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공기 이렇게 대할 거면 우리 줘!
여름마다 오픈하는 팝업카페가 있다. 건너편에는 햇빛을 받은 마인강이 반짝이며 흐르고 그 위로는 포도밭과 요새가 위치해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는 전경을 바라보며 커피나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도시의 핫한 젊은이들은 다 모인 듯한 분위기 속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일렉트로팝까지 들으며 '아, 이 젊음을 유럽 한가운데서 즐기고 있는 이 인생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에 절로 빠져든다. 자연과 젊음과 나의 인생이 삼위일체가 되는 순간이다.
거대하고 푸르른 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원목 놀이기구들이 드넓게 자리 잡은 동네 놀이터. 바로 옆 호수에서는 오리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 이런 자연 속에서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노는 아이를 바라보면, 누구나 이런 멋진 자연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아이에게 깨끗하고 순수한 유년시절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 뿌듯함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이런 행복감들은 늘, 예외 없이 채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나의 행복감을 깨뜨리는 불청객은 다름 아닌 담배냄새.
처음엔 유모차를 끌고 있는 나에게 담배연기를 직빵으로 날리는 사람들, 카페 야외좌석에 돌도 안 지난 아이랑 앉아있는데 바로 옆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며 '지금 인종차별하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갓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듯한 본인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본인이 내뱉은 연기가 바로 옆 배우자와 아이들 콧속에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빵을 날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는 나의 착각임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처음엔 그들의 흡연권이 존중받아야 하는 만큼, 나의 '맑은 공기 흡입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여기서 통할 수 없는 논리이다. 앞사람의 담배냄새가 싫으면 내가 앞질러 가면 되고, 카페테라스의 담배냄새가 싫으면 실내좌석에 앉으면 된다는 게 이 사람들의 생각.
이는 비단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 다른 나라를 여행해도 상황은 다 비슷하다. 이젠 아름다운 유럽 도시 사진이나 로컬 감성 레스토랑, 와인바, 카페테라스 사진을 보면 '낭만적이다' 싶은 생각보다는 '와 담배냄새가 사진을 뚫고 나오네' 싶은 생각부터 들 지경.
나는 집안환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한국음식을 하고 나면 집안 곳곳에 베이는 냄새가 신경 쓰여서 더욱 환기에 진심이 되었다. 특히 독일 창문들을 하나같이 환기를 하기 쉽도록 문을 살짝만 젖혀서 고정할 수 있어서 때로는 하루종일 창문을 연 채 생활하기도 한다.
어느 토요일 아침, 아들과 함께 온 가족이 침대에서 늦게까지 꿀잠을 자는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코를 찌르는듯한 악취가 창문사이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마냄새였다. 정신이 번쩍 들어 우리는 강제로 안방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꽤나 자주 우리 집 창문으로 이웃집 아주머니가 피는 대마냄새가 들어오곤 했지만, 평화로운 주말 아침에 기습한 냄새는 순간적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켰다. 홧김에 "Smell!"을 외치며 창문을 쾅 닫았지만, 내 창문만 불쌍해진 느낌이었다. 참고로 우리 이웃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담배도 피운다.
전에 살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옆집 아저씨는 매일 담배를 피우셨고, 그 집 아들은 대마도 피워서 간혹 엘리베이터에까지 그 냄새가 나기도 했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들은 간접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을 아예 받지 않는 걸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종종 독일가정에 초대를 받으면, 흡연자들이 아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흡연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데 반해 그들로서는 '최상의 매너'를 행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든 한국,
하지만 적어도 담배냄새와 대마냄새로 이렇게까지 골머리를 썩어본 적이 없는 나에겐
차라리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덜 생기는 미세먼지를 받아들이고 사는 게 나을 지경이다.
왜 이렇게 좋은 공기를 두고 '굳이' 오염을 시키는 걸까?
왜 간접흡연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낮은 걸까?
자유권 보장 때문일까? 그래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자유는 없지 않은가?
답도 안 나오는 문제를 가지고 혼자 고뇌하며
오늘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이웃집의 대마냄새에 안테나를 켜고 환기 눈치게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