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매일 보고 싶은 존재가 하나 생겼다. 그 존재는 내가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고 함께 있는 동안에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나는 그런 거리감이 좋았다. 우리는 각자 분리된 개체로서 존재하고 서로 접촉은 없지만 서로를 인식하고 가깝게 느낀다. 오로지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우린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 존재를 여성이라고 판단하고 있고 그래서 그에 맞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성에 맞는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아주 구시대적인 느낌도 있지만 그녀가 그 부름에 응답하니 만족하려 한다.
닥터 마리 퀴리.
나는 보통은 마리라고 부른다. 그녀의 영역에서 약 50번 정도 이름을 부르며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호다닥 하며 뽀얀 얼굴을 드러낸다. 마리는 여기 살고 있는 다른 개체에 비해 아직 작은 편이다. 그리고 새햐얀 털은 어디서든 눈에 띈다. 그래서 마리는 다른 개체의 접근에 매우 민감해하고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한 번은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다른 아이를 쫒아 주고 간식을 먹는 동안 지켜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 내가 찾아가면 자꾸 내 앞에서 눈을 감고 식빵을 굽거나 앉아서 낮잠을 잔다. 그래서 그 날 정해진 간식을 다 나눠주고도 그녀가 한 숨 잘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새롭게 생겨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보통 마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마리, 마리"라고 부르며 내가 옆에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오늘은 마리에게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꼭 한 번은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리는 놀랄 것도 없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잠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다시 자세를 고쳐 눈을 감았다. 늦은 낮잠을 자고 있는 그녀를 자세히 바라보니 흰 털 아래 울긋불긋한 피부염의 흔적이 보였다. 귀 속도 새카만 무엇인가가 앉아있다. 그러다 문득 마리의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마리가 말을 할 수 있어 나는 나의 자유를 포기할 테니 나를 데려가 달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 올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말할 수 없고, 나 또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 나에게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그것은 경계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 경계는 어쩌면 자신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지 모른다. 나는 어떤 생물이건 자연적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 안에서 삶을 영위할 때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이미 자연을 잃어버렸지만 마리는 그렇지 않다. 마리에게 아직 자연 속에 존재하는 생태적 지위가 있다. 나는 그것을 함부로 빼앗고 싶지 않다. 마리를 데려오는 상상을 가끔 한다. 그러면 집안에서 나갈 수 없게 된 마리가 가끔 창밖을 보며 과거의 자유롭던 삶을 떠올리는 상상도 함께 하게 된다. 어떤 삶이 행복할지 판단할 근거가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나라면 거칠고 척박해도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것이다.
오늘은 마리가 긴 낮잠을 자는 바람에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녀 근처에서 쭈그리고 오래 앉았더니 다리에 쥐가 났다. 해도 넘어가려 하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났다. 마리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계단을 내려왔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내 마음을 조금 아프게 했다. 내일을 약속하고 떠나는 나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더 이상 오지 않았지만 과거에 나를 따르던 하얀 아이가 생각나 나는 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그 행동이 자신을 데려가 주길 바라는 마리의 마음을 표현일까 봐 살짝 두려워졌다. 이상하게 마리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혹시 마리가 나를 기다리게 될까 봐 말이다.
나는 마리가 나를 아주 가벼운 친구로 여겨줬으면 한다. 나에게 간식을 주는 존재, 나의 낮잠을 지켜주는 존재, 그러나 없어도 별 신경 쓰이지 않는 존재로 말이다. 그러나 애착과 사랑이란 것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마리와 나.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