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하루가, 계절이 느리게 지나가는 시절이 더러 있다.
나의 시간은 멈췄는데 세상의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지나가더라.
세상의 시간만큼 내 시간은 발을 질질 끌면서도,
어떻게 또 달이 뜨고 달이 지고 날이 바뀌며 하루가 가곤 했다.
주말 아침, 최대한 늦게까지 눈을 뜨지 않기로 했지만 결국은 멍하게 일어난다.
생수가 떨어졌지만 1. 운전해 마트에 가서, 2. 이방인으로서의 시선을 받으며 3. 꼭 필요한 것만 산뒤 4. 헐레벌떡 돌아오는 지난한 과정은,
오늘만큼은 하고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부 나가버린 단톡방에서 알림이 올 리도 없고, 이미 저녁이 된 한국 시간에 날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잠잠하기만 한 핸드폰을, 그래도 시야 내에 가까이 둬본다.
나 혼자 쓰는 집은 청소할 필요도 없다. 혼자 살기엔 너무 넓다.
눈을 깼을 때부터 이 공간이 나를 목조르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이 공간이 아니라면 밖에 10분도 발붙이고 있을 곳이 없다.
담요를 끌어안고 홈화면만 켜진 넷플릭스를 째려보다가, 내가 보고싶은 사람은 볼 수 없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이빨을 질근질근 깨문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상처받았는지, 역시나 속았다고 생각하지만 대안은 없다는 것 이런 것들만 뒤틀린 속에서 자꾸만 게워내어 끊임없이 되씹는다.
소파에 누워 회색 벽을 보고 또 본다.
소파에 붙어 이 집안에서조차 숨어있는 내 모습이 개판일 것이다.
해가 질 때 즈음이면 술을 마실 수 있다.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마셔 없애기 위해.
텅 빈 심장에 술을 쏟아붓는다. 익사를 할 때 쯤 잠이 들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든 날이 바뀌며 하루가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