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여름
운동회 전날,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아침부터 구름이 낮게 깔렸고, 교실 창밖으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비 오면 운동회 연기된대?”
시영이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글쎄… 내일은 꼭 했으면 좋겠는데.”
주희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깃발이 펄럭이고, 운동장에 쳐둔 천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비가 와도 연습은 계속한다! 우리 반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지?”
아이들은 우산을 쓰고 체육관으로 옮겨가 연습을 이어갔다.
습한 공기 속에서 음악이 울렸다.
각시춤의 북소리가 바닥에 퍼졌고, 아이들의 발자국이 반짝이는 물자국을 남겼다.
주희는 치맛자락을 잡고 빙그르 돌았다.
옷자락에서 물방울이 튀었다.
그 순간, 시영이의 웃음이 터졌다.
“우리 내일 꼭 하자. 비 안 오게 기도하자!”
주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업이 끝나고 하교길.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주희는 가방 위에 손수건을 덮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운동화는 금세 젖었고, 양말이 눅눅해졌다.
그래도 이상하게 마음은 나쁘지 않았다.
비 냄새가 여름의 냄새와 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집 앞 골목을 돌아서자,
주주가 마루 밑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주주야, 나 왔어.”
주희가 손을 흔들자 주주는 비를 맞으며 달려왔다.
“안 돼! 젖잖아.”
주희가 웃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주주는 멈춰 서서, 비에 젖은 얼굴로 주희를 바라봤다.
꼬리를 흔들다가, 마치 주희를 따라가고 싶은 듯 울음을 짧게 냈다.
밤이 되자 비는 더 굵어졌다.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인 리듬처럼 들렸다.
엄마는 주희의 젖은 운동화를 신문지에 감싸며 말했다.
“내일 비 그치면 좋겠다.”
“응, 우리 반 각시춤 해야 되는데…”
주희는 이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주주도 오늘 비 많이 맞았지?”
엄마가 웃었다.
“그래도 주희 기다리느라 마루 밑에서 꼼짝도 안 했더라.”
그 말을 듣자 주희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졌다.
창문 밖으로는 여름비가 부드럽게 내리고,
멀리서 풀벌레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주희는 눈을 감았다.
비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섞여
하나의 자장가가 되었다.
그렇게 주희는,
비 오는 여름밤의 꿈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