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라는 작은 길 위에서 발견한 나
하루의 끝, 주방을 정리하고 산책을 끝낸 시간, 책상 잎에 앉는다. 창밖의 불빛이 점점 사그라들면, 나는 노트를 펼쳐 오늘을 정리한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한 대화다. 아침부터 흘러온 시간들을 되짚으며, 마음 한 편의 구겨진 감정을 펴고, 조용히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시간은 세상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저녁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를 발견하는 일'을 조금씩 연습한다.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의 조각들을 모아 문장으로 엮는 일이다. 하루 동안 흩어진 생각의 잔상들이 종이 위로 흘러내릴 때, 나는 비로소 '나'를 본다. 글 속의 나는 때로 낯설고, 때로 익숙하다. 삶의 결은 문장 속에 묻어나고, 그 문장은 다시 나를 비춘다. 글을 쓸 때마다 새삼 느낀다. 단어는 나의 체온이고, 문장은 내 호흡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글 한 줄이 완성될 때쯤, 나는 조금 더 솔직한 나로 돌아와 있다. 쓰는 일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를 발견한다.
일기를 쓴다는 건, 나 자신과 마주 앉은 일이다. 때로는 그 만남이 쉽지 않다. 말로 옮기기 어려운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뒤엉켜, 자판기 위 손가락은 망설일 때가 있다. 그럴 땐 문장을 만들지 않고, 마음을 단어 하나로 남긴다.
"그리움, " "피로", "고마움", "텅 빔." 그 짧은 단어들은 마치 오늘의 마음을 재는 체온계 같다. 그렇게 쌓인 단어들이 내 삶의 온도를 기록한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 어떤 계절을 견뎌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기가 고요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을 쓸 때면, 마음은 다른 결로 흔들린다. 단어 하나, 쉼표 하나에도 타인의 시선이 비친다. 이 감정은 너무 사적인가, 이 표현은 지나치게 솔직한가. 부끄러움이 스치지만,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나를 성장시키는 불빛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나도 그래요."하고 말할 때,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세상으로 이끈다. 쓰는 일은 결국 연결의 일이다. 글로써 나를 드러내는 순간, 나는 타인과 조용히 이어진다. 그 만남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물론 글을 쓴다는 건 쫓기는 일이다. '오늘은 꼭 써야지', '이만큼은 써야 의미 있지 않을까'하는 조급함이 스며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글은 달리기가 아니라 숨이다. 억지로 내쉴 필요도, 서둘러 들이쉴 필요도 없다. 잠시 멈추어도 괜찮고,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괜찮다. 쓰지 못하는 시간 또한 내 안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키우는 시간이다.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보다, 멈춰 있을 때의 나를 더 믿는다. 그 고요 속에서 문장은 다시 자라난다.
이제 나는 안다. 쓰는 일은 자기표현의 예술이자, 삶을 건강하게 돌보는 일이다. 몸이 건강해야 하루를 살아내듯, 마음이 건강해야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며, 그 다양성 속에 한 줄의 온기를 더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림으로, 또 누군가는 노래로 자신을 표현한다면, 나는 글로써 나를 표현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저녁의 조용한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나를 다시 세운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어제보다 더 나다운 나로 돌아온다.
길 위의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미완의 나를 매일 마주하는 일기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