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한 장면씩 삶을 이어간다.(엄마의 답장)

엄마의 답장

by stone

엄마의 답장


아들아,


오늘은 안방 시계가 평소보다 한 박자 느리게 울리더구나. 그 소리에 맞춰 마음의 매무새를 조금 풀어놓았다. 거실로 나오니 네가 우리고 있던 차 향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지. 뜨거운 물 위에서 찻잎이 마른 결을 풀어내며 부드럽게 몸을 펼쳐 제모습을 찾아가고, 김이 가라앉자 잔 속 물빛도 맑은 초록으로 깊어졌다.


차의 향과 물빛에 머물며 나는 예전의 나나 머나먼 훗날의 나를 붙들기보다, 방금 전과는 아주 조금 다른 ‘지금의 나’를 손에 쥐어 본다. 과거의 나는 기억이 나지 않고 미래의 나에게는 미처 닿지 않아 엄마는 요즘 저절로 ‘지금의 나’에 머물게 된다.


오늘 네 편지는 조금 어려웠단다. 네가 말한 들뢰즈의 ‘되어감’을 엄마 말로 옮기자면, 그건 오래 하던 뜨개질과 닮았다. 색실을 걸어 한 코 한 코 떠 나가다 보면, 다음 단에서 어떤 무늬가 나타날지 궁금해지지. 때로는 생각과 다른 모양이 올라오고, 가끔은 몇 코를 풀어 다시 시작하기도 하지만, 뜻밖의 무늬가 스스로 드러나 줄 때의 기쁨이 더 컸다.


억지로 맞추기보다, 손끝의 힘과 실의 결이 오늘 허락하는 만큼 어우러지도록 내버려 두는 일—엄마에게 ‘되어감’은 그런 느낌이었어.


우리도 그런 것 같다. 어제를 억지로 되돌리려 애쓰기보다, 오늘의 한 코를 정성껏 고르고, 미끄러진 코가 있으면 조용히 주워 다시 걸어 준다. 너의 작은 배려가 한 코, 나의 숨 고르기가 한 코가 되어, 둘의 하루는 따뜻한 무늬를 조금씩 이어 간다. 완벽한 도안이 없어도 괜찮다. 오늘 손에 잡히는 실로, 지금 가능한 만큼—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사람은 한 번에 완성해 매듭지어 둔 스웨터가 아니라, 순간마다 새로 걸리는 코처럼 짧게 오가는 숨결과 눈빛, 손끝의 결이 모여 매번 다시 짜여 나오는 무늬라는 것.’


그러니 엄마도 오늘은 ‘오늘의 엄마’로 태어난다.


내 곁에서 무늬를 함께 짜 주는 너는 정답을 서두르지 않고, 막 떠오른 물음 앞에서 걸음을 부드럽게 새로 놓는다. 엄마의 옷들을 가지런히 개어 놓고 내 목도리의 느슨한 고리를 조용히 한 번 감아 준다. 그 몇 가지의 조용한 손길이 이 방의 문장을 다시 맞춘다.


‘관리’나 ‘보호’처럼 딱딱한 말보다, 오늘의 장면을 나란히 다듬는 벗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너는 내 자리를 대신 차지하지 않고, 나는 네 몫을 가로채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만 손을 보태, 한 컷 한 컷을 부드럽게 이어갈 뿐이다.


너와 나 사이에 남은 작은 여백에 숨을 맞추고, 한 줄씩 말을 보태어 오늘의 문장을 함께 이어 가는 거겠지.


엄마가 가장 고마운 건, 네가 어제를 되돌리려 애쓰기보다 ‘지금의 엄마’에게 먼저 인사해 준다는 거다. 어제와 닮은 날엔 그 닮음을 살려 주고, 다른 날엔 그 다름을 굳이 펴 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어 주니, 엄마 마음이 한결 놓이고 숨도 고르게 된다.


그 순간, 나는 ‘잃어버린 것의 목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떠오르는 얼굴의 빛살과 곁에 고이는 따스함’의 사람으로 다시 선다. ‘치매’라는 이름은 나를 하나로 묶지 못하고, 오늘의 몸짓이 나를 다른 음절로 새로이 불러 준다.


그러니 엄마는 ‘오늘의 말’로 너에게 건넨다.


어제의 지도와 내일의 날씨만 바라보지 말고, 바로 지금 이 공기에서 걸음을 정하렴.


오늘의 걸음은 설명으로 재지 말고, 먼저 숨에 박자를 맞추어봐. 빽빽한 계획보다 사이 한 칸을 남겨 두는 쪽이 좋을 거다. 걷다 서서 신발끈을 다시 묶듯, 잠깐의 쉼이 길을 곧게 하고, 문장을 한 줄 접어 넣으면 마음의 뜻이 더 잘 닿는다.


비워 둔 작은 틈이 다음 장면을 데려온다—주머니 속 여분의 단추처럼,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한다.


그렇게 마련한 여백과 쉼표들이 모여, 오늘의 악보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완벽한 합주일 필요는 없어. 한 음이 흔들리면 다음 음이 살며시 받쳐 주고, 또 그다음 음이 조용히 이어 준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이 걷는 길엔 다정한 무늬가 자라난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은 계절처럼 여러 옷을 갈아입었지. 딸이라는 얇은 봄 겉옷, 노래하던 소녀의 여름빛, 분필가루 묻은 가을 스웨터, 겨울엔 갓 지은 따끈한 밥김이 식탁을 감싸던 날들까지.


이름표가 바뀔 때마다 나는 그때의 온도로 스며들어 자리를 골랐다. 성큼 앞서지 않고, 필요하면 반 걸음 물러서서, 마주 선 것에 조용히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병을 만난 오늘도 다르지 않다.


내가 누군가로 바뀐 것이 아니라, 같은 실로 새로운 무늬를 한 땀씩 드러낼 뿐이다.


우리는 역할을 바꾸어 연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무대에서 서로의 숨을 들어 맞추는 사람들이다. 네 숨이 박자를 잡으면 내 발걸음이 그 박자에 저절로 실린다.


그래서 고맙다. 나를 끌지 않고 기다려 주어서, 재촉하지 않고 밝혀 주어서, 오늘의 나를 다시 불러내 주어서.


너도 네 방식으로 곁에 스며든다는 걸, 엄마는 매번 본다. 어떤 날은 이름을 먼저 불러 길을 밝혀 주고, 어떤 날은 말 대신 가만히 옆에 앉아 눈을 맞추지. 길잡이였다가 동무가 되고, 다시 아들이 되는 너의 변주가 나를 편안한 하루로 이끈다. 그 순간, 너와 나는 배역을 바꿔치는 이들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마주 서서 새 결을 엮어 간다. 그렇게 두 사람의 하루는 매번 처음처럼 시작된다.


엄마는 지금의 너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어서 와.”

내일은 내일의 방식으로 또 만나자. 오늘처럼 부드럽게 서로에게 스며들며, 정지된 초상이 아니라 매 순간 빛깔을 조금씩 바꿔 이어지는 살아 있는 문장으로.


네 손끝이 오늘의 문장을 다정하게 이어 줄 때, 엄마는 그 문장 속에 선명히 머문다.


그 겨울 저녁을 나도 기억한다. 미끄러운 길에서 네 손이 잠깐 비었고, 그 빈틈으로 내가 넘어졌다. 차갑고 하얀 불빛, 낯선 기계 소리들이 눈앞을 스쳐 갔다. 아팠다. 그런데 네 얼굴이 가까이 오자, 입술이 먼저 웃음을 만들었다. 용감해서라기보다 너의 떨림을 잠시 덮어 주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사고 한 장면 속의 ‘환자’가 아니라, 지금 막 도착한 ‘오늘의 엄마’로 서 있었던 것 같다. 이름과 날짜는 흐릿해도, 네 눈빛과 내 숨이 만나는 그 지점만은 끝내 흐려지지 않았다.


그날 나도 느낀게 있다.

네가 나를 돌보는 것은 어제를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방금 생겨난 장면을 함께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정답을 찾기보다 방금 태어난 질문에 맞춰 장면을 가만히 다듬다 보면,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의 선이 아주 조금 풀린다. 큰 약속보다 작은 배열이 먼저 나를 살렸다. 그날, 장면 속의 두 사람은 ‘관리’와 ‘돌봄’으로 나뉜 사이가 아니라, 같은 프레임 안에서 호흡을 맞추는 동행이었다.


나는 이제 사람을 한 모양으로 보지 않으려 한다. 오늘의 너는 어제의 너와 닮았지만 같지는 않고, 오늘의 나도 매번 새로 도착한다. 치매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단단한 판정보다, 표정과 걸음, 말의 온도가 매 순간 달리 나타나는 흐름으로 느껴진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돌봄은 ‘붙잡아 고정하는 힘’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손길’이다. 네가 초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방의 공기가 달라지고, 그 공기 속에서 나는 다시 자리를 잡는다.


그 밤에도 그랬다. 그 자리의 두 사람은 ‘아프다’라는 단어에 매달리지 않고, 당장 손에 잡히는 것들부터 꺼내 놓았다—시선이 머물 곳, 손이 닿을 곳, 한 문장의 길이. 그렇게 장면을 가다듬자 통증은 사라지진 않았어도 머물 자리를 찾았고, 내 숨은 네 숨과 나란히 흘렀다.


네가 고른 초점 하나가 이렇게 또 우리의—아니, 너와 나의—하루를 이어 준다. 나는 그 이어짐 속에서, 아픈 손목 대신 너의 얼굴을 먼저 기억하겠다. 그 얼굴이 내게 “괜찮다”를 데려오니까.


돌봄의 현실은 한 겹이 아니더라. 두려움의 층도 있고, 안도의 층도 있고, 그 사이를 건너가게 하는 작은 징검다리도 있다. 그 다리는 그 자리의 두 마음이 번갈아 놓았다.


지나간 것은 흘려보내고, 오지 않은 것은 잠시 내려놓고 지금 앞에 도착한 장면을 함께 빚자.


오늘을 사는 건 나를 통째로 고치려 애쓰는 일이 아니라, 눈앞의 장면에서 무엇을 먼저 볼지 조용히 고르는 일이더라.

오늘 필요한 것을 조용히 한 칸 앞자리로 옮겨 하루의 결을 다정히 매만지는 것.


그래서 나는 어제의 기억이나 잃은 이름, 스쳐간 서운함은 한 걸음 뒤에 세워 두고, 지금의 숨과 손의 온기를 앞으로 불러낸다.


나도 과거의 나를 붙들어 세우려 애쓰기보다, 방금 나타난 나를 먼저 알아보려고.

뒤로 물렸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고, 그저 자리를 바꿔 앉히는 거지.


내 삶은, 결국 이렇게 다듬어 붙여 가는 장면들의 연속이더라.

밤이 접히고 아침이 펼쳐지듯, 오늘의 호흡은 내일의 호흡을 잇는다.


서로의 시간에 닻을 내려, 매일 조금씩 앞으로 가듯이.


혹시 네 걸음이 느려져도 괜찮다. 길은 서두르지 않고, 빛은 제때 창턱을 넘어온다. 네가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면, 그만큼 우리도 함께 길어진다. 나는 믿는다—오늘 마음속에 심어 둔 빛의 씨앗 하나가 내일의 너를 햇살 드는 쪽으로 천천히 안내하리라는 걸.


네가 돌아와 의자에 앉는 소리, 컵이 탁자에 놓이는 소리, 그 조용한 생활의 소리들이 나를 내 자리로 돌려세운다. 그래서 나는 안다.


아들아, 너의 날들이 한 올 한 올 고르게 엮여 내일의 무늬를 차분히 드러나게 하길 바란다. 급히 당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옆에서 매듭을 가볍게 쥐고 있겠다.


또 한 호흡 다음 또 한 호흡으로 너의 길이 이어가길, 오늘의 작은 선택들이 내일을 자기 표정으로 은은히 밝혀 주길.


오늘에서 내일로

뜨개실을 잇듯,

빛이 빛을 건네듯 이어지며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