 하는 과제이다. 그리고 그 과제는 개인과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공동의 프로젝트이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발달시키면서도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주장하면서도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 전통의 지혜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 이것이 밀이 꿈꾸었던 자유로운 사회의 모습이다.

그의 자유론은 때로 순진하게 보일 수도 있고, 때로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에 대한 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 다양성과 개성의 가치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자유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이며, 우리는 모두 그 여행의 동반자들이다. 밀의 자유론은 그 여행을 위한 나침반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자유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밀의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사회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namu.wiki/w/%EC%9E%90%EC%9C%A0%EB%A1%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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