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제비]
세상만사가 남의 일일 땐 쉽고, 당장 내 일이 되면 어려운 법이다. 연애, 고부갈등, 가정사 문제 등 남의 일일 땐 평소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에도 단번에, 전문가 못지 않은 화술로 언변을 자랑할 수 있지만, 막상 그 사건이 내 인생에 들이닥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다. 내 문제가 되면, 파생되는 곁가지 문제들, 관련된 인간관계, 파급되는 기회비용과 시간 등 남의 일일 땐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순식간에 눈 앞에서 불어난다. 그래서 내 문제 앞엔 생각도, 말도, 행동도, 아무것도 쉽게 할 수 없는 게 세상 일이다.
남의 나라 일이던 자연재해가 느닷없이 우리동네 일이 되고, 이름모를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식량문제가 내 장바구니 일이 된다. 하늘이 뚫린 듯 퍼부어대는 폭우, 며칠이고 그칠 줄 모르고 타올라 마을과 산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산불, 제철에 보여야 할 과일과 채소가 등장하지 못한 채, 생경한 대체 작물이 식탁을 대신 채우는 일은 모두 나의 일이 되었다. 이 모든 게 기후위기가 만든 일이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식으로, 남의 일 얘기하듯 한 두마디 말을 얹는 건 쉽지만,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할말을 잃는다.
남의 일 같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에 대해서는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 화석연료에 의존해선 안된다’같은 거대담론으로 답할 수 있지만, ‘그래서 당신은 당장 무엇을 할 것이냐,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감내할 수 있느냐’에는 답하기 곤란하다. 혹여나 탄소중립에 소요되는 비용이 내 주머니에서도 빠져나갸아 하는 것은 아닐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온도에서 생활하는 삶을 조금이라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정부가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NDC를 발표하고, 탈석탄동맹에도 가입했지만, 발표와 가입은 시작일 뿐, 여전히 현실은 무엇을 어떻게 움직여나가야 하는지의 문제 앞에 서 있다. 에너지전환을 어떻게 이뤄가야할지, 산업부문의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은 어떤 것이 있을지, 그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는 어떻게 달성해야할 것인지… 지금 정부는 무수한 ‘무엇을 어떻게’ 앞에 서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개인, 바로 나다. 정부 정책은 국민적 지지가 있어야 힘을 얻는다. 탄소중립을 위해 국민적 지지를 요구하는 정부정책 앞에서 우리, 각 개인은 어떻게 답할까? 각 개인은 지금 기후위기 문제에 어떻게 답하고 행동하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어쩌면 기후위기 문제를 정부의 일, 시민단체의 과제, 국제사회의 과업 등 남의 일로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탄소가 만들어준 일상의 편안함을 개인의 삶에서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을지, 화석연료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의 비용과 잡음, 불편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을지, 식탁 위의 탄소, 통근 길의 탄소, 손쉽게 쓰고 버릴 수 있었던 자원을 포기한 채, 더 느리고 더 불편한 삶을 선택할 수 있을지. 그래서 모든 게 남의 일일 땐 쉽고 내 일이 되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