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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이는 힘

다크호스의 길

by 김남정

이전 회차에서 톨스토이의 세 질문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닿았지만, 그 이후로 내 마음에 남아 있던 질문은 조금 달랐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 시기에 마주한 책 <다크호스 성공의 표준 공식을 깨는 비범한 승자>가 떠 올랐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떠올렸을 것이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 길을 개척한 사람. 비전공으로 새로운 분야에서 빛을 낸 이들,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일에 뛰어든 사람들, 주변에서 조용히 자기만의 속도로 인생을 새로 써나가는 이들. 우리는 모두의 주변에서 그런 '다크호스'를 한 번쯤 본 적이 있다.


<다크호스>가 말하는 성공은 흔히 알려진 성공의 공식을 뒤집는다. 학력, 경력, 스펙이라는 평균의 기준들이 아니다. 다크호스를 이루는 핵심은 특별함이 아니라 개별성(indiviuality)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내가 중심에 둘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가는 길이다. 예측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길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자연스레 주변의 '다크호스들'을 떠올렸다. 정해진 공식보다, 마음의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조용히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리듬을 찾아 살아가는 이들. 그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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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많은 순간들을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정답인 것처럼 여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 남의 길을 따라가는 삶은 익숙할 뿐, 나를 단단하게 만들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중년의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이었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있다.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 그녀는 평생 농사일과 집안일로 살아온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70세가 넘어서야 처음 붓을 들었다. 손 관절이 굳어 바느질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되면서 "아 그럼 그림을 그려야지"하고 그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녀의 그림은 미술 이론으로 무장한 작품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눈으로 보아온 농촌의 풍경. 모두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자기 감각으로 솔직하게 담아낸 것이었다. "나만의 색"이 분명했기에, 사람들은 거기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결국 모지스 할머니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늦은 시작과 비전문성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다크호스>에서 말하는 진리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늦어도 괜찮고, 남과 다르게 가도 괜찮다. 자기 이해가 만든 방향이 결국 자신을 빛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건네는 메시지는 지금의 나에게 유난히 또렷하게 울렸다


어제, 오랫동안 이어온 모임에서 또 다른 다크호스를 만났다. 조용히 시를 쓰는 분이었는데, 서울詩 지하철 공모전 당선 소식을 들고 오셨다. 12월부터 실제 지하철 객실에 그녀의 시가 게시된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한 사람의 창작이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시민의 마음을 다독이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서울詩 지하철 공모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도시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일상 속 잠시 멈춤의 순간을 선물하려는 취지다. 전문 작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로 창작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생활 문화 확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지하철이라는 반복되는 일상 공간 곳곳에 시를 띄움으로써, 누구든 잠깐이라도 마음을 쉬게 하려는 일종의 '문학의 쉼표'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분은 가정도, 매일의 작은 바쁨도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좋아해 온 시의 세계 안에서 조용히 발을 딛고 있었다. 온전한 자기 목소리로 쓴 문장이 결국 도시 한가운데 걸리게 된다는 사실. 그 모습이 너무나 멋졌다. 내 곁에 진정한 다크호스의 길을 걷고 계시는 분이 있어 행복했다.


다크호스의 길은 거창하지 않다. 세상을 뒤흔드는 업적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에게 맞는 길을 묵묵히 걷는 삶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빛이 조용히 그 사람을 비추는 것이다. 오늘 모지스 할머니가 그러했고, 지하철 시를 쓰신 지인분이 그러했고, 어쩌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 길 위에 있는지 모른다.


앞으로 내 삶도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나를 움직이는 힘을 따라가다 보면 나다운 길에 도착하리라 믿는다. 누구의 기준도 아닌, 내 안에서 천천히 자라는 목소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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