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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일사는 코리안맘 Aug 28. 2024

차라리 나에게 미세먼지를 다오

깨끗한 공기 이렇게 대할 거면 우리 줘!

높고 푸른 하늘, 녹음이 우거진 풍경


여름마다 오픈하는 팝업카페가 있다. 건너편에는 햇빛을 받은 마인강이 반짝이며 흐르고 그 위로는 포도밭과 요새가 위치해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는 전경을 바라보며 커피나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도시의 핫한 젊은이들은 다 모인 듯한 분위기 속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일렉트로팝까지 들으며 '아, 이 젊음을 유럽 한가운데서 즐기고 있는 이 인생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에 절로 빠져든다. 자연과 젊음과 나의 인생이 삼위일체가 되는 순간이다.


거대하고 푸르른 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원목 놀이기구들이 드넓게 자리 잡은 동네 놀이터. 바로 옆 호수에서는 오리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 이런 자연 속에서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노는 아이를 바라보면, 누구나 이런 멋진 자연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아이에게 깨끗하고 순수한 유년시절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 뿌듯함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이런 행복감들은 늘, 예외 없이 채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나의 행복감을 깨뜨리는 불청객은 다름 아닌 담배냄새.


처음엔 유모차를 끌고 있는 나에게 담배연기를 직빵으로 날리는 사람들, 카페 야외좌석에 돌도 안 지난 아이랑 앉아있는데 바로 옆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며  '지금 인종차별하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갓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듯한 본인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본인이 내뱉은 연기가 바로 옆 배우자와 아이들 콧속에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빵을 날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는 나의 착각임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처음엔 그들의 흡연권이 존중받아야 하는 만큼, 나의 '맑은 공기 흡입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여기서 통할 수 없는 논리이다. 앞사람의 담배냄새가 싫으면 내가 앞질러 가면 되고, 카페테라스의 담배냄새가 싫으면 실내좌석에 앉으면 된다는 게 이 사람들의 생각.


이는 비단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 다른 나라를 여행해도 상황은 다 비슷하다. 이젠 아름다운 유럽 도시 사진이나 로컬 감성 레스토랑, 와인바, 카페테라스 사진을 보면 '낭만적이다' 싶은 생각보다는 '와 담배냄새가 사진을 뚫고 나오네' 싶은 생각부터 들 지경.



독일 창문. 환기를 위해 창문이 비스듬하게 열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집안환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한국음식을 하고 나면 집안 곳곳에 베이는 냄새가 신경 쓰여서 더욱 환기에 진심이 되었다. 특히 독일 창문들을 하나같이 환기를 하기 쉽도록 문을 살짝만 젖혀서 고정할 수 있어서 때로는 하루종일 창문을 연 채 생활하기도 한다. 


어느 토요일 아침, 아들과 함께 온 가족이 침대에서 늦게까지 꿀잠을 자는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코를 찌르는듯한 악취가 창문사이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마냄새였다. 정신이 번쩍 들어 우리는 강제로 안방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꽤나 자주 우리 집 창문으로 이웃집 아주머니가 피는 대마냄새가 들어오곤 했지만, 평화로운 주말 아침에 기습한 냄새는 순간적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켰다. 홧김에 "Smell!"을 외치며 창문을 쾅 닫았지만, 내 창문만 불쌍해진 느낌이었다. 참고로 우리 이웃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담배도 피운다.


전에 살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옆집 아저씨는 매일 담배를 피우셨고, 그 집 아들은 대마도 피워서 간혹 엘리베이터에까지 그 냄새가 나기도 했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들은 간접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을 아예 받지 않는 걸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종종 독일가정에 초대를 받으면, 흡연자들이 아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흡연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데 반해 그들로서는 '최상의 매너'를 행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든 한국,

하지만 적어도 담배냄새와 대마냄새로 이렇게까지 골머리를 썩어본 적이 없는 나에겐

차라리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덜 생기는 미세먼지를 받아들이고 사는 게 나을 지경이다.


왜 이렇게 좋은 공기를 두고 '굳이' 오염을 시키는 걸까?

왜 간접흡연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낮은 걸까?

자유권 보장 때문일까? 그래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자유는 없지 않은가?


답도 안 나오는 문제를 가지고 혼자 고뇌하며

오늘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이웃집의 대마냄새에 안테나를 켜고 환기 눈치게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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