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빛이 터진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도, 그림자도, 냄새도 사라졌다.
오직 흰빛. 그 안에서 남자는 눈을 떴다.
도시가 멈춰 있었다.
하늘의 구름은 흐르지 않았고, 거리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춘 채
공중에 떠 있는 먼지처럼 고요했다.
그는 자신이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곳에선 숨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 속으로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감각이 분명히 있었다.
“……나, 살아 있나?”
그의 목소리가 공기를 흔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도시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멀리, 흰빛의 중심에서 여자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의 옷자락은 여전히 회색빛이었지만,
그 끝자락에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당신은……”
남자가 말을 잇지 못했다.
여자는 그를 바라봤다.
눈동자 속엔 ‘감정’이 있었다.
그건 이곳의 어떤 존재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의 도시 위로, 거대한 균열이 생겨 있었다.
빛으로 만들어진 하늘이 갈라지며,
그 틈새로 어둠의 공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감쌌다.
두 사람의 몸이 닿는 순간, 그들의 빛이 부딪혀 작은 파장이 일었다.
그 파장이 주변으로 번지며 도시의 정지된 시간에 균열을 냈다.
정지된 사람들의 눈이 하나둘 깜빡였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으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이는 두려움, 어떤 이는 놀라움, 그리고 몇몇은 눈물을 흘렸다.
완벽한 도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속삭였다.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이제 알겠어요.”
“이유요?”
“당신의 감정이……이 세상을 다시 숨 쉬게 만들고 있어요.”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 순간, 멀리서 또 하나의 균열이 터졌다.
하늘이 완전히 찢어지며, 그 틈 사이로 빛과 어둠이 뒤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도시 전체가 흔들렸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이 세계가 무너지는 건가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마, 처음으로 살아나는 중일 거예요.”
빛의 도시가 울었다.
그리고 그 울음 속에서,
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