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우치 아리오의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원석과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하라' 는 문제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좌절했던 적이 있었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은 다른 광물과 섞인 상태로 차돌과 비슷하다. 때문에 눈에 띄게 아름답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은 쉽게 구별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익숙한 학생들은 다이아몬드 사진에 비해 원석 사진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어려워했다. 물론 '원석'은 '재능은 있지만 아직 미숙한 인재'를 지칭할 때 쓰이는 용어지만 시험에서 요구하는 것은 각각의 아름다움이 논점이었다.
가와우치 아리오의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2023년 10월 발간)에서 작가는 작품을 보는 것에 대해서 장애와 비장애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작가는 예술 감상이 시각외의 모든 감각을 이용해 가능함을 전한다. 시각 장애인 친구 사라토리씨와 미술관 관람 경험을 통해 시각 장애인도 예술 관람이 가능함을 전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이 함께 작품을 보는 행위의 목적은 작품의 이미지를 서로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을 실마리로 삼으면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이해하는 것, 모르는 것, 그 전부를 한데 아우르는 '대화'라는 여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함께 예술 관람을 하러 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난 작가의 말에 지극히 공감했다. 작품 감상은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제각각의 방법으로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고정된 아름다움이 아닌 열린 아름다움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논술 문제를 푸는 학생들도 여러 문제를 대화하고 토론하는 학습이 주된 교육환경이었다면 좀 더 쉽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해보았다.
전맹인 시라토리씨는 개념으로 색을 이해한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색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각각의 색에는 시각적인 것이 아닌, 그만의 특정한 이미지로 이해한다고 한다. '색의 개념화', 난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맹학교로 전학 갔다.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맹학교에서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어. 아마 선생님들도 장애인은 약자에 비해 비장애인은 강자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걸 메꿔서 가능한 비장애인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것 같아.
불공평하고 장벽투성이인 사회, 시라토리씨의 말에 부조리한 현실이 느껴진다. '너는 안 돼'라는 말이 사람의 용기를 무참히 꺾는다는 걸 시라토리씨는 학교 다니는 내내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토리씨는 미술 관람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술을 마시고 길을 헤맨다고 한다. 심지어 사진도 찍고 전시회도 한다고 하니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다.
그건 아무래도 '보기'의 과학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시각이라 하면 '눈'과 시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뇌와 관련된 문제라고 한다.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점점 '보기'가 얼마나 복잡한 행위인지 밝혀졌다. 사물을 보는 행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경험, 즉 뇌 내의 정보다. 우리는 풍경이든, 예술이든, 사람의 얼굴이든, 전부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기초해 해석하고 이해한다.
나는 작품 감상을 할 때 나름의 안목과 배경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그림을 감상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책에서는 작가와 동료들은 피카소의 <투우>를 시라토리씨에게 설명하기 위해 정말 다양하게 설명한다.
예술은 누군가와 함께 감상하며 이야기 나눌 때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나도 이 그림을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할지 버벅거릴 거 같다. 현대 미술의 거장인 피카소 작품은 다각도로 보이는 그림들이 합쳐져 감상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무지한 상태란 좋은 것이었다. 선입견 없이 무심하게 그저 작품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 마치 가이드북 없이 다니는 홀로 여행처럼. 작품을 보는 방식은 단 하나가 아니라 보는 사람 수만큼 존재하며, 또 시대에 따라 그 해석과 가치도 달라진다. 실은 이것이야말로 미술을 보는 재미 중 하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냥 보이는 대로 선입견 없이 느끼는 것이 작품 감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부분을 읽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다시 느낄 것 같았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마다 각각의 해석이 있는 것이다. 정답이 있는 작품 해석은 없다. 우리는 전문가일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는 눈으로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손끝으로도 수많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유럽의 미술관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같은 작품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촉각 전시를 병행한다고 한다. 손끝을 활용해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작품의 질감이라든가, 온도까지도 감상의 포인트가 된다는 점에서 촉각 감상은 '눈으로 보는 감상법'과는 또 다른 작품 감상이 된다고 한다.
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상상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창조적 경험이 있다.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 공간의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저자와 동행들의 설명을 통해 시라토리씨만의 작품 감상이 된다고 한다. 책은 '소리로 보는 예술' 방식을 새롭게 제시한다. 시각 중심의 작품 감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공감각적 작품 감상의 지평을 넓혀준다. 때문에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열린 예술 감상의 세계로 모두를 초대한다.
누구라도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시각 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예술을 경험하고 감상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닌, 만지고, 듣고, 서로의 작품 감상을 나누는 과정에서 더욱 깊은 예술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은 특정한 분야가 아니라 '누구라도 함께 감상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책을 읽고 우리는 '눈'에 의존해 살고 있지만, 예술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몸의 다양한 기관의 감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39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