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쌓이는 것, 나를 알아보는 것
"늦었다고 생각한 그때가 진짜 시작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젊을 때는 '늦었다'는 말이 곧 '끝났다'는 말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좀 다르다. 오히려 늦은 시작이란,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내린 단단한 결심이란 걸 안다.
요즘 난 '기록'의 힘을 믿는다. 매일 글을 쓰고, 그날의 감정과 읽은 책의 느낌을 문장으로 옮겨 적는 일은 그저 흘러가는 하루를 다시 내 품에 데려오는 일 같다. 글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더 '나를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마치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던 내 조각들이 조용히 빛을 머금으며 떠오르는 순간과도 같다.
며칠 전 남편의 병문안을 다녀오던 길, 버스 창밖으로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비쳤다. 창가에 앉은 나는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태엽을 감으며 살아가는 태엽 감는 새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기묘한 상징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삶이란 매일 같은 듯 다른 반복이고, 그 속에서 스스로 태엽을 감는 일이 곧 '살아 있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서 글을 쓴다. 하루키가 야구공을 던지며 '나는 이걸 하고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했던 것처럼 나에게는 이 조용한 기록의 시간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기 같은 글이다.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 질문의 답은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꾸준히 쌓인 기록 속에서, 내가 반복적으로 써온 문장과 사진, 감정의 결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나 자신이 또렷하게 보인다.
예전엔 완벽하고 세련된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삐뚤빼뚤한 손글씨, 오래된 컵의 흠집들, 낡은 토분의 이끼처럼 불완전한 것들 속에서 묘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들은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고, 그 안에 '나의 시간'이 녹아 있다.
삶의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마음의 온도도 수시로 바뀐다. 하지만 그 모든 흔들림 속에서도 끝까지 붙잡고 싶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나답게 존재하는 태도'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운다. 남과 비교하며 초조해하기보다 나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법을. 더디더라도, 남보다 뒤처져 보이더라도 내 속도의 걸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나다운 삶'이라는 것을.
글을 쓰고, 베란다 화초에 물을 주고, 책을 읽는 일상들이 결국은 나의 나이테가 된다.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을 계속하는 것은 쌓이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루는 가장 순수한 형태다."
그 말처럼, 나 역시 나만의 태엽을 감으며 오늘을 쌓아가고 있다. 그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살아보는 것이다. 오늘의 글 한 줄, 오늘의 생각 하나, 그것이 내일의 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삶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매일의 반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해 가는 예술이다.
하루키 문장처럼,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만 하자." 그 단순한 태도야말로,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가장 아름다운 삶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태엽을 감으며 살아가는 태엽 감는 새다."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