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다양한, 효과적인 신파를 기대하며
오징어게임, 신과함께 등 우리나라 흥행작에 자주 등장하는 '신파'는 고질적으로 반복된다며 비판받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파적 서사를 담은 콘텐츠가 계속 창작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파’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파도' -- 근현대 동양에서 서양식 연극을 기반으로 만들던 연극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은 '감정이 과잉되거나 논리와 개연성을 무시한 채 관객에게 슬픈 감정을 강요하는 것'으로 통용되며, 특히 '억지로 눈물을 짜낸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판과 별개로, 신파는 분명한 장점을 갖고 있다 -- 제작자에게도, 관객에게도. 관객은 이야기에 몰입했다고 생각하면 그 이야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야기의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느껴도 그 이야기를 보며 본인이 박장대소하거나 눈물을 흘리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흐름과 별개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마련이다. 이는 전형적인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에 해당한다. 흥분전이이론(excitation transfer theory)으로도 설명되는 이 심리학적 현상은 인간의 뇌가 현실과 착각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이성과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하고,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면 상대방은 이를 놀이기구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호감 때문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 같은 이론이 적용되는 분야가 신파이다. 관객은 비록 이야기의 논리와 서사가 부족해도 스스로 감정을 표출하며 눈물을 흘리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내가 이만큼 감정이 동요하고 눈물을 흘릴 정도면 깊이 몰입한 이야기, 즉 좋은 이야기'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파와 눈물은 관객으로부터 이야기에 대한 호감을--착각이라 하더라도--끌어낼 수 있는 효율적인 전략이 된다. (그리고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처럼 ‘손쉽게’ 관객의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신파라고 해서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앞뒤 논리 없이 관객의 눈물을 짜내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신파의 나쁜 활용 예가 되겠지만, 논리적으로 상황을 빌드업하며 관객을 빠져들게 만들어 눈물을 자아낸다면 좋은 신파라고 할 수 있다.
신파를 위한 효과적인 소재는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는 것’과 이로부터 기인하는 안타까움이다. 여기에는 정의, 목표와 꿈, 죽음과 헤어짐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국의 신파는 가족, 특히 ‘어머니’를 즐겨 사용한다. 한국에서의 ‘가족’은 서구문화권에서의 그것보다 더 애틋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인에게 가족은 운명 공동체이다. 따라서 콘텐츠에서 가족을 다루는 방식 역시 서로를 책임져주어야 한다는 의식을 부각시킨다. 따라서 서로를 책임져주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죄책감, 안타까움, 슬픔을 활용할 경우 손쉬운 눈물이 완성된다.
게다가, 한국인은 (아마도 단일민족 서사에 길들어졌기 때문이겠지만) 유독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강한 편이다. 특히 남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공감력, ‘내가 도움으로써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인식은 아마도 세계 최강일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국란을 당했을 때 왕과 정부는 도망쳐도 국민이 들고 일어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소재가 어떤 것이든 나라별로 이에 공감하는 정도는 다르다. '가족', '어머니'라는 범인류적 소재라 해도 이를 다루는 방식, 바라보는 시각, 상황에 대한 기대 등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에 상이한 서사가 나오게 마련이다. 미국 영화에도 신파가 있다.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갖고 있는만큼 신파를 이끌어내는 소재도 다채로운 편이다. 그러나 문화적 다양성은 강점임과 동시애 모든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공통의 소재를 찾는 데 제약 요인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미국의 신파는 '어려운 사람이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실화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콘텐츠에 신파가 많았던 것은 국가와 사회 전반의 압축 성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서구권 국가들이 수백 년간 겪었을 경제적 성장과 가치관의 변화를 한국은 수십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경험했다. 경제적 성장은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지만 콘텐츠 제작을 위한 자산과 역량은 이를 만족시킬 수 없었고 많은 수의 콘텐츠를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파는 짧은 기간에 찍어내는 콘텐츠로부터 관객들의 개인적 공감과 대중의 호평을 이끌어 내는데 더할나위 없는 소재이자 방법론이었다. (신파는 제작비가 싸다. 인물의 성격과 배경을 설명하고 이에 대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객의 감정만 자극하면 되기 때문이다.)
신파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모든 인간의 쾌감이기도 하다. 한국의 신파가 즐겨 그려내는 가족, 연인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은 해외 관객들에게는 자신들이 잃어버린 가치관, 그리워하는 가치관이라고 비춰져 인기를 끌 수도 있다. 가족, 어머니, 죽음 등 이른바 범용적인 소재라 해도 이를 한국인의 시각, 한국인만의 방법으로 극복하는 것을 보여줄 때 좋은 서사를 가진 신파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신파가 더 발전하려면 해외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다양한 소재를 더 많이 발굴해내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 신파는 ‘억지 눈물’을 짜내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와 잠재력을 가진 이야기 방법론이다. 효과적인 신파의 소재는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는 것’과 이로부터 기인하는 안타까움이므로 이를 더 다양한 소재로부터 발굴하고, 여기에 한국 콘텐츠의 강점인 세밀한 감정 묘사를 곁들임으로써 우리나라 창작자들은 타 문화권의 창작자보다 호평과 공감을 받는 신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용화, 박찬욱, 봉준호, 이병헌 감독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수많은 걸출한 이야기꾼들은 1980-90년대의 압축된 사회 발전과 가치관의 급변을 직접 경험한 세대로서 한국적인 신파부터 서구적 신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다. 혹자는 이들 세대가 겪은 사회/문화/가치관의 변화 과정이 너무 빨라 고찰의 깊이는 얕을 수도 있다며 우려한다 -- 다양한 이슈를 자유롭게 다루는 능력은 탁월해도 각각의 이슈에 대해 전세계 소비자의 공감을 얻어낼만한 통찰의 깊이는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 소비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신파와 정서적 소재에 주목하고, 발굴하고,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본명한 장점을 갖고 있다.
새로운, 다양한, 효과적인 신파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