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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일사는 코리안맘 Aug 20. 2024

왜 쌍수 안했어? / 에너지가 좋아

나는 외국에서 먹히는 타입인지 알아보는 방법. 

나는 친척, 지인, 친구들에게 심심찮게 "왜 쌍수 안했어?" 라는 말을 들어왔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적잖이 모욕감을 느껴서 주변인들에게 하소연을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조차도 반응이 '그러게, 정말 왜 안했어?'싶은 느낌이라

나중엔 혼자 한 귀로 듣고 흘리거나 적당히 되받아치는 방법을 터득했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쌍수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적은 없지만, 쌍수를 하기로 결심한 적도 없어서

그냥 살다보니 어느새 '신념 있는' 무쌍인이 되어버린거다.


나는 타고나길 자아도취형 인간이라, 내 모습에 만족하며 살다가도

내 눈에는 더 이상 외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어 보이는 연예인들이 마이크로 단위로 평가받고

각종 연애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진들은 내 기준에선 아름다움의 임계점을 모두 도달했는데도 불구하고

누가 더 예쁘네 마네, 어디가 어쩌네 저쩌네 하는 평가를 당하는 현실을 보며,

수많은 미의 기준 중 가장 기본으로 뽑히는 '크고 쌍커풀진 또렷한 눈'을 가지지 못한 나는

얼마나 미의 기준에서 동떨어진 사람인가 싶어 씁쓸함을 느낄 때도 종종 있었다.


안 그래도 좁은 흉곽이니, 직각 어깨니, 중안부가 짧네 마네 등등 미의 기준이 더 세분화되고 획일화되면서

피로도가 극에 다다를 즈음, 독일로 떠나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우리와 결이 다를 뿐 미의 기준이 존재한다.

구릿빛 피부, 탄탄한 엉덩이, 가지런하고 밝은 치아, 또렷한 턱선 등.


하지만 이러한 요소만으로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정확히는 외모 평가 자체를 그렇게 세부적으로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외적매력을 따지기는 하지만

누구 두상이 어떻고, 미간이 어떻고, 광대가 어떻고 하면서 외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잘게 쪼개서 평가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자신감 있고 매너있는 태도, 긍정적인 말투,

자연스럽고 따뜻한 미소, 올바른 자세 등

전반적으로 그 사람이 풍기는 느낌과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보고 매력을 느낀다.


그도 그럴것이, 워낙 다양한 인종이 섞여서 저마다 추구하는 이미지도, 지닌 매력도 다양해서

획일화된 외적인 미의 기준을 정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나도 한국에 살 때는 심한 곱슬머리, 두께감이 느껴지는 몸매, 구릿빛 피부 등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지만

이 곳에서 위 종합세트의 끝판왕인 한 라틴계열 여성을 보고나서는

아!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미인이 존재하구나 하고 깨달았다.


외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니 쌍커풀 하나에 마음상할 일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데 집중할 수 있게되었다.

나의 이목구비나 비율이 아닌 건강한 몸과 마음이 진짜 중요한 가치로 다가왔고,

내가 아닌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쓰기보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자유롭게 추구하며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함께 돌볼 수 있는 이 사회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하루는 남편과 아이와 카페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안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굳이 밖으로 나오시더니 꼭 하고싶은 말이 있으시다며 입을 여셨다.

"정말 보기 좋아요. 세 사람이 이렇게 앉아있는 모습이 한 편의 그림같아요."

우리를 세세하게 평가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좋게 봐주시니 찝찝한 마음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는 대기를 걸어놓은 어린이집에 하루빨리 아이를 입소시키고 싶어서

어린이집에 직접 찾아갔다.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이렇게 찾아가는 성의를 보여야 기회를 준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우리를 보더니 "죄송하지만 저에겐 권한이 없어요. 하지만 OOO씨를 찾아가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거에요. 그 분에게 당신의 좋은 에너지를 전달해주세요"

좋은 에너지라니. 그 어떤 칭찬보다 여운이 남았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인 단점을 낳았으니,

피부관리샵도, 간단한 피부과 시술도 하기 힘든 이 곳에서 독일인 마인드로 몇 년 살다간 

한국에 돌아갔을 때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의 몰매는 물론이요

지독히도 고생 많이 한 현장 노동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실제로 여기서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시던 분이 한국 피부과에서 농부로 오해받은 이야기도 유명하다.)


패션도 처참한 지경이다.

유럽 명품브랜드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한국처럼 합리적인 가격에 스타일리쉬한 옷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사이즈 맞는건 더 찾기 힘들다.

결국 선택지는 자라와 코스 뿐.


한국인의 외모 수준과 관리 능력은 전 세계에서 알아줄정도로 대단해서

한국에서 평균 정도의 관리만 하고 살아도,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외모로 꿇릴 일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반대로 해외 살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면 묘하게 촌스러워진 본인의 모습에 

일시적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내문화 발달이 덜 된 이 곳에서 매일 뙤약볕을 쐬니 기미가 부쩍 많아진 기분.

하지만 관리받을 곳이 없어서 한국에서 비싼 배송비를 지불하고 홈케어 뷰티디바이스를 시켰다.


인스타에서 본 딱 내 스타일의 예쁜 옷. 이번 여름에는 당장 그 옷을 사서 입고다니고 싶다.

한국 쇼핑몰에는 그 스타일이 쫙 깔렸는데 독일에서는 그 어느 사이트를 뒤져도 나오질 않는다.

때로는 한국에서 편리하게 관리받고, 손쉽게 쇼핑하던 시절이 그립다.

여기서 이렇게 살다간 정신적 건강과 외적인 매력을 맞바꾸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스쳐지나간다.



무엇을 추구할것인가?

결국 결론은 이 하나로 종결된다.


아직도 모르겠다. 우선 다음주에 도착하는 홈케어 디바이스가 효과가 좋은지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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