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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ul 06. 2022

희망의 글쓰기

7월의 선생님께

1.

여름의 언덕에서 선생님께 편지를 씁니다. 바람을 따라 온 풀잎의 향기와 빗방울의 목소리 모두 여름의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풀벌레 소리 더 고요해지면 여름도 더욱 깊어지겠지요. 여름밤은 언제나 그리운 것들과 함께 있습니다.  


우연히 시작된 올해의 수업들, 중학교 아이들과의 시쓰기 수업, 고2 아이들과의 시창작 수업, 고3 아이들과의 예술 수업과 독서수업 모두 종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수업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것은

세상이라는 텍스트에 물러서지 않고 참여하면서

그 속에서 말하고 듣고 읽고 쓰면서 사랑과 아름다움,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 분투했던 시간들이었을 겁니다.


불안과 혼돈에 사로잡혀 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에 두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일과 자신이 절망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자신의 상처와 고통에 대해 거듭 자기의 근본 정신과 마음에 물으면 답은 조금 확실해집니다. 이 수업들 모두 성실하고 다정하게 읽고 쓰고 말하고 들으면서

가장 자기다움으로 돌아가고자 애썼던 시간이었습니다.


 2.

한 때 저는 삶에는 정답이 있거나 질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삶은 정답도 질문도 아니라 표현이라는 것을.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감각하고 경험한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존재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만의 언어를 가져야 우리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표현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의미를 만들어 줍니다. 어쩌면 제 삶은 그동안 저에게 정답과 질문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표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3.

  사랑과 아픔과 이별 앞에서 저는 여전히 연약하고 가녀리며 불쌍하고 가여운 어린 아이가 됩니다.

하지만, 책과 영화와 그림과 사람들과 자연을 넘어서는, 나의 내면과 나의 경험을 넘어서는 더 크고 넓고 깊은 무언가가 삶에는 있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연적입니다. 예측불가능하고 애매모호하며 불가해합니다. 삶이 지극히 우연적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연에 참여하는 것, 우연을 받아들이는 것, 더 많은 우연 속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나답게 표현하여 세상에 선물해주는 것.


저는 이제 그렇게 우연하게 제게 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가끔 웃으면서 자주 울면서.

불확실한 삶이므로 빨리 남들이 정해놓은 틀에 나를 밀어 넣고 그 안에서 자기기만의 행복을 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계속 하도록 도울 것이며 함께 할 것이고 아이들의 어떤 결정이라도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살아있을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줄 것입니다. 그것과 함께 찾아오는 슬픔과 고통, 외로움과 쓸쓸함도 이제 저는 눈물겹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가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나를 고백한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너와 관계 맺는다는 것입니다. 나로 존재하면서 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것들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4.

브런치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글이 자신의 방을 넘어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는 정작 많이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내 글이 어떻게 읽혀질까 막막했고 아무에게도 닿지 않을 것 같아 불안했으며

스스로 글쓰기 안에서 자기 만족에 빠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사는 만큼 쓸 수 없을까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의 작고 사소하고 기쁘고 슬픈,

설명할 수 없이 다채롭고 깊은 삶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확한 언어에 실어나르고 기록으로 남기며 세상과 공유하고 싶어졌습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글쓰기를 주저했고 두려워했으며 자신의 글을 읽기도 어려워했습니다. 그 때 제가 외우고 있던 어떤 소설가의 글을 소리내어 읽어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저와 선생님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은 글입니다.


선생님!

오직 자신의 언어만이 우리를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 자신을 더 당당하고 늠름하게 살아가게 해줄 거예요. 잊지 말아요.


선생님의 건강과 행복, 자유와 더 자유로운 자유를 기원합니다.


  체면 세울 생각은 그만하세요.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당신의 특수한 세계에 관해 들려주세요. 이야기를 만들어 주세요. 서사는 혁명적인 것이라 그것이 창조되는 순간에 우리 역시 창조됩니다. 설사 당신의 시도가 당신의 능력을 벗어난다 해도, 설사 당신의 언어가 사랑으로 불타올라 화염속에 스러지고 데인 상처 밖에 남지 않더라도, 혹은 당신의 언어가 외과의사의 손길 같은 과묵함으로 그저 피 흐르는 곳만을 봉합하더라도, 당신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겁니다. - 단번에는 말이지요. 열정만으로도 안 되고 기교만으로도 안 될 일이니까요. 그래도 시도해주세요. 우리를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세간의 평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세요. 어두운 곳에서 당신이 경험한 세상은 어땠는지, 밝은 곳은 어땠는지 들려주세요....

  오직 언어만이 이름없는 것들의 무시무시함에서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습니다.

오직 언어만이 명상입니다.

  - 토니 모리슨, 1993년 노벨상 수상 연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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