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현재, 한류의 인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정서이다. 2024년 한류 백서에 따르면 해외의 한류 경험자 10명 중 7명이 자신들이 경험한 한국 문화 콘텐츠가 '전반적으로 마음에 든다'고 답했을 정도로,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한국적인 것' 중에서도 외국 소비자 눈에 신선한 것, 그리고 흥미로우며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뭉쳐 한국, 한국인, 한류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 낸다.
한국인의 정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흔히 정(情), 한(恨), 흥(興)을 드는데, 나는 거기에 신명(神明)과 화(火)를 더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하곤 한다.
'한(恨)'과 '흥(興)'은 표면적으로는 슬픔(하향적 기질)과 기쁨(상향적 기질)이라는 정반대의 감정을 나타내지만,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 구조 속에서 음양(陰陽)처럼 상호 보완하며 순환하는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또한 이 둘은 단순한 대비를 넘어, 한국인이 오랜 역사 속에서 겪은 고난과 억압을 극복하고 정서적 해방과 재도약을 이루는 역동적인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한(恨)은 슬픔의 정서로서, 응어리와 축적된 억눌림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한의 본질은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음에도 복수나 해결할 수 없는 무력한 약자의 위치에서 오는 깊고 오래된 슬픔, 아쉬움, 분노, 응어리진 감정의 총체이다. 이는 개인적인 정서이나 역사, 사회 환경으로 인해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정서가 되어 '한국인의 집단적 트라우마'라고도 할 수 있고,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건, 경험으로부터 축적된 민족 고유의 정서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가해자에 대한 복수의 정서가 약하다는 점이다. 한은 가해자를 잊지 않겠다, 복수하겠다는 의식보다 오히려 '내부귀인(내 탓)'을 통해 스스로 삭이고 견디는 특성이 있다. 이것이 심화되면 '화병(火病)'이 되고, 이는 뒤에서 설명할 '한국인의 화'와 연결된다.
흥(興)은 기쁨의 정서이면서 동시에 '한'을 풀어내는 해원(解寃)의 몸짓이다. '흥'은 마음이 들뜨고, 신이 나며, 생명력과 열정이 넘치는 상태를 의미한다. 깊이 맺힌 응어리(울화)를 몸 밖으로 표출하고 해소하려는 적극적인 에너지라는 점에서 한국인의 흥은 '즐거움', '흥분됨'과 다르다.
한이 나에게 닥친 부당한 일을 체념하거나 내 탓으로 돌리며 삭이는 것이라면 흥은 노래와 춤(음주가무), 신명나는 놀이를 통해 맺힌 것을 풀어내고 정화하는 행위이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무속인의 굿이나 전통무용인 살풀이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한스러운, 슬픈 춤으로 시작하지만, 진행될수록 역동적이고 '신명(神明)나는', 힘찬 몸짓으로 바뀌며 마무리되는데, 이는 한이 흥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흥'이 마음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설렘과 즐거움이라면, 신명은 '한'이 완전히 풀려 극복된 결과로 찾아오는 극도로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감정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이 내 몸에 깃든 것 같은 일체감과 몰입감을 의미하며, 이 때문에 신명은 무속인의 감정, 무속인의 행위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신명'은 사실 일반인 모두 느끼는 감정이다. '신난다', '신바람'이라는 표현이 바로 '신명난다'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신바람이란 어떤 일에 흥미나 열성이 생겨 매우 즐겁고 신나게 '몰입'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인데, 이는 신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신명은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응어리(한)를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 사람들은 본인의 응어리는 물론 다른 사람의 응어리도, 심지어 죽은 사람의 응어리까지 풀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은 '화(火)가' 많다. 한국인이 다른 민족보다 '분노'라는 감정이 많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화를 표현하는 방식에 한국인만의 독특함이 있다고 생각하기 떄문에, 한국인이 화를 더 잘, 자주, 다양하게 표현할 줄 알기 때문에 '한국인은 화가 많다'고 표현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집단주의 문화와 관계 중심적 가치관은 개인이 자신의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대신, 억제하고 내재화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화를 내면 내가 속한 집단의 조화를 해치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화를 표면적으로만 억제하게 되면 '화병(火病)'이 된다.
화병은 한국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억누르고 삭이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이 일상생활에서 분노를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하며, 분노를 쉽게 낸다기보다는 오히려 내재화하는 문화적 배경을 나타낸다.
문제는 이렇게 억눌린 분노가 단순히 사라지지 않고, 사회 구조적 문제(불공정, 저신뢰, 기득권 혐오 등)와 결합하여 한, 울분이라는 만성적인 형태로 개인의 내면 및 집단의 내면에 축적되고, 폭발할 때는 한꺼번에 폭발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겉으로는 분노를 참는 경향이 강하지만, 축적된 울분이 임계점을 넘어설 때 극단적이고 폭발적인 형태로 표현한다. 이는 위계적, 비평등적인 사회문화에서 '갑질', '폭언'과 같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화풀이', '폭력'으로 이어지기 쉽다. 혹은 잡단적으로 억눌린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났을 때 이 화는 그 대상--유명인, 정치인, 정부, 특정 범죄자 등--을 상대로 폭발적으로 집중되기도 한다.
즉, 한국인의 분노가 '다른 민족보다 자주, 더 쉽게 표출된다'기보다, '오랫동안 삭이다가 통제력을 잃고 폭발'하는 양상을 띠며, 이러한 폭발이 비평등적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폭발하는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한국 사회 전체가 분노에 차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의 정서를 설명할 때 정, 한, 흥, 화 외에도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정서'와 '명분을 중시하는 정서'를 덧붙여 설명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오히려 '한', '화', '흥'에서 비롯된 한국인의, 한국어의 '욕(辱), 욕설'을 또다른 한국적인 정서로 소개하고자 한다.
욕(辱)은 '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이다. 욕설은 남을 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럽게 하는 말이다. (이 글에서 욕은 욕설과 같은 의미로 쓴다.)
보통의 말로는 적나라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감정을 더 적절하게 표현하려는 욕구, 남을 자극적으로 욕되게 할 때 쓰지만, 욕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불평과 불만, 억눌린 감정과 욕구를 분출/배설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즉, 욕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를 정화시켜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카타르시스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오랫동안 가난과 핍박 속에 살며 쌓인 삶의 고통과 아픔을 '흥'으로 풀어냈듯, 그들이 가진 한(스스로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과 원(억울함)을 풀어내는 방법 중 하나로 욕을 했다.
억울함, 분노, 격한 감정은 화살이 되어 상대방을 향한다. 욕은 약자의 무기이자, 상대방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 기제이다. 부당하고 부정하며 왜곡된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이 치밀어 오를 때 하는 욕설은 잘못된 사회를 질책하고 질서를 바로 잡아준다는 점에서 정의로움을 소극적으로나마 표현하는 역공의 언어(이자 정신승리의 방편)로 기능한다.
또한 욕은 집단 단위에서도 일어난다. 오랫동안 유사한 문화권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은 '다름'을 잘 용납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터부시하고, 내가 틀렸다는 지적에 화를 내는 일도 잦다. 욕설은 다른 집단에 대한 조소와 비아냥거림을 통해 자기 집단의 결속력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특히 욕은 상대방에게 직설적이고 효과적이며, 공격성과 파괴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데, 이는 나/우리와 상대의 차이점을 부각하여 상대를 배격하고 배척하는 차별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화를 내고 싶은데, 남들의 다름이나 틀림을 바로잡아 '우리'라는 집단의 조화를 보존하고 싶은데 한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끼리 주먹다짐 같은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선호되지 않는다. 같은 민족끼리 공유하는 상식이 있다고 생각하다보니 법정 다툼은 더더더욱 선호되지 않는다. (이는 관(官)에 대한 한국인의 뿌리깊은 불신에 기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화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욕설이 발달하고,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욕설의 표현이 발달했다. 또한 한국어가 가진 특수한 기능(?)은 '자신의 화를 전달하되 분명하거나 모호하거나, 혹은 자극적이거나 해학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수많은 욕설의 표현을 가능케 한다.
이처럼 한, 흥, 신명, 화, 그리고 욕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한국인을 설명한다. 삶과 역사 속에서 겪은 고난과 고통은 전세계 거의 모든 민족이 공통적으로 겪은 것이겠지만, 이를 흥, 신명, 욕으로 '풀어낸' 것은 한국인만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창의적인 에너지와 표현으로 전환시킨 것이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 음악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로 뭉쳐져서 수출되는 것이 한류이다. 문화 콘텐츠는 한국인의 가치관과 흥이 합쳐진 것이며, 화장품, 음식, 옷, 그리고 앞으로 인기를 끌 수많은 제품들 역시 한국인의 가치관, 흥, 삶의 방식(라이프스타일)을 신선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유익하게 나타내는 것이 인기를 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