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50만원으로 비상금 300만원을 만든 방법

by 경제한입

통장 잔고가 47만 원이었던 날이 있다.

월급날까지 일주일이 남았는데, 카드값 자동이체가 내일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카드값 32만 원을 빼면 15만 원이 남는다. 일주일을 15만 원으로 버텨야 한다. 밥은 먹어야 하고, 교통비는 나가야 하고, 갑자기 경조사라도 터지면 끝이다.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왜 매달 이 모양일까."

월급은 매달 250만 원이 들어온다. 적지 않다고는 못 하겠지만, 많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금액이 아니었다. 들어온 돈이 어디로 나가는지를 한 번도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첫 번째로 한 건, 새는 돈을 찾는 것이었다.

토스 앱에서 지난 3개월 소비 내역을 뽑아봤다. 숫자로 보니까 느낌이 확 달랐다. 식비 65만 원, 교통비 11만 원, 구독 서비스 4만 3천 원, 보험료 15만 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타' 지출이 매달 18만 원쯤.

충격이었던 건 구독 서비스였다.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멜론, 쿠팡 로켓와우. 월 4만 3천 원. 연으로 치면 51만 6천 원. 멜론은 3개월째 안 듣고 있었고, 넷플릭스도 한 달에 두세 번 틀까 말까였다.

더 충격이었던 건 배달비였다. 한 달에 배달 음식만 28만 원. 배달비만 따로 떼어 보면 6만 원이 넘었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서 배달비 3,000원을 별생각 없이 눌렀던 내가, 매달 6만 원을 배달 기사님 호출 버튼에 쓰고 있었던 거다.

계산해보니 줄일 수 있는 돈이 월 35만 원은 됐다. 이 돈이 매달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가고 있었다. 통장 잔고가 47만 원이었던 건 월급이 적어서가 아니라, 구멍이 너무 많아서였다.


구멍부터 막았다.

한꺼번에 다 바꾸면 3일도 못 간다는 걸 안다. 그래서 가장 덜 아픈 것부터 건드렸다.

멜론 해지. 월 1만 900원 절약. 안 듣는 데 돈 내고 있었으니 이건 아까운 것도 아니다. 넷플릭스는 광고형 스탠다드로 다운그레이드했다.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으로 묶으면 월 4,900원에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기존 월 1만 7천 원에서 4,900원으로. 월 1만 2천 원 절약.

통신비도 손댔다. 5만 원짜리 요금제를 쓰고 있었는데, KT엠모바일 알뜰폰으로 바꿨다. 5G 데이터 3GB에 통화·문자 무제한이 월 6,900원. 통화 품질은 같은 KT 망을 쓰니까 차이를 모르겠다. 월 4만 3천 원 절약.

배달은 주 3회에서 주 1회로 줄였다. 완전히 끊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오히려 폭발할 것 같았다. 대신 점심을 주 3회 도시락으로 바꿨다. 일요일 저녁에 밥 세 끼분을 미리 싸둔다. 처음엔 귀찮았는데 두 주쯤 지나니 루틴이 됐다. 식비가 65만 원에서 40만 원대로 내려갔다.

첫 달 결산. 남은 돈 42만 원.

전에는 남는 게 없었다. 42만 원이라는 숫자를 통장에서 확인했을 때, 솔직히 좀 뿌듯했다. 별걸 한 것도 아닌데.


남은 돈을 어디에 넣을지가 문제였다.

그냥 월급 통장에 놔두면 쓴다. 이건 확신이 있었다. 잔고가 보이면 '이 정도는 써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 반드시 올라온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그때 파킹통장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검색하다가 econbite.com에서 정리한 글을 읽었는데, 개념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의아했다. "수시로 넣고 빼는데,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붙는 통장"이라니. 적금처럼 묶이지도 않으면서?

내가 쓰던 월급 통장은 연 0.1%. 1,000만 원을 1년 넣어둬도 이자가 1만 원이다. 세금 떼면 8,460원. 반면 파킹통장은 연 2~3%대. 같은 돈인데 이자가 20배 이상 차이 난다. 그동안 얼마를 날린 거지.

앱을 깔고 비대면으로 개설했다. 5분도 안 걸렸다. 42만 원을 옮겼다. 다음 날 아침, 앱을 열어봤다. 이자 34원. 웃길 수도 있다. 34원이 뭐 대수냐고. 근데 어제까지 내 월급 통장이 하루에 벌어다 준 이자가 0.5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감각이 완전히 달랐다.

"내 돈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난생처음 받았다.


두 번째 달부터는 자동화를 걸었다.

의지력은 믿을 게 못 된다. 첫 달에 42만 원이 남았다고 해서 매달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다. 회식이 몰리는 달도 있고, 갑자기 경조사가 터지는 달도 있다.

그래서 월급이 들어오는 날, 자동이체를 세 개 걸었다.

적금 25만 원. 이건 아예 손 못 대는 돈이다. 1년 뒤에 종잣돈으로 쓸 거다. 파킹통장 15만 원. 비상금 통장이다. 여기 돈은 진짜 급할 때만 꺼낸다. 언제든 빼 쓸 수 있으니까 적금처럼 깨야 하는 스트레스가 없다. 나머지는 생활비 통장에 남겨둔다.

월급 250만 원에서 고정 지출(월세, 보험, 교통비 등)을 빼면 약 110만 원이 남는다. 여기서 40만 원을 자동이체로 빼니까,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약 70만 원. 넉넉하진 않지만 불가능한 금액도 아니다.

핵심은 "남으면 저축한다"가 아니라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산다"는 순서를 뒤집은 것이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세 번째 달쯤, 습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배달 앱을 열기 전에 계산을 하게 됐다. "이 돈 파킹통장에 넣으면 내일 이자가 얼마 더 붙지?" 금액은 몇십 원에 불과한데, 그 사고방식 자체가 소비를 한 템포 늦춰줬다.

편의점에서 무의식적으로 집던 커피도 줄었다. 하루 1,800원짜리 캔커피. 별것 아닌 것 같은데 한 달이면 5만 4천 원이다. 회사에 텀블러를 가져다 놓고 믹스커피를 타 마시기 시작했다. 솔직히 맛은 차이가 난다. 근데 한 달에 5만 원이 남는다고 생각하니 참을 만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그냥 돈이 흘러가는 방향을 살짝 틀어준 것뿐인데, 파킹통장 잔고가 조금씩 올라가는 게 보였다. 1개월 차에 42만 원, 2개월 차에 57만 원, 3개월 차에 55만 원. 경조사가 겹친 달에는 15만 원밖에 못 넣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빼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함정도 있었다.

네 번째 달에 위기가 왔다. 친구 생일에 선물을 사야 했고, 계절이 바뀌면서 옷도 필요했다. 파킹통장을 열어보니 148만 원이 들어 있었다. "여기서 10만 원만 빼면 되잖아." 이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빼면 안 될 건 없다. 파킹통장은 언제든 빼 쓸 수 있으니까. 그게 장점이자 약점이다. 적금이었으면 깨는 게 아까워서 손이 안 갔을 텐데, 파킹통장은 너무 쉽게 꺼낼 수 있다.

결국 5만 원을 뺐다. 그리고 다음 달에 5만 원을 추가로 더 넣었다. 이 경험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 비상금 통장은 "절대 안 건드린다"가 아니라 "건드렸으면 반드시 메운다"가 현실적인 규칙이라는 것. 완벽하려고 하면 무너진다. 유연하되, 원칙은 유지하는 게 오래 간다.


7개월 만에 300만 원을 찍었다.

정확히 7개월 3주가 걸렸다. 파킹통장 잔고 302만 4천 원. 이자는 그동안 합쳐서 약 3,200원이 붙었다. 금액 자체는 커피 두 잔 값도 안 된다. 근데 중요한 건 이자가 아니었다.

3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전감이 전과 완전히 달랐다.

이전에는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카드 할부부터 생각했다. 냉장고가 고장 나면 '다음 달 월급 들어오면' 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파킹통장에 300만 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다르다. 급한 일이 생겨도 적금을 깨지 않아도 되고, 카드 돌려막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생활비 3개월치. 이게 비상금의 마지노선이라고 어디선가 읽었는데, 직접 모아보니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별거 아니었다.

안 듣는 멜론을 해지하고, 알뜰폰으로 바꾸고, 배달을 줄이고, 자동이체를 걸었다.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니고, 부업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새는 돈을 막고, 남은 돈을 자동으로 옮겼을 뿐이다.

근데 이 '별것 아닌 것'을 7개월 동안 반복하니까 300만 원이 됐다.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건 시작이었다. 두 번째로 어려웠던 건 네 번째 달에 꺼내 쓰고 싶은 유혹을 버티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어려웠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습관이 되고 나니까 그냥 돌아갔다.


만약 7개월 전의 나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토스 앱 열어서 지난달 소비 내역 한 번만 봐."

그게 시작이었다. 47만 원짜리 잔고를 보고 한숨 쉬던 그날 밤이 없었으면, 300만 원도 없었다.

비상금 300만 원은 재테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근데 그 시작이 가장 어렵다는 것도 안다. "월급이 적어서 못 모아"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으니까.

나도 그랬다. 근데 250만 원으로도 됐다. 시작하는 데 큰돈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경제를 한입에, econbi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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