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라면이 나오기까지...
처음 먹어 본 토마토해산물라면. 토마토소스와 해산물을 이용해 라면 국물을 우려냈습니다. 맛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토마토 달콤 쌉살 한 국물과 매운맛의 조화가 좋았습니다. 또 토마토를 이용한 겉절이, 과일과 함께 버무린 샐러드, 토마토 칩까지 토마토를 이용한 식품을 대중화하고 있는 농업회사법인 자연터를 방문했습니다. 농업법인에서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사례를 본 것 같아 소개할까 합니다.
사실 농업하면 대부분은 그냥 농사만 잘 지으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합니다. 농업인은 농사만 열심히 짓고 그 나머지는 정부가 알아서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농정의 기본이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개별 농민에게 경영자가 되라고 하는 건 사실 무리한 주장이죠. 하지만 누군가는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농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농사를 잘 짓는 것보다 잘 판매하는 게 더 어렵다고. 한 가지 잘 되는 품목이 있으면 너도나도 뛰어들고 처음에 좋았던 가격은 폭락하면서 모두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느 산업이든 예외가 없고 농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경영전략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포터는 이를 우연의 산물이나 기업의 행위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근원적인 경쟁구조에 의해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포터 교수는 이를 산업경쟁을 유발하는 5가지 요인으로 설명합니다. "신규 진입자의 위협, 기업 간 경쟁관계, 대체재의 위협, 공급자의 교섭력, 구매자의 교섭력"이 그것이죠. 이런 요인들이 모여 한 분야의 잠재적 수익을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반적인 사회통념과는 달리 농업 역시 경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WTO 협정으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서 생산만 잘하면 되던 농업에서 이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농업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인식이 농업분야에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농업회사법인 (주)자연터 박인호 대표와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마이클 포터의 비교우위 경쟁전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는 어떻게 토마토라면까지 만들게 됐을까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산업의 본질이 보였습니다.
세상의 많은 부분은 우연히 일어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뭔가에 끌리고, 또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갑니다. 마음을 열어 놓고 새로운 변화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박인호 대표가 농업에 뛰어든 계기도 사실 우연이 크게 작용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박인호 대표는 식품 대기업에서 유통업체를 담당하면서 우리나라에서 할인점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 왔습니다. 카페라테 음료를 성공시키면서 마케터로서 정점을 찍었고, 이유식에 들어가는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면서 농업의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처음부터 농산물 유통에 중심을 두고 농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유통전문가답게 생산을 한 후 판매할 곳을 찾는 게 아니라 좋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농산물을 재배하는 방식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찾은 게 토마토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토마토 시장이 최근 1조 원 대로 성장했습니다. 과채류에서 딸기(약 1.3조 원)에 이어 2위 규모로 성장한 것이죠. 그런데 생식과 샐러드 정도로만 먹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로 눈을 돌리면 토마토는 결코 이 정도의 대접을 받을 작물은 아닙니다. 유럽은 80조 원 정도의 시장이고, 미국도 40조 원, 이웃 일본도 10조 원이 넘어가는 시장 규모를 자랑합니다. 국내 토마토 시장도 따라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한 후발주자가 들어가서 기술혁신을 이룰 여지가 많다고 봤습니다.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공용 토마토와 방울토마토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추토마토 재배에 뛰어듭니다. 대추토마토는 맛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시장 흐름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지금은 오히려 기존 토마토보다 더 많이 재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의 강점을 잘 살려서 유통망 구축에 집중합니다. 그때 필요한 게 신뢰입니다. 소비자와 바이어에 대한 신뢰는 꾸준한 거래를 만들어 가는 기본입니다.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관계에 더 집중하는 게 중요하죠. 사실 기후에 따라 생산량과 품질이 들쭉날쭉하고 가격 등락폭이 큰 농산물 유통에서 단순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죠.
좋은 유통채널을 확보해야 농업생산자들과 좋은 관계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 관계란 건 결국 농업생산자가 생산한 토마토를 좋은 가격에 구매해 줄 수 있어야 가능하니 말입니다. 안정적인 판로는 생산기술을 안정화시키는 데 또 중요한 역할을 하죠. 지속적인 비교우위를 한동안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았던 초기 거래조건은 경쟁자가 나타나면서 하나둘씩 사라집니다. 농업은 특히나 쏠림 현상이 심합니다. 지자체마다 보조금까지 투입하면 시장은 교란되기 쉽습니다. 한동안 지속돼 온 경쟁우위에 만족하다가는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변화할 때입니다. 새로운 경쟁우위를 만들어야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해지죠.
그때 선택한 게 칼라 대추토마토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에서 새롭게 개발된 품종은 아직 연중 생산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안정적인 판매망 구축에 큰 장애로 작용합니다.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었겠죠. 그렇지만 결국 최적은 생육조건(온도, 습도, 광 등)을 찾아냅니다. 이를 체계화할 수 있도록 ICT 제어시설도 도입하죠. 요즘 말로 스마트팜입니다. 이로써 새로운 경쟁우위를 확보합니다.
그럼 경쟁우위는 왜 중요할까요? 그건 바로 투자된 자금을 수익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를 투하자본수익률(ROI)라고 하는 데요, 이런 잠재수익률을 일정기간 확보할 수 있어야 새로운 시장으로 나갈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적자경영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우리 농업법인체 대부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기도 합니다.
전 사실 이 정도 왔으면 그 토마토 생산과 유통에 집중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이런 복합시설(토마토 체험농장, 로컬푸드 유통매장, 레스토랑, 교육)까지 확장하는 건 범위가 넓지 않나 우려가 좀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해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 농산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라방울토마토 생산이 안정되면서 결국 다가올 가격 경쟁을 대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토마토 재배농가들 역시 수익성이 좋은 칼라 방울토마토 재배에 뛰어들고 지자체마다 앞다투어 지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국내 토마토시장은 이런 충격을 버텨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진 않습니다. 급격한 가격 하락은 힘들게 구축한 산지 생산망과 유통망 유지를 어렵게 합니다.
한 가지 돌파구는 수출입니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시장은 진출이 쉽지가 않습니다. 반면에 홍콩과 싱가포르는 아직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단가와 일본에 비해 낮은 인지도는 시장 경쟁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속가능성은 떨어집니다. 또 다른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가공과 체험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 요인이었을 것입니다.
기업은 경쟁자가 등장하고 시장환경이 변하면 따라서 경쟁전략을 다시 수립해야만 합니다. 지체하다가 시기를 놓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GE 사례에서 보았듯이 세계적인 기업이라고 예외는 없습니다. 농업회사법인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 대비해 먼저 준비하고 한 발 앞서 대응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마이클 포터의 저주가 농업법인이라고 피해가지 않습니다.
마이클 포터는 기업이 경쟁자들, 즉 경쟁을 유발하는 5가지 요인과 맞서기 위해서는 세 가지 본원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이를 경쟁우위 전략이라고도 합니다. "1) 총체적인 원가 우위, 2) 차별화, 3) 집중화"가 그것입니다.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이 처한 환경에 대한 합리적 판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경쟁우위 전략이 결합해야만 합니다. 3가지를 모두 잘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뭐 걱정할 게 없겠죠.
칼라토마토를 성공시키기 위해 종자를 도입하고 재배기술을 확립한 것은 차별화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농업법인들과 품종 차별화를 통해 경쟁우위를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60여 산지 농가들과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무지게방울토마토 브랜드를 만들어 간 것은 집중화 전략으로 볼 수 있겠죠. 이를 통해서 가격경쟁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차별화된 시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마토 가공과 체험을 새롭게 뛰어든 것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처음엔 좀 따라잡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토마토를 가장 잘 생산하고 유통하는 농업법인이 한계를 느끼는 걸까, 이런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선동렬 선수처럼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은 최종적으로 마주치게 될 비용우위 전략으로 무장한 수많은 경쟁자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이야만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보였습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데 수긍하게 됩니다. 결국 토마토 유통이라는 나날이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공과 체험, 직접 유통에서 마진 폭을 넓이는 게 좋은 전략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대표의 책임입니다.
1차 생산과 3차 유통에서 강점을 가지는 회사가 2차 산업인 식품가공에 뛰어드는 건 어찌 보면 위험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긴 대화가 끝날 때쯤에는 기존에 축적한 유통 네트워크와 국내외 시장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이를 충분히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음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아직 몇 년의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지금이 좋은 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참 잘 나갈 때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일을 주저 없이 시도하는 걸 보면서 기업가는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스스로를 농업생산자라 강조했지만 제 관점에서 농업경영자 또는 농업 기업가로 정의하는 게 더 타당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우리는 농사를 지으면 모두 농민이라 퉁칩니다. 그러면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문제가 남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자세히 다뤄보고 싶네요.
새롭게 신축한 로컬푸드 매장에는 인근에서 생산된 다양한 농산물을 판매합니다. 또 2층에는 무지게방울토마토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도 시작했습니다. 바로 옆에는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서 토마토 체험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수출까지 하는 규모를 갖춘 6차산업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아직 갈길이 멀겠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새로운 여정도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사족으로, 요즘 스마트팜이 핫이슈입니다. 아마도 (주)자연터도 스마트팜 한다고 홍보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건 주변장치에 불과합니다. 사업의 본질과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궁금해하니 직접 스마트폰으로 제어하는 시범을 보였지만 결코 이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 토마토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2-3시간을 나눴습니다.
또 하나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은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고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 있어서 우리 농업기술은 무슨 기여를 했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토마토 산업에 대해서 그리고 십여 년 동안 농업분야에 참여하면서 경험한 현장의 생생한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준 박인호 대표님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합니다.
* 주의 : 짧은 대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다 보니 제가 오해한 부분이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부분은 조금씩 보완을 해 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