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가수 Milet 연기 데뷔와 '사랑의 이타성'에 대하여

한 사람을 온전히 안다는 건,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요.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더 잘 알게 된다고 믿지만, 어쩌면 어떤 사람은, 끝내 모른 채로 사랑할 수도 있는 건 아닐까요. 영화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그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아내였던 그녀가, 낯선 세계에서 자신을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은 새롭게 다시 써야 하는 문장이 됩니다.


감독은 미키 타카히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등 기억과 시간, 선택이라는 감정의 장치를 정교하게 다루는 인물입니다.


이번엔 '평행세계'라는 설정으로 돌아왔고, 그 중심에 가수 미레이를 세웠습니다.


미레이. 2019년 데뷔와 동시에 일본 음악 신을 사로잡은 싱어송라이터. 예측 불가능한 멜로디와 허스키한 음색, 일본어와 영어를 넘나드는 곡 구성으로 ‘milet’라는 고유한 장르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그녀가 이번 영화에서 연기한 인물은 '미나미'. 하나는 꿈을 접고 살아가는 아내, 다른 하나는 전국을 누비는 인기 뮤지션입니다. 그리고 두 명의 미나미 사이에, 리쿠가 있습니다.


리쿠는 어느 날, 낯선 세계에서 눈을 뜹니다. 그곳에서 그는 무명 편집자에 불과하며, 가수 미나미는 그를 모릅니다. 말 그대로, “성함은요?” 하고 물을 뿐.


처음엔 얼떨떨했던 이 전개는, 곧 사랑의 전환점을 드러냅니다. 이야기는 복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택입니다.


‘그녀가 꿈을 이루는 세계에서,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리쿠는 점점 이 세계를, 그녀의 세계를 받아들입니다. 사랑은 복구가 아니라, 결심이 되어갑니다.


그 중심에 있는 미레이의 연기는 경이롭다고 말할 만큼 안정적이고 섬세했습니다. 연기를 준비하며 그녀는 감정 즉흥 연습보다 먼저 ‘공부’를 택했습니다.


감정의 기원, 좋은 연기의 구조, 그 이론을 탐구한 뒤에야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감독조차 “이렇게 접근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더군요.


그녀는 실제 콘서트장에서 '극 중 인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2024년 3월,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린 미레이 데뷔 5주년 콘서트의 앙코르 타임에 영화 촬영이 겹쳤습니다.


관객들은 “미나미~!”를 외쳤고, 그 에너지가 그대로 영화에 담겼습니다. 그건 분명 미레이가 아닌, 미나미의 무대였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첫 촬영, 크랭크인이었죠.


극 중 삽입곡 ‘I still’은 미레이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가수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캐릭터 ‘미나미’가 불러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자신이 쓰지 않을 단어들로 가사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몇 번의 이별이 있어도, 몇 번의 세계가 바뀌어도,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그 노래는 스토리의 배경음이 아니라, 사랑의 서사 자체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레스토랑 신’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길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자, 이 세계의 미나미가, 원래 세계에서 리쿠가 이루어주지 못했던 미래를 말하는 순간입니다.


“이런 미래였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들은 리쿠는 대답 대신 눈물을 흘립니다. 대본에 없던 진짜 눈물이었습니다.


촬영 직전, 미레이가 나카지마 켄토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사랑했었잖아.”


그 말이 리쿠의 감정을 열었고, 그 장면은 ‘연기’가 아닌, ‘기억’처럼 찍혔습니다. 감독은 그 장면을 두고 “남자인 내가 봐도 심장이 떨렸다”라고 회고했습니다.


나카지마 켄토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를 벗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독은 그에게 “연기하지 말고, 반응해 달라”라고 주문했고, 두 사람은 ‘대사’가 아니라 ‘리듬’으로 즉흥적인 세션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장면들은 대본이 아니라 감정으로 완성됩니다.


이 영화의 평행세계는 판타지를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질문,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를 정면으로 마주 보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리쿠는 묻습니다.

“내가 없어도, 당신이 행복하다면… 괜찮은 걸까?”


사랑을 복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다시 결정하는 이야기. 그것이 이 영화가 도달한 정점입니다.


배경이 되는 요코하마의 감정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붉은 네온이 번지는 차이나타운, 파도를 형상화한 미나토미라이의 곡선형 건축들. 도시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판타지를 만들어냅니다. 그 안에서 미레이는 자신만의 결을 만들어냅니다.


처음 연기를 제안받았을 때, 그녀는 주제가를 부르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맡은 역할은 히로인 ‘미나미’.


처음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도 있었지만, 감독이 미키 타카히로라는 사실을 알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감독은, 처음부터 그녀를 주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더군요.


음악과 영화가 만났을 때, 때로는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미레이는, 단지 가수가 아닌, ‘기억을 건드리는 배우’로 존재합니다.


그녀의 연기는 스크린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남는 얼굴이고, 그녀의 노래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울리는 파동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와 어떤 세계를 살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세계가 사라진다면, 나는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예술적인 대답’으로 미레이는 노래하고 연기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서정적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감성적일 수도 있는 영화지만, 이 봄,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을 일본 영화를 찾고 있다면, 이 영화는 한 번쯤 극장에서 맞이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미나미의 목소리로 부른 가수 미레이의 노래를 극장의 음향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영화표는 몇 배는 더 가치 있는 콘서트 티켓의 역할을 합니다.


한 사람의 꿈과 한 사람의 사랑이 엇갈리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용기 있게 그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이 제 안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 영화는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봐주셨으면 합니다. 사랑을 다시 결정할 용기와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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