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기심'과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오해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시선으로 본 현대 자본주의

by gpg
AdamSmith.jpg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이미지 출처(wikipedia)





들어가며: 애덤 스미스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


오늘날 우리는 경제 문제를 논할 때 종종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거론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기심'을 언급하며 자유시장 아이디어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의 사상을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이 잘 돌아가게 만든다"는 식으로 해석해, 마치 탐욕이 곧 선(善)인 것처럼 왜곡되기도 한다. 사실, 스미스의 본래 취지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스미스는 결코 ‘욕심이 곧 미덕’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도덕과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장의 한계 또한 인식한 철학자였다.


이 글에서는 애덤 스미스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 사상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현실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cf. 양극화, 거대 플랫폼 독점, 시장 실패 등)를 비판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또한, 『국부론』보다 앞선 『도덕감정론』의 맥락에서, 왜곡되어 전달된 '이기심''보이지 않는 손'의 본래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우리가 현대 시장경제에서 간과하기 쉬운 도덕적 측면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기심에 대한 오해와 스미스의 도덕철학.


우리가 애덤 스미스를 언급할 때 종종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이기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미스가 이기적인 행동 자체가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고 이해하지만, 이 역시 중요한 맥락을 빼놓은 해석이다. 스미스가 말한 '자기 이익 추구'는 어디까지나 서로가 이익을 나누는 자발적 교환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정육점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자기 이익에 대한 고려가 우리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는 예를 들어,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저녁 식사를 제공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핵심은 모든 거래 당사자가 자발적 교환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며 상호 만족을 이루는 데 있다는 점이지, 어느 한쪽이 탐욕스럽게 모두를 착취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스미스가 언급한 이기심은 무절제한 탐욕과는 달랐다. 『도덕감정론』에서 그는 인간의 공감(sympathy) 능력과 도덕적 감수성을 강조하며,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고, 선행에 박수를 보내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행동을 조절하는 모습을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가 작용함으로써 인간이 도덕적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스미스의 도덕철학을 고려하면, 단순히 ‘이기심’만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거나 탐욕을 미덕화한다고 보는 것은 큰 오해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른바 '애덤 스미스 문제'라 하여, 『도덕감정론』에서 보이는 인간관과 『국부론』에서 다룬 인간의 행태가 서로 모순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두 관점이 사실 모순되지 않으며,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법과 도덕, 신뢰 등 기본적인 사회 규범이 깔려 있다고 해석한다. 즉, 사람들이 시장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기본적인 공정함과 양심의 범위 내에서 행위를 조절하며, 이와 같은 도덕적 절제와 상호 배려 간의 조화가 시장의 올바른 작동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정당화된다"는 식의 극단적 논리는 스미스의 관점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스미스가 말한 '이기심'은 오늘날의 무책임한 탐욕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의 개념이 도덕적 성찰 없이 오·남용되고 있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진짜 의미와 왜곡.


애덤 스미스의 또 다른 대표적 개념인 ‘보이지 않는 손’은 마치 시장에 신비한 절대자가 있어 모든 것을 알아서 조율해 준다는 오해를 낳곤 한다. 실제로 많은 보수적 경제논객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라”, “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찾는다”는 식으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단 한 번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했을 뿐이며, 그 의미는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스미스가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들이 의도치 않게 자발적 교환을 통해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부론』에서는 한 사업가가 자신의 자금을 해외보다 국내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 국내에 투자하게 될 때, 이는 단순히 자신의 이익 추구였지만 의도치 않게 국가 산업 발전과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맥락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쓰였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끈다”는 말은 각 시장 참여자들의 분산된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예측불가능한 긍정적 결과를 나타내며, 시장이 언제나 완벽한 질서와 정의를 보장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은 지나치게 신화화되었고,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만능 공식처럼 사용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 규제를 과도하게 철회한 결과,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심각한 금융시스템의 실패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개별 이익 추구가 누적되어 오히려 전체 시스템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며, 때로는 제도적 감독, 즉 ‘보이는 손’의 개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스미스도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과 법치가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정부가 담합이나 독점과 같은 부당 행위를 단속하는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거대 플랫폼 기업이나 투기적 글로벌 자본의 움직임을 보더라도, 스미스라면 이를 단순한 자유시장 원리의 산물로 치부하기보다는, 그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했을 것이다.





경쟁, 독점, 그리고 거대 기업.


스미스가 활동하던 18세기에는 현대와 같은 글로벌 초거대 기업이나 디지털 플랫폼 독점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 시대부터 독점과 담합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같은 업종의 사람들이 만나면 소비자를 해치는 담합을 꾸민다”는 그의 표현은, 상인이나 생산자들이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가격을 올리거나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탁할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대신 때때로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협력할 유인이 발생하며, 이는 적절한 제재와 견제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특히, 스미스는 영국 중상주의 체제 하에서 정부와 기업이 결탁해 독점적 특권을 남용하는 사례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동인도회사와 같은 거대 상사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식민지를 착취했던 사례는, 정부가 특정 기업에 힘을 실어줄 때 시장 전체가 왜곡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는 공정한 경쟁이 부의 창출과 국민 다수의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특권을 가진 독점을 강하게 경계했다.


현대에도 빅테크(Big Tech) 기업들(cf.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은 각자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며 경쟁을 억제하고 있다. 소비자가 검색 하나를 하려면 구글에 의존해야 하고, 앱을 판매하려면 애플의 플랫폼을 통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들 거대 기업은 방대한 네트워크 효과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쟁자를 압도하거나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스미스가 추구했던 공정한 경쟁의 원칙에 역행하는 것으로, 현대 자본주의가 직면한 주요 문제 중 하나다. 겉보기에는 자유시장 경쟁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형태의 독점이 탄생한 것이다.


만약 애덤 스미스가 오늘날의 경제 질서를 본다면, 그는 아마도 이러한 독과점 현상에 크게 우려를 표하며, 정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견제장치를 마련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유시장은 많은 경쟁자들이 혁신을 겨루며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상태를 말하는 데, 현대의 독점 플랫폼은 그 경쟁 자체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부의 양극화와 노동 가치의 저하.


양극화, 즉 부의 극심한 불평등은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이다. 상위 1%의 부가 전체 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다수의 근로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빠듯한 현실은, 경제의 건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파이가 커지면 언젠가 모두에게 이익이 분배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양극화를 정당화하곤 한다.


하지만, 스미스는 국가 경제의 진정한 척도를 소수의 부유한 재산이 아니라, 노동하는 다수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사회에서 다수가 가난하면 그 사회는 결코 번영하거나 행복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진정한 국부란 ‘땀 흘려 일하는 다수 대중이 얼마나 풍족하게 먹고 입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물론 스미스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 자체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부유한 자가소비와 투자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측면도 인정했지만, 극단적 불평등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과 공정한 경쟁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통찰했다. 특히 『도덕감정론』에서는 부유한 자에 대한 맹목적 숭배와, 가난한 자에 대한 경멸이 사회 구성원 간의 공감을 약화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오늘날 일부 사회에서 거대한 부를 쌓은 인물을 영웅시하고, 빈곤층을 “노력하지 않아 가난하다”라고 폄하하는 모습은, 바로 스미스가 경계했던 가치 왜곡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분배가 아닌 기회의 문제.


현대 자본주의에서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은 단순히 부의 분배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상위 1%의 부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동안, 다수의 근로자들은 실질 소득이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으며, 계층 간 이동의 문턱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누진세 강화나 복지 확대와 같은 재분배 정책이 불평등 해소의 해법으로 거론되어 왔지만, 이러한 방식은 결과만을 손질하는 데 그쳐 근본적인 문제, 즉 기회에 대한 접근성의 불공정을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불평등 문제는 단지 돈이 한쪽에 몰린다는 결과보다는, 동일한 능력과 노력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 구조적인 이유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이나 취업 기회를 얻지 못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계층별로 크게 다르다는 데 있다. 교육, 인맥, 초기 자본 등 유리한 조건을 가진 이들이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월등히 높으며, 이러한 기회의 격차는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는 출발선에서부터 불리한 상황에 놓여, 아무리 노력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경제 전체의 파이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노동에 돌아가는 몫은 줄어드는 현상은 이러한 불공정한 기회 구조를 잘 보여준다.


또한,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나라에서 관찰된 노동소득 분배율의 지속적 하락과 기업 이윤 및 자산 소득 비중의 증가는, 노동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모든 노동자에게 공평하게 공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은 단순한 소득 이전 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근본적으로는 공정한 경쟁 환경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제도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시장 독과점의 문제도 기회의 불평등과 맞물려 있다. 경제 전반이 소수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들 거대 기업은 근로자나 납품업체 등 상대적으로 약한 구성원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은 노동 조건과 임금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설정하기가 쉬워지고, 노동자들은 선택의 폭이 좁아져 불리한 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러 연구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이 많아질수록 노동자들이 받는 몫이 줄어들며,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시장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개인의 노력과 보상이 균형을 잃게 되고, 이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더욱 고착시킨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양극화 문제를 바라볼 때 분배 그 자체보다, 그 배경에 놓인 기회와 과정의 불공정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동일한 능력과 노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조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소로 인해 교육이나 취업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운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결과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또한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사회 안전망이 취약해 취약계층이 더욱 큰 피해를 입는 모습은, 단순한 소득 이전만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빌리자면,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시장은 각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여야 하며,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환경이 마련되어야만 사회 전체의 부도 증대될 수 있다. 만약 어떤 구성원이 도태되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는 단순히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식하고,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스미스가 강조한 도덕적 경제의 본질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시장의 한계: 실패하는 곳엔 '보이는 손'이 필요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힘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 한계를 간과하지는 않았다. 그는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해 규제와 간섭을 일삼던 중상주의적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음에도, 동시에 정부가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사적 이익 추구가 공공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시장 실패라고 불리는 문제들(cf. 공공재 부족, 외부효과, 정보의 비대칭, 독과점 등)은 스미스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는 통찰을 바탕으로 정부와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예를 들어, 현대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을 좇아 환경을 오염시키면 그 피해는 사회 전체에 전파되지만, 오염의 대가는 기업 회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은 규제와 조정, 즉 ‘보이는 손’의 개입이다. 스미스 역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는 시장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정부가 이를 적극 단속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 다른 사례로, 2008년 금융위기를 들 수 있다. 당시 각국 정부는 ‘너무 거대해서 망할 수 없는’ 금융기관들이 파산할 경우 경제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개별 금융기관들이 자율적 이익 추구의 결과로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면서 결국 전체 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이다. 스미스라면 금융 분야에서도 엄격한 감독과 투명성 보장, 그리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시장의 자율과 효율을 존중하되 그 한계와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정부와 사회의 역할은, 스미스의 철학에서 ‘균형(Balance)’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공공재(cf. 교육, 사회 기반시설 등)를 공급하고,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나가며: 애덤 스미스의 관점으로 되찾는 건강한 시장경제


18세기의 사상가 애덤 스미스에게 21세기의 자본주의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의 이름이 온갖 경제 담론에서 교조적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현실 속에서, 정작 스미스가 강조한 것은 인간의 이익 추구가 도덕적 규범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었다.


스미스는 시장의 자율적 경쟁이 각 개인의 창의와 노력을 극대화시켜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시킬 것이라 믿었지만, 동시에 그 자유가 무절제하게 폭주하지 않도록 도덕, 법, 그리고 공정한 경쟁의 룰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극심한 불평등, 탐욕적인 기업 문화, 그리고 독과점과 같은 문제들을 고민할 때, 스미스의 통찰은 균형 잡힌 시각과 도덕적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스미스가 본래 의도한 대로, 도덕적 가치 속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모든 참가자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고, 개인의 노력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며, 동시에 정부와 사회가 필요한 경우 적절하게 개입하여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시장에서는 경쟁과 협력이 조화를 이루고, 성장과 기회의 선순환이 실현될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통찰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경제를 한층 더 지속가능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스미스가 강조한 도덕적 시장, 즉 공정한 경쟁과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경제 환경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pilogue.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애덤 스미스의 사상은 내게 단순한 경제 이론이 아닌, 사회를 바라보는 기준이자 가치 판단의 잣대가 되어주었다. 특히 ‘도덕적 배려 속에서의 자유시장경제’라는 개념은 행정학을 공부하며 효율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던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고시를 그만둔 이후로도 여전히 내 경제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다양한 경제 이슈를 해석하는 토대가 되어주고 있다. 언젠가 꼭 글로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다짐이,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를 지금에서야 이렇게 글이 되었다.






Reference.

애덤 스미스, 『국부론』, 유인호, 동서문화사(2008)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박세일·민경국, 비봉출판사(2009)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류현, 김영사(2009)

도메 다쿠오,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우경봉, 동아시아(2010)

"성서 이래 가장 위대한 책의 탄생,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Youtube, EBS 다큐, April 30.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0Z6Ue_Q6_Tk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