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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거대한 힘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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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大馬不死)"—큰 말은 죽지 않는다. 이 고전적인 성어는 단순한 크기의 비유를 넘어서,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와 생존 메커니즘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거대한 조직이나 강력한 세력이 작은 충격으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 명제는,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사회 현상들을 설명하는 열쇠가 된다.

하지만 과연 "큰 말"은 정말로 죽지 않는가? 역사는 때로 거대한 제국의 몰락을, 막강했던 기업의 순식간의 붕괴를, 불멸할 것 같던 권력의 허무한 종말을 보여준다. 대마불사의 진정한 의미는 무조건적인 불멸성이 아니라, 크기와 생존력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에 있다.


거대한 조직이나 개체가 보이는 첫 번째 생존 우위는 '완충 효과'에서 나온다. 작은 충격이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큰 조직은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여유 자원과 다양한 부서, 다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치 거대한 댐이 작은 홍수는 쉽게 감당하듯, 대기업은 일시적인 매출 감소나 특정 사업부의 실패를 다른 부문의 성과로 상쇄할 수 있다.

이는 경제학의 '규모의 경제'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큰 조직일수록 고정비를 더 많은 단위에 분산시킬 수 있고, 협상력을 바탕으로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크기 자체가 경쟁 우위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거대 조직들이 보이는 또 다른 생존 전략은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단순히 큰 회사를 넘어서, 수많은 개발자, 판매자, 사용자들이 얽힌 거대한 생태계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네트워크가 한번 형성되면, 그것을 해체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워진다. 모든 참여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심축을 제거하는 것은 전체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기가 곧 생존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거대한 조직일수록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기득권을 가진 내부 세력들의 저항,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왜 바꿔야 하나"라는 현상유지 편향이 혁신을 가로막는다.

코닥의 몰락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때 사진 필름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필름 사업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에 실패했다. 거대함이 오히려 변화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내부 복잡성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부서 간 소통 비용이 늘어나고, 관료주의가 팽배해지며, 핵심 역량보다는 조직 유지 자체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는 마치 거대한 공룡이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데만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던 것과 같다.


작은 조직이나 개체들이 거대한 상대를 이기는 방법은 정면승부가 아니라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와 DVD 대여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아예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우버는 기존 택시 회사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고, 플랫폼 경제의 논리로 운송업계를 재편했다.

이런 '파괴적 혁신'은 작고 민첩한 조직들이 가진 고유한 무기다. 실패해도 치명적이지 않고, 빠르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있다. 반면 거대 조직들은 기존 사업과의 충돌을 우려해 혁신적 아이디어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큰 말"들이 점령하지 못한 틈새 시장에서 "작은 말"들은 오히려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특수한 고객층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거대 기업들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21세기의 대마불사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힘은 전통적인 자산이 아니라 데이터와 네트워크 효과에서 나온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서비스가 더 유용해지고, 더 유용한 서비스일수록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런 플랫폼들은 한번 임계점을 넘으면 '승자독식' 구조를 형성한다. 검색에서는 구글, 전자상거래에서는 아마존, SNS에서는 페이스북처럼, 각 분야의 절대강자가 나타나고 이들을 도전하기는 극도로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 독점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 세계 정부들이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반독점 조사도 잇따르고 있다. 대마불사의 현대적 버전인 플랫폼 독점이 사회 전체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명한 거대 기업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인식하고 이를 보완하려 한다. 구글이 유튜브를,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것처럼, 내부에서 만들어내지 못하는 혁신을 외부에서 가져오는 전략이다. 또한 개방형 혁신을 통해 외부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일부 거대 기업들은 조직 내부를 작은 단위로 분할하고, 각각에게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민첩성을 확보하려 한다. 구글의 알파벳 구조 개편, 아마존의 '2-pizza 팀' 원칙 등이 그 예다. 큰 조직의 자원력과 작은 조직의 민첩성을 동시에 얻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대마불사의 논리가 적용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생존력은 단순한 능력을 넘어서 네트워크와 평판에 크게 좌우된다. 강력한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위기 상황에서의 생존 확률을 높인다.

하지만 개인의 경우 조직과 달리 과도한 규모 확장보다는 다변화와 유연성이 더 중요하다. 여러 분야의 역량을 기르고,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장기적 생존력을 결정한다.


대마불사는 단순히 "큰 것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크기와 생존력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최적의 생존 전략을 이해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대마불사는 물리적 크기가 아니라 적응력과 회복력에서 나온다. 변화하는 환경을 예측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며, 실패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생존력이다.

거대한 공룡들이 멸종하고 작고 민첩한 포유류들이 살아남았듯이, 오늘날에도 크기보다는 적응력이 생존의 핵심이다. 대마불사의 현대적 의미는 "크되 유연하게, 강하되 겸손하게"라는 역설적 지혜에 있을 것이다.

결국 대마불사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진화와 적응의 과정이다. 오늘의 거인이 내일의 공룡이 되지 않으려면, 항상 위기 의식을 갖고 스스로를 혁신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적 대마불사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ordrow.kr/%ED%95%9C%EC%9E%90/%E5%A4%A7%E9%A6%AC%E4%B8%8D%E6%AD%BB-%EB%8C%80%EB%A7%88%EB%B6%88%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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