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 5인 가족이 한 방에 묵을 수 있을까?
가족 모두가 함께 일본 여행을 떠난 것은 무려 17년 만이었습니다. 오랜만의 가족 여행이 주는 설렘도 컸지만, 사실 출발 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도쿄나 삿포로 같은 대도시 한복판에서, 성인 5명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호텔을 과연 구할 수 있을까?"
가족 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여행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늘 '숙소'입니다. 특히 도심의 호텔들은 철저하게 대부분 2인실, 많아야 3인실 위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결국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방을 두 개 잡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숙소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그런데 이번 여행은 조금 달랐습니다. 도쿄와 삿포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우리 5인 가족이 함께 묵을 수 있는 호텔을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예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미마루(MIMARU)'나 '라젠트 스테이(La’gent Stay)' 같은 곳들은 단순히 좁은 방에 간이침대 하나를 구겨 넣은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4~5개의 침대와 온 가족이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곳은 애초에 설계 단계부터 "가족은 함께 머물러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만들어진 공간이었습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의 호텔 산업에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시간을 돌려보면, 이러한 '다인실 특화 호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6년에서 2019년 사이입니다. 미마루가 도쿄에 1호점을 낸 것이 2017년이었으니,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변화의 조짐은 시작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변화를 이끈 첫 번째 동력은 여행객의 변화였습니다. 깃발을 든 단체 관광객이 줄어드는 대신, 가족이나 친구끼리 삼삼오오 뭉쳐 다니는 소그룹 자유여행(FIT=Free Independent Traveler)이 급증했습니다. 이들은 잠만 자는 비즈니스호텔이 아니라, 여행의 경험을 공유할 '우리만의 공간'을 원했습니다.
두 번째이자 결정적인 자극제는 바로 '에어비앤비(Airbnb)'의 등장이었습니다. 가족 여행객들이 호텔을 떠나 에어비앤비로 몰려간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호텔에는 없는 '거실'과 '부엌'이 있었고, 무엇보다 온 가족이 한집에 머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호텔 업계는 이 지점에서 매우 영리한 선택을 했습니다. 에어비앤비와 소모적인 경쟁을 하는 대신, 그들의 장점을 흡수해 버린 것입니다. "에어비앤비의 공간감(다인실, 테이블)을 제공하되, 호텔의 안전함과 서비스는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일본 숙박 산업이 내놓은 혁신의 해답이었습니다. 기존의 2인실 중심 비즈니스호텔 모델로는 더 이상 새로운 여행 수요를 담아낼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공간의 문법을 바꾼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가족 여행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의 호텔들은 여전히 2인실 중심의 문법에 갇혀 있습니다. 4인 가족이 도심 호캉스를 즐기려면 스위트룸을 잡거나 펜션으로 떠나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의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그들은 가족 여행을 어쩌다 발생하는 '특수 수요'로 보지 않고, 산업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핵심 시장'으로 재정의했습니다. 그리고 '미마루'처럼 고객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명확한 브랜드를 만들어 냈습니다.
17년 만의 일본 가족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화려한 관광지나 맛집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복잡한 도심에서도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잘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묵었던 그 호텔들은 단순히 편안한 숙소를 넘어, 변화하는 여행 방식에 대해 일본 숙박 산업이 내놓은 명쾌한 답변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족 여행의 난이도를 낮춰주는 그 작은 배려가, 여행 전체의 질을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 실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도시에서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한 방에서 도란도란 여행의 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 숙박 경험이나 가족 여행에 대한 여러분의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