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불안을 느껴본 당신을 위한 SF

책 ≪노 휴먼스 랜드≫

by 생태비평가

해를 거듭할수록 날씨가 심상치 않다. 폭염은 더욱 심해지고 폭우가 소나기처럼 퍼붓는다. 이처럼 불안정한 대기로 인해 일기예보는 빗나가기 십상이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과학책 속의 수치가 아니라, 눈앞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우리 모두 살고 싶은 데서 살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203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협약을 지정했다. 하지만.. 요새도 이렇게 미칠 듯이 더운데, 4년 동안 탄소 다이어트를 통해 1.5도라는 임계점을 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걱정이 된다.


과연 그 약속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한 발 앞서 기후 재난의 NEXT를 상상하고 SF 소설로 써낸 한국의 젊은 작가가 있다. <노 휴먼스 랜드>라는 작품으로 "제3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대상을 수상한 김정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미아야. 사람들은 잘 못 살아왔어.
기후 재난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는지 몰라?
내가 기회를 빼앗는다고? 아니! 기회는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있었어.
그래서 결과가 어땠는데?


전쟁과 맞먹는 파급력을 불사르며 세계기후재난이 이미 2차례나 휩쓸고 간 근미래, 주인공 미아는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된 대한민국 서울에 UNCDE(유엔기후재난기구) 소속 작전대원으로 파견된다. 노 휴먼스 랜드 국제협약은 UNCDE가 정한 기준에 따라 특정 구역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도록 하고, 대신 탄소흡수원 역할을 하는 식물이 자라도록 하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려는 목적에서 발의되었다. 극단적인 조치임이 분명하지만, 인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국제기구는 최대한의 권력과 지위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나 한국에 발을 들인 미아와 대원들은 얼마 가지 않아, 노 휴먼스 랜드에서 사람이 사는 흔적을 발견하고 놀란다. 법의 감시망을 피해 고향 땅을 버리지 않고 숨어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그곳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밖에 국제기구의 강압적인 조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조직부터, 자신이 가진 기술력으로 탄소를 포집하는 벼를 만들어서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연구원, 같은 기술력으로 인간의 뇌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연구원까지, 모두에게 닥친 기후위기지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생각하는 방식은 다 제각각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아무리 좋은 대응방식이라도 그것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기후위기를 포함한 정치적 어젠다에 있어서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만큼 중요한 필수요소는 없을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는 개인 혹은 소수의 힘만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라, 미아는 플론을 통해 사람들의 뇌와 행동을 조작하는 것에 반대하고, 폭탄을 터뜨려 플론을 보유한 연구소 자체를 없애는 것에도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양쪽 모두 타자를 존중하는 민주적 해결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플론으로 단순히 노 휴먼스 랜드 해제로 인한 분쟁만 막겠다는 건 아니야. 사람이 만들어 내는 모든 종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플론은 전쟁과 기근, 폭력과 차별, 불평등과 기후 재난 걱정 없이 천년만년 인류가 계속 지구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거든. 나, 너, 그리고 이 방 밖에 있는 연구원들, 네가 살았던 그레이 시티의 거주민들,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의 미래를 온갖 위험에서 지켜 줄 거야."

"하지만…… 자아가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그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잖아요."


앤 연구소장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생존과 미래를 위협하는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자아를 없애는 것이다. 자아가 없으면 남을 해하려는 의도 자체가 존재할 수 없고, 생명이지만 무정물처럼 이 세상에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고 그저 숨만 쉬며 존재할 수 있게 된다. 1+1=2처럼 객관적 사실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아주 무서운 말이다. 그 누가 자유 의지로 자아가 사라지길 원할까.


"나는 그 미친 할머니가 곧 저지를 끔찍한 범죄를 막으려는 거야."
"폭탄으로요?"
(중략)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소화하느라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시급하고 위험한 문제가 플론인 줄 알았는데, 여기 더 급한 문제가 있었다.
마침내 나는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입을 연다.

"그럼 일단 사람들을 대피시켜야죠."
"그럴 시간이 어딨어?"

X가 미간을 찌푸린다.
"게다가, 괜히 그러다 일을 망치면 어쩌려고? 얻는 것에 비해 위험 부담이 너무 크잖아."


앤 연구소장의 계획을 막으려는 X가 택한 것은 다수의 희생이다. 자아를 없애든가, 아예 목숨을 버리든가. 어느 쪽도 암담한 것은 마찬가지다. 앤이든 X든 지구와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개개인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문제를 모두와 상의하기는커녕 독단적으로 해결하려고 나선 것부터가 잘못이 아닐까. 미아 역시 이 점을 지적하며 앤 소장의 행위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아질 기회를 빼앗으려" 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물론 앤 소장은 이대로 내버려 두면 사람들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빠지기만 할 것이라고 곧장 반박한다.


소장님이 하려는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파괴하는 거예요.
문제를 파괴해 버리면 영영 해결할 기회는 없어져요.
그걸로 끝이라고요.


결국 문제의 가장 큰 원인제공자인 인간들을 살리고 다시 한 번 스스로 나아질 기회를 주는 길을 택한 미아. 자아를 가진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해결하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과연 노 휴먼스 랜드가 아닌, 휴먼스 랜드에서 계속 살면서, 인류의 연대와 노력으로 기후재난을 막아낼 수 있을까. <노 휴먼스 랜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행동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가올 미래가 점점 더 두렵고 불안해서 반대로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무기력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노 휴먼스 랜드>의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것은 그런 '기후불안' 및 '기후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향해 미아가 쓴 편지다.


나에게는 이곳저곳을 불려 다니면서 알게 된 좋은 어른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내 계획을 알렸어. 불안한 사람들을 모을 거라고. 불안을 모아서 변화를 만들겠다고. 그래서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사람, 자신을 잃게 되는 사람을 최대한 줄여 보겠다고. 무언가를 더 원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원하지 않아서 간절한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환경 단체를 만들 거라고.


불안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노 휴먼스 랜드>를 읽는 내내 기후위기가 불러올 무수히 많은 문제들에 대해 작가 본인이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생각했는지 그 치열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이렇게까지 멀리 내다보지 못했던 나는, 앞으로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고 반성했다. 어쩌면 작가가 가졌던 불안이 독자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으로 재생산된 것이다.


불안하면 뭐 어때요.
그 마음은 그냥 그대로 두고, 다른 걸 해 봐요.
일단 뭐든 해 보고, 어떻게 되나 봐요.
그리고 또 다시 해 보고, 어떻게 되나 봐요.
재밌잖아요.
같이 하면 더 재밌을 거예요.


기후위기라는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안고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책, 혹여 기후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고 잘 알지 못해도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 입체적인 캐릭터와 박진감 넘치는 대사로 책이 아니라 SF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책, <노 휴먼스 랜드> 독후감을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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