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창업 온도 차이

글로벌 리포트(GEM)로 살펴본 한일 창업 DNA

by 심재후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늘 비슷한 인상, 혹은 어떤 안정감을 느낍니다. 어느 도시든 지하철은 정시에 도착하고 겨울에 큰눈이 오더라도 운전에 불편이 없도록 금세 치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직업병일까요?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렇게 잘 돌아가는 사회에서, 왜 '창업'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게 들릴까?" 오늘은 여행자의 감상이 아닌, 연구자의 시선으로 한국과 일본의 창업 생태계를 비교해 보려 합니다.

Korea_Japan.png


비교를 위한 공통의 자, GEM

국가 간의 창업 활동을 비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창업"을 정의하는 기준부터, 법과 문화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이때 전 세계 연구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공통의 자(Ruler)가 있습니다. 바로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GEM, 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입니다. 매년 동일한 설문으로 전 세계 성인의 창업 활동과 인식을 조사하기 때문에, 국가 간의 '온도 차'를 확인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입니다.


활동량의 차이: 뛰는 한국, 걷는 일본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초기 단계 창업활동 비율(TEA)'입니다. 쉽게 말해 "지금 창업을 준비 중이거나, 막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묻는 지표죠. GEM 2021/2022 보고서에 따르면 결과는 명확합니다.

한국: 전체 성인 인구 대비 창업 활동 비율이 꽤 높습니다(중상위권).

일본: 선진국 그룹 내에서도 눈에 띄게 낮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이 일본보다 창업이라는 행위에 뛰어드는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 데이터로 증명된 셈입니다.


환경의 차이: 인프라는 좋지만, 문화는?

그렇다면 창업하기 좋은 환경은 어떨까요? 전문가들이 평가한 '국가 창업 환경 지수(NECI)'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한국은 시장의 역동성이나 물적 인프라 측면에서 상위권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 일본은 인프라는 훌륭하지만, 창업 교육이나 문화적 지원 측면에서 점수가 낮아 중하위권에 머무릅니다. 재미있는 건 두 나라 모두 '학교에서의 창업 교육''사회·문화적 규범'이 약점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일본이 훨씬 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도대체 무엇이 바다 건너 두 이웃 나라를 이렇게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저는 크게 세 가지 이유에 주목합니다.

첫째, 역사적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입니다. 두 나라 모두 대기업 중심의 성장을 했지만, 결정적 분기점이 달랐습니다.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대기업 중심 구조의 한계를 절감했고, 생존을 위해 벤처와 스타트업을 경제의 새로운 엔진으로 선택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지만, 여전히 종신고용에 가까운 대기업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했습니다. 한국에서 창업이 '생존을 위한 돌파구'였다면, 일본에서 창업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위험한 선택'이었던 셈이죠.

둘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Fear of Failure)입니다. GEM 데이터에서 일본은 전통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높은 국가로 분류됩니다. 한국도 만만치 않지만, 최근 10년간 정부와 미디어의 노력으로 "창업은 멋진 커리어 옵션"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안정된 길을 두고 왜?"라는 사회적 시선이 강합니다.

셋째, 제도적 환경의 차이입니다. 한국은 정책금융과 벤처캐피털(VC) 시장이 매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일본 정부도 최근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인재가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동하는 유연성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맺으며: 옳고 그름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

물론 이 데이터가 "한국이 일본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창업 활동이 많다는 건 그만큼 역동적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생존이 절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일본 여행 중에 느꼈던 그 견고한 안정감과 질서, 그리고 한국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그 치열한 속도감. 이 두 가지 풍경은 각 나라의 창업 생태계 수치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창업은 개인의 용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경험, 사회적 안전망, 그리고 실패를 바라보는 문화적 시선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일본의 데이터를 보며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이 사람들을 도전하게 만들고, 무엇이 주저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일 것입니다.

(* 한국과 일본, 혹은 해외의 창업 문화 차이에 대해 경험하신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참고문헌

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GEM) Global Reports (2021/2022, 2024/2025)
https://gemconsortium.org/reports/latest-global-report

OECD, Venture Capital Policy Reviews: Korea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venture-capital-policies-in-korea_248000716362.html

Government of Japan (2022), Startup Development Five-Year Plan
https://www.cas.go.jp/jp/seisaku/atarashii_sihonsyugi/pdf/sdfyplan2022en.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