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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맑음 Sep 12. 2024

[에세이] 그 시절에는 캔디와 개구리소년이 있었다.

8화 그 시절에는 캔디와 개구리 소년이 있었다.


70~80년대, 그를 넘어선 90년대까지 우리의 유년을 차지했던 애니메이션 중에 들장미 소녀 캔디와 개구리 왕눈이가 있었다.


들장미 소녀 캔디는 고아 소녀 캔디 화이트 애드리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겪는 다양한 모험과 사랑, 이별을 다루고 있다.


개구리 소년으로 알려진 개구리 왕눈이는 주인공 개구리 왕눈이와 그의 친구들이 연못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왕눈이의 주요 친구로는 똘똘이, 수지, 흰둥이 등이 있으며 이들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못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특히 왕누이는 여러 시련과 도전을 통해 점점 더 성숙해지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깊어지게 된다.


나는 잘 울지 않는 사람이다. 힘들 때에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한다. 아마 인생에도 장르가 있다면 나의 장르는 해학일 것이다.


해학은 유머와 풍자를 결합한 문학적, 예술적 장르로 인간 본성에 대한 풍자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학은 종종 사회의 모순이나 부조리, 개인적 결점을 과장되게 표현하며, 독자나 관객을 웃음 속에서 그 문제들을 인식하게 만든다.


힘든 말을 나는 웃으며 한다. 거기에 유머를 곁들여 심각하지 않게 내뱉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과거의 애니메이션의 가스라이팅이 있었다.


두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기억하는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삘리리 개굴개굴 삘리리리.“


순진한 어린아이들이 울지 못하도록 가스라이팅 한 것이 분명하다. 시련 앞에서도 그들은 울지 않는다. 그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누구도 울며 좌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수술을 앞두고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 것일까?


아프고 무서웠다. 그러나 나는 강한 사람이었다. 본래 나는 스타일이라면 수술 전에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수술 후, 이렇게 말했겠지.


“몸이 좀 안 좋았어. 그래서 수술했는데 이제 괜찮아졌어.”


강한 것을 넘어서 무신경한 수준이었다. 그런 내가 왜 병에 대해서 알리기로 결정했을까?


간단한 문제였다. 이러다가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몸은 날로 약해지고 일상이 어려운데 전신마취 수술을 견딜 수 있을까?’ ‘사람이 이 정도로 아프다면 당연히 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본래 특별한 일이 없어도 연락하는 친구는 적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고 수술대 위에서 죽게 된다면 어떨까?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내 부고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용기를 내기로 했다. 전화기를 들어서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평소 고마웠지만, 마음을 전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떄문이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리고 내가 병에 대해서 알리면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받았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던 사람은 정확히 8명이었다. 그들의 종교는 각기 달랐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조상에게 빌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 대신 아파주고 싶다고 말했던 친구가 있었다. 피가 섞인 가족도 쉽게 할 수 없는 말이 아닐까. 굉장히 고마웠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건강하게 나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화를 내겠다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아픈 지인의, 그리고 자기 경험을 공유해주었고 누군가는 식사를 못 하는 나를 위해서 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전해주었다.


나는 그들의 보살핌 속에서 수술을 기다렸다.


나는 무엇을 망설였던 것이고 무엇이 무서웠던 것일까. 정말 나는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차마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부모님조차 내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기에 내가 얼마나 아프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수술을 앞두고 자주 나를 불러내 밥을 사 먹이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아프지 않게 다시 낳아줄 수만 있다면 좋겠어.”


우리 엄마는 굉장히 무뚝뚝한 사람이다.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으며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하는 걸 아끼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란 걸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아픈 것이 자기의 탓인것 같아서 힘들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병을 알리면서 내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말은 다정한 솜인형 같았다. 몽글몽글한 그 말들은 나를 따듯하게 안아주었고 조금 더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내 주변 사람들은 매일 밤, 그들이 잠들기 전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너의 밤이 평온하길 바랄게.”


외로운 새벽에 쌓여있는 메시지를 보고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나도 나의 밤이 평온하길 바랐다.


수술을 앞두고 나는 겁을 먹고 있었다. 매일 해가 지는 것과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면서 눈물 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나는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겁에 질린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죽는 것이 무서웠다.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누리지 못할 시간을 생각했다.


그러나 병이 깊어가고 통증이 심해지고 내 주변 사람들이 겁을 먹을수록 나는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그것은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었다.


내가 없으면 매일 울면서 술을 마실 거라는 나의 남편. 그는 여린 얼굴을 하고도 절대로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2년의 연애, 3년의 결혼 생활 중 우는 모습을 보인 적 없는 남편의 말이었다.


내 남편과 부모님, 그리고 친구와 나를 아끼던 사람들. 나는 그들을 걱정해야 했다. 내가 없으면 그들이 잘 살 수 있을까를 떠올리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없으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엄마로 믿고 사랑하는 두 마리의 고양이.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다시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을 길들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고 왜 죽기 전의 사람들이 주변인들 걱정만 하다가 죽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죽게 된다면 나는 내 삶을 아까워할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미 그쯤 미련이 남은 일들을 해치웠기 때문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비눗방울 총을 샀고,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났다. 궁금해하던 사연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먹고 싶은 것도 원 없이 먹었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 앞에서 그곳에 없을 나를 아쉬워했을 것이다. 내 삶을 아까워하며 이 좋은 순간에 그리고 슬픈 순간에 내가 함께 있지 않아서 서글플 것 같았다.


이것은 비관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좀 더 나이를 먹고 알게 될 생각을 나는 아픈 덕에 좀 더 일찍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프지 않았던 사람보다 더 후회 없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처럼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병을 알리기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마음을 먹는 것이었다. 그 후엔 간단했다. 전화를 들 정도의 용기, 그도 안되면 메시지를 보낼 정도의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아마 당신이 평생 기억할 좋은 말들을 한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듣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내가 말하지 않고 혼자 담아둘 때 놓쳤던 말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이제는 놓치지 않기로 했다. 내게 필요한, 그리고 내가 들어야 할 무수한 응원 속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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