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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드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취향은 인생의 언어다

by 김남정

사람들은 흔히 인생의 목표를 '행복'이라 말한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추상적이라서 손끝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행복'대신 '즐거움'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즐거움은 감각적이다. 눈앞에 있고, 내 몸이 반응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출발점은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취향'이다. 취향은 단순한 '좋아함'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스스로를 표현하는 언어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또 다른 언어


어떤 사람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질서를 잡고, 또 어떤 사람은 오래된 가게의 낡은 냄새에서 위로를 얻는다. 누군가는 모던한 카페의 흰 벽을 좋아하고, 또 다른 이는 시장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안정을 느낀다. 이 모든 감각의 선택이 바로 '취향'이다.


나는 나의 취향을 설명할 때 늘 이렇게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책, 영화, 그림, 공간, 사람, 식물, 자연..... 그것들은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초상화다. 내가 어떤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지도이기도 하다.


취향을 발견하는 일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취향을 안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뭘 좋아해야 할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SNS의 피드가 보여주는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 인기 있는 카페, 모두가 읽는 베스트셀러가 나의 선택을 대신해 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의 취향'은 희미해지고, '좋아해야 할 취향'만 남는다.


나 역시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시선이 만든 '좋아함의 목록'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당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그게 결국 당신을 만든다." <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 고백> 중

그 문장은 내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어떤 책은 왜 자꾸 손이 가는지, 어떤 사람의 말투나 댓글에 왜 유독 마음에 남는지. 이유를 묻고 곱씹는 과정에서 '나의 중심'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취향은 무기이자, 나의 큐레이션


나는 스스로를 '큐레이터'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가공해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바로 '창작'이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감동의 결을 내 언어로 풀어낸다. 남편과 함께 본 영화 한 편이 내 안에 남으면 그 잔향을 글로 옮겨 다른 이에게 전한다. 결국 내가 하는 모든 창작의 출발점은 '내 취향의 축적'이다. 취향은 창작의 원천이자,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힘이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이건 당신 같다"라고 말할 때, 그보다 기쁜 순간은 없다. 그 말은 곧 '나의 취향이 온전히 전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삶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야 한다


취향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마음이 편한 색의 옷을 입고, 나에게 잘 맞는 컵에 커피를 따르는 일상적인 습관 속에서도 취향은 자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즐겁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을 즐겁게 할 줄 아는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도 즐거움을 전할 수 있다. 결국 인생이란, 좋아하는 것들로 자신을 가꾸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그 속에서 조금 더 나를 알아가고, 또 조금 더 즐겁게 살아간다.


"내 취향은 나의 언어이고, 나의 무기이며, 나의 삶이다. 나는 그 언어로 오늘도 세상과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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