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계속

by 혜온

언덕 위에서 바람이 불었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흔들었고, 그 아래 앉아 나는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햇빛은 기울고 있었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약속은 늘 그렇듯 막연했다. "언젠가, 다시"라는 말뿐이었다. 장소도, 시간도 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그 길을 선택하는 순간, 이미 끝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갔다. 해야 했다. 그게 옳은 일이었으니까. 이별을 알면서도 손을 내밀었고,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마주 보았다. 마지막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말했다. "언젠가, 다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낮이 어두워지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다시 새벽이 왔다. 계절이 바뀌었다. 풀들이 돋아나고 시들었다. 나무는 잎을 떨구었고, 다시 푸르게 물들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이 언덕에 있었다. 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헛된지 알았다. 그래도 기다렸다.


가끔 꿈을 꿨다. 꿈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같은 공간에 서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말은 많지 않았다. "여기 있었구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언덕은 여전히 고요했고, 나는 혼자였다. 손을 뻗어봤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저녁, 하늘에 별이 떴다.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지평선 너머에서 빛났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저 별빛이 내게 닿기까지 얼마나 먼 시간이 걸렸을까. 이미 사라진 별의 빛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그 빛은 분명 여기 있었다. 닿을 수 없는 것들도, 이렇게 빛을 보낸다.


기다림에는 끝이 없다는 걸 알았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중요한 건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저 멀리 누군가도 같은 마음으로 어딘가에 있다는 것. 헛된 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향해 있었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렸다. 몸이 무거워졌다.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았다. 나는 나무 아래 누웠다. 돌아오고 싶었던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꿈의 계속을─ 죽음 이후에도, 시간 너머에도, 끝나지 않는 꿈을.

언덕 위에서, 나무 아래에서, 기울어가는 햇빛 속에서.

닿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멀고, 먼 꿈을 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