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운동장
운동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학교는 매일 축제처럼 들떠 있었다.
복도에는 색색의 깃발과 풍선이 매달렸고,
각 반 교실 문 앞엔 ‘1학년 2반, 꼭두각시팀 파이팅!’ 같은 문구가 붙었다.
칠판엔 분필로 그린 별과 하트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연습을 했다.
책상 사이로 북소리, 발소리, 웃음소리가 섞여 흘러나왔다.
“자, 이번엔 각시가 오른쪽으로 돌 때 신랑은 왼쪽!”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주희는 팔을 들고 천천히 돌았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하지만 시영이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정말 잘했어!”
그 말에 주희는 수줍게 웃었다.
점심시간엔 운동장 한쪽에서 응원 연습이 있었다.
북을 치는 아이들이 앞줄에 서고,
뒤에서는 손수건을 든 아이들이 “파이팅!”을 외쳤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었고,
모래 위에는 아이들의 발자국이 겹겹이 찍혔다.
달리기 연습 중인 남자아이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나갔다.
“선생님! 저 1등이에요!”
“거짓말! 네가 언제!”
웃음과 장난이 뒤섞였다.
주희는 운동장 한쪽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물병을 들고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람에 깃발이 펄럭였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구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해질 무렵, 학교를 나서는데
발걸음이 유난히 느렸다.
오늘은 정말 피곤했다.
햇살, 웃음, 구호, 북소리, 땀냄새까지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다.
집 앞 골목을 돌아서자,
주주가 보였다.
언제나처럼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주주야, 나 이제 진짜 쓰러질 것 같아.”
주희는 주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운동회 끝나면 우리 놀러 가자. 약속.”
주주는 주희의 발에 코를 대고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주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눈을 감자마자 운동장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북소리, 함성, 그리고 시영이의 웃음소리.
창밖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다시 울리고 있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며 말했다.
“오늘도 고생했네, 우리 딸.”
그 말이 희미하게 들리자
주희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금세, 여름 저녁의 꿈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